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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금융’으로서의 기본대출
‘공정금융’으로서의 기본대출
  • 이한주 | 경기연구원장
  • 승인 2021.03.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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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실험, ‘금융기본권’

기본대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신용 등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공정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는 제도다. 기본대출은 소득·자산·신용 등의 대출 조건을 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편적 금융서비스’이고, 이를 모든 국민에게 권리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소위 ‘금융기본권’, 혹은 ‘경제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자와 차입자 간 소득분배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는 ‘공정금리’로 대출해 준다는 점에서 ‘공정금융’, 혹은 ‘공정경제’라고도 할 수 있다.

요약하면, 기본대출이란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제도권 금융기관에 기반해 일정 수준의 대출금을 공정한 금리로 대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대출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20년 공식적으로 처음 제시한 정책으로, 우량 대기업, 고액 자산가, 고소득자 등이 누리는 1~2% 가량의 ‘저리’ 장기대출 기회를 대부업체 대출금 수준인 1,000만 원 내외 규모로 신용도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주자는 정책적 제안에서 시작됐다. 이 지사는 이런 기본대출을 ‘국민의 권리화’라고 주장하면서 공정 경쟁을 위한 실질적 기본권 즉, ‘경제적 기본권’으로 명명했다. 기본대출은 금융 분야의 경제적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금융기본권으로 지칭되고 있다.

 

<부채>, 2020 - 아드리아 프뤼토스

포용금융을 넘어 공정금융을 지향

‘포용금융’(Inclusive Finance)은 광범위한 사회구성원들이 적절한 비용으로 제도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 배제’를 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1) 포용금융은 이와 같이 금융 배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세계은행, G20, UN 등 국제기구도 주로 빈곤층, 취약계층, 소농 및 소규모 기업, 이주 노동자 등 제도권 내 금융 접근성이 약한 그룹들의 금융서비스에 대한 접근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에서도 ‘서민금융’ 정책이 주로 저소득층, 저신용계층 등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선별적인 지원정책은 항상 누락의 오류와 포함의 오류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 누락되고, 지원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포함되는 오류를 말한다. 즉, 대상자 선정이 쉽지 않아서 항상 공정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코로나19 선별적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만약 정부의 서민금융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부업을 이용하는 사람이 200만 명가량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본대출은 보편적 기본 신용대출이다. 최소한의 기본 대출금액에 대해서는 공정금리로 모든 사람에게 대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는 광범위한 사회구성원들이 적절한 비용으로 제도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포용금융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포용금융의 취지는 달성하되 선별 지원이 아닌 보편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편 지원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각 개인의 대출 상환 노력이나 실적보다는 각 개인이 속한 신용 그룹에 따라 이자율을 차별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공정성에 관한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개인이 특정 집단으로 분류된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2)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대출은 포용금융을 넘어 공정금융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형 금융 복지

한국의 2019년 공공사회복지지출(3) 수준은 GDP 대비 12.2%로 OECD 회원국 평균(20.0%)의 약 6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한국의 재정에 기반한 복지정책 수준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6.7%에 불과했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을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OECD 회원국 평균인 20%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한국적 맥락에서 기본대출은 금융 소외 및 독점(4)을 해소하는 공정금융의 역할 이외에도 새로운 복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필요한 지출보다 소득이 적은 개인이나 가구는, 가족·친인척 또는 정부의 (복지제도를 통한) 도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득이 부족한 경우, 민간 금융을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이런 민간 금융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아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기본대출을 보장한다면, 실질적으로 복지정책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우리나라에는 전액 무상인 복지와 전액 환수하는 대출제도만 존재한다”라며, “전액 무상과 전액 환수의 중간 형태의 복지도 필요하다.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은 국가가 부담해 누구나 저리 장기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기본대출권)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담보할 자산도 소득도 부족한 서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최대 24%의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라며, “24% 고리대출은 복지대상자가 되기 직전 마지막 몸부림이고, 이를 방치하면 결국 국가는 복지대상 전락자들에게 막대한 복지지출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저리 장기대출로 이들에게 자활과 역량개발 기회를 주는 것이 개인도 행복하고 국가도 발전하며 복지지출도 줄이는 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본대출은 이재명 지사가 주장했듯, 빈곤이 발생한 이후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복지가 아니라, 애초에 빈곤상태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는 복지정책이다. 일단 빈곤상태에 빠지면 탈출이 쉽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대출은 ‘저비용 고효과’, 한층 경제적으로 빈곤에 대처하는 복지정책이 될 수 있다. 지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은 새로운 발상을 통해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빈곤퇴치 방법을 제시한 학자들에게 주어졌다.(5) 기본대출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빈곤의 원인 중 하나인 금융 문제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관점의 정책이다. 효율성의 관점이 지배하던 금융이 공정성과 결합해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20년 12월)에 의하면, 도민 중 72%가 기본대출 도입이 적절하다고 응답했고, 70%가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해서 정책적 호응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덕적 해이의 우려?

