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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버블’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수 있을까 – 다큐 <버블 패밀리>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버블’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수 있을까 – 다큐 <버블 패밀리>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15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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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하다. 어떻게 한 사람이 저렇게까지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을까. 몇억 또는 몇 십억 짜리의 물건들이 어찌 그리 쉽게 팔리는 것일까. 과연 그들은 어떻게 그 정도의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일까. 돈이 돈을 낳을 것이라는 추측 외에 그들의 구체적인 ‘비법’은 앞으로도 쭉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 즉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월급’이라는 이름의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은 절대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9 to 6의 삶을 사는 이들의 앞날은 뻔하다고. 이는 격하게 말해 이런 말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노력 따위 다 필요 없다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헛된 꿈을 꾸거나 요행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임금으로는 도저히 벌 수 없는 돈을 짧은 시간 안에 ‘튀겨’ 낼 수 있는 방법은 부동산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탓이다. 세입자가 당장 1년 안에 몇억을 만들어내야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임대인이 1년 만에 몇억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한 몸을 부리기 위해 필요한 돈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이것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배를 불렸다. 내 발이 닫고 있는 그곳이 곧 돈이라는 것, 그것을 가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니까 땅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 이는 대한민국의 망탈리테라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만큼 뿌리내리고 있다. 다큐 <버블 패밀리>는 도대체 무엇이 마치 신앙과도 같은 이 믿음을 만들어 왔는지,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재는 어떠한지를 한 가족의 연대기를 통해 설명한다.

 

이 작품의 내레이터이자 감독은 본인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히 담아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동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부모님이 놓인다. 울산의 산업 단지에서 일하던 아빠가 서울로 상경하면서 가족들은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아빠는 건축을, 엄마는 설계를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대한민국 최대 호황기와 그것을 이끌어갔던 부동산 열풍에 민지네 가족도 합류한 것이었다. 사업은 원금 대비 몇 퍼센트의 이익을 낸 것인지를 굳이 계산할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이 벌어들였고 가족들은 여의도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국가의 부동산 정책과 호황이 이 세 식구의 서울 입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었다.

​​​​​​​이 가족의 과거가 얼마나 윤택했는지는 엄마의 홈비디오 영상과 엄마와 아빠의 회상, 그리고 현재의 좁은 집에 남아 있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큰 짐들이 충분히 말해준다. 1990년대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아파트 단지, 엄마의 홈드레스와 그릇 세트들, 아이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다종다양했던 가족 행사. 그들의 편안했던 한때는 엄마의 홈비디오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때를 회상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다. 당신들이 기억하는 그때가 얼마나 호황이었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일을 꾸려나갔는지, 그래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에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땐 마치 어제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행복해 보인다. 엄마는 울산에서 서울로 옮길 때 겁나지 않았느냐는 딸의 물음에 특별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다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는 엄마의 믿음을 그때의 대한민국은 부동산으로 실현시켜 준 셈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홈비디오가 멈춘 1997년 이후. 가족의 생활에서 예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렸던 민지는 자신의 집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던 그 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부동산에 투자했던 아빠는 사두었던 땅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여태까지 쌓아온 돈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사건 이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빠는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고, 말끝을 명확하게 맺지도 않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민지네 가족의 호황은 사그라들었다. 현재 가족들이 월세로 살고 있는 집은 주인이 원룸을 짓겠다 선언해 버렸기에 기한 내에 나가야 할 상황이며, 과거 아빠가 사업을 하며 진 빚이 얼마인지 어디서 어떤 빚이 도사리고 있는지 딸과 엄마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날라 오는 독촉장과 월세 내기도 빠듯한 현재의 상황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부동산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지금도 엄마는 부동산 투자를 제안하는 콜센터 일을 하고 있으며 아빠도 곧 무엇인가 될 혹은 ‘이번 주에 결정날’ 일에 기대를 걸고, 적은 돈이라도 투자해 볼 것을 딸에게 권한다. 부동산으로 내리막길을 걸었으면서도 다시금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부동산을 떠올리는 엄마와 아빠가 딸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라고 물을 때마다 부모님의 답변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 그 땅을 어떻게 살 건데?에 대한 답변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혹은 너는 신경 쓰지 말아라. 그들에게 위기 상황에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당신들의 경험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부를 쌓아주었던 부동산뿐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답답한 생각이 이해가지 않으면서도 얼마 후 나갈 집을 구하기 위해 딸이 떠올렸던 것도 역시 땅이었다. 아빠 명의로 남아 있는 작은 땅, 아빠 역시 이래저래 제대로 서류 정리가 되지 않아 남아 있는 그 땅이 가치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은근한 기대를 놓지 못한다. 그러나 그 땅은 아무런 해결을 해주지 못했고, 가족들은 잠시나마 희망이 드리웠던 순간 때문에 더 큰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의 초반 드러났던 한 나라의 정책과 성장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한 가족을 고스란히 관통해내는가 라는 질문은 사실 영화의 말미에 도달할수록 희미해진다. 가족들의 이야기로 좁아지면서,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당신들의 생각들을 이해하면서 영화는 다소 급작스러운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전개는 어쩌면 애초에 답이 바뀔 수 없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표현의 정교함은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금도 ‘한방’을 노릴 수 있는 것, 그리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쉽게 무능으로 연결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정기적인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는 이들의 헛된 기대가 과연 이들만을 탓할 문제일까.

​​​​​​​지난 20년간 200배가 올랐다는 강남땅이 증명해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이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과 애초에 이를 가지지 못했다면 새로운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버블 패밀리>의 ‘버블’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이해가는 것은 이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지금도 계속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부동산의 상승세는 이 나라에서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 혹은 땅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단순히 맘 편하게 살고 싶다는 안정감과는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터무니없는 욕심이 되어 버린 주거의 확보는 집을 가지지 못한 나만 남겨둔 채 그들끼리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공기업에서조차 투기가 만연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대답을 피하며 드러누워 버리는 아빠의 모습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이 비정상적인 버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한가.

 

<버블 패밀리>(2018)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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