기본대출의 무심사 대출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있다. 대출이 불필요한 사람도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가계 채무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으며 정부 재정도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신용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염려해 대부분의 경우에는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환능력 자체가 부족하거나 채무변제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가압류 등 추심 방법이 없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혹은 고령층에서 채무변제불능이 일부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정책 목표가 ‘대출 상환’이 아니라 ‘생계 지원’이라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회수율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상환을 독려하는 절차와 함께 미상환 시 신용등급 하락 등의 벌점 제도를 만든다면, 사회 전반에 걸친 부채상환 책임 회피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출 시행과 더불어 금융교육 및 상담서비스 제공, 취업지원 서비스 등을 동시에 제공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위험은 낮출 수 있다.

 

비생산적 활용의 우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기본대출의 도입 목적과 달리 대출금을 주식투자, 사행성 지출 등 비생산적 부문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지역화폐처럼 사용처를 제한하는 것이 예방책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금별 용도 전환을 할 가능성도 있다. 즉, 대출금은 생산적 부문에 사용하고, 대출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비생산적 부문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일단 대출이 실행되면 그 용도를 제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공정금융이라는 대의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현재 서민금융 일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금 용도 계획서’ 작성 요구는 이런 우려를 일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출 실행 시에 자금의 용도에 대해 ‘일반 생활자금’, ‘학업·취업 준비’, ‘의료비’, ‘주거비’ 등으로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소위 ‘목표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ness)’가 대출자의 입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청년 기본대출은 사회적 실험 

기본대출 정책에 대해서는 기대(공정금융 및 한국형 금융복지 실현)와 우려(도덕적 해이 및 비생산적 활용 가능성)가 공존한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일부 집단을 대상으로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을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0년 경기도 대출 및 신용정보 자료를 분석한 경기연구원 내부 자료에 의하면, 연령별 대출 불량률과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비율은 30대 중반 이후 60대까지는 대체로 비례 관계에 있다. 즉,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대출 불량률과 저신용자 비율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30대 초반까지는 나이가 어릴수록 불량률이 낮은 반면, 저신용자 비율은 오히려 높았다. 그 결과 이 연령대에서는 대출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불량률이 낮은 집단임에도 이자율이 높은 것이다. 이는 소득분배의 차원이 아니라 자원배분의 차원에서도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공정금융의 필요성이 더 절실한 청년층부터 기본대출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인생 전반에서 ‘청년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 연령대에서 벌어지는 격차는 향후 각도기처럼 벌어지기 쉽다. 청년에 대한 기본대출은 이들의 자금난을 해소해 학업 또는 취업에 전념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실질적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지사의 기본대출에 대한 포부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처음 가는 길이어서 생소하고 불안하지만, 저는 재정도 절약하고 가난한 이도 금융혜택을 누리고 경제도 살고 금융·화폐 정책도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새로운 길을 택하겠습니다.” 

 

 

글·이한주
경기연구원장.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사회적경제, 노동경제, 복지국가, 기본소득에 관심이 많다.


(1) Corrado, G. and L. Corrado, ‘Inclusive finance for inclusive growth and development’, <Current Opinion in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24호, 19~23쪽, 2017년 2월.
(2) 헌법 제11조 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3) 사회복지지출(Social Expenditure)은 사회적 위험(노령, 질병, 실업, 재해 등)에 직면한 개인에 대한 공적제도에 의한 사회적 급여(현금, 재화 및 서비스)나 재정적 지원을 말한다.
(4) 소득 상위 1분위의 신용대출 중 은행의 비중은 2017년 78.7%에서 2019년 83.3%로 증가한 반면, 최하위인 5분위는 동일 기간 60.5%에서 44.9%로 하락하는 등 금융의 독점 및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
(5) 수상자 중 한 명인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케냐에서 학생들에게 기생충 약을 지급한 이후 결석자 수가 이전 대비 약 25% 감소했다. 이는 아프리카 아동들에게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 교과서와 교복을 지급하고 교사를 충원했던 활동이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다. 20~30배의 예산을 집행했을 때보다 저렴한 구충제 지급 활동의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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