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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시크릿> ― 비밀/기억의 진실과 사적 복수의 정당성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시크릿> ― 비밀/기억의 진실과 사적 복수의 정당성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05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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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상처와 기억/진실의 문제

과거의 상처와 기억/진실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Memento, 2000)에서 아내가 살해당한 후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나드 쉘비(가이 피어스)는 사진, 메모, 문신으로 남긴 기록을 따라 범인을 쫓는다.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2016)에서 예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김병수(설경구)는 자신의 살인 습관과 망상/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살인자 경찰 민태주(김남길)와 대결한다.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2017)에서 정체부명의 괴한들에게 형 유석(김무열)이 납치된 후 환청/환각에 시달리는 동생 진석(강하늘)과 돌아온 뒤에 변해버린 형을 둘러싸고 형제의 엇갈린 기억 속 감춰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는 영화이다. 이 영화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기억의 진위 여부이다.

유발 애들러 감독의 <더 시크릿>(The Secrets We Keep, 2020)은 전쟁의 상처와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군의관 출신 의사 루이스(크리스 메시나)와 결혼해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마야(누미 라파스)는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 과거 마야와 여동생은 수용소에서 도망치다가 나치 친위대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여동생이 총에 맞아 죽는다. 마야는 어느 날 공원에서 특이한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되면서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휘파람 소리의 남자 토마스 스타인먼(조엘 킨나만)을 납치하게 된다. 이 영화는 전쟁의 상흔,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둘러싸고 기억과 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가해자/피해자의 전도와 기억의 상처
 

<더 시크릿>의 전반부에서는 가해자/피해자의 전도와 기억의 상처를 보여준다. 마야는 특이한 휘파람 소리를 듣고는 토마스를 미행하여 납치하고는 총으로 살해하고자 하지만 실패한 후자기 집의 지하실에 감금한다. 마야는 토마스가 과거 독일군 수용소에서 도망친 자신을 성폭행하고 여동생을 살해한 나치 친위대인 칼이라고 확신한다. 이때 과거의 강간/살인과 현재의 납치/감금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가 일어난다.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 루이스는 아내 마야의 갑작스러운 납치 범죄와 처음 들어보는 고백에 당황해하며, 강하게 부인하는 토마스를 보며 아내의 기억에 의구심을 느낀다.

<더 시크릿>의 전반부 스타일에서는 사운드의 반복, 거울/유리의 반영성, 시점숏, 교차편집 등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전쟁의 상흔을 소환해 낸다. 토마스의 특이한 휘파람 소리는 반복되는 사운드를 통해 현재의 평화로운 마을과 과거의 끔찍한 전쟁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대비시킨다. 마야가 토마스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장면에서 거울에 비치는 토마스, 유리에 비치는 마야, 유리에 비치는 하늘 등 거울/유리에 비친 반영적 이미지로 현실의 진실과 기억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때 토마스의 후면 롱숏, 마야의 전면 바스트숏라는 숏 크기의 대비는 여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마야가 토마스의 집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마야 얼굴의 전면, 측면, 후면을 보여줌으로써 여주인공의 긴장감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마야가 토마스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는 심호흡을 하며 토마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마야와 총 앞에서 두려워하는 토마스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마야의 고통과 토마스의 충격을 대비시킨다. 마야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토마스에게 ‘겁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겁쟁이’라는 소리가 울리면서 반향을 일으킴으로써 강조된다. 전반부의 이러한 스타일적 연출은 과거/현재의 교차, 흔들리는 카메라, 단편적 영상을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보여줌으로써 기억의 상처를 드러낸다.


기억/망각과 진실/거짓의 행방
 

<더 시크릿>의 중반부에서는 기억/망각과 진실/거짓의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 자신이 겪은 폭행, 강간, 살인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마야는 고통스러워한다. 토마스를 동정한 루이스가 밧줄을 풀어주다가 토마스에게 공격을 당하고, 지하실에서 도망치려는 토마스를 붙잡는 과정에서의 소란으로 경찰에 신고를 당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 기록 카드를 검토한 결과 독일인 칼이 아니라 스위스인 토마스 스타인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집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아내가 혼자 토마스를 고문한 사실을 발견하고는 아내와 갈등한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집을 방문하고, 마야는 토마스의 집을 방문해 그의 아내에게 정보를 캐내고자 한다.

루이스는 마야의 기억과 토마스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토마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가 나오면서 과거 사건에 대한 아내의 말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진다. 마야는 왜 자신이 동생만 거기 둔 채로 도망쳤는지, 왜 자신의 동생만 총을 맞고 자신은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남편 루이스는 아내 마야의 과거가 밝혀져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같지만 여전히 당신이니까. 난 새로운 당신에게 익숙해지면 돼. 당신의 과거까지도.”라면서 아내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토마스의 부인, 마야의 죄책감, 루이스의 의구심으로 과거의 기억을 둘러싼 진실/거짓의 행방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더 시크릿>의 중반부 스타일에서는 교차편집, 빛/어둠의 대비, 앵글의 차이로 기억/진실에 대한 의구심을 가중시킨다. 폭행, 강간, 살인 등 과거의 기억 장면은 짧게 스치며 보여주는 플래시영상,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된다. 이러한 기억의 단편적인 파편은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면서 동시에 현재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한다. 남편이 토마스의 진료카드를 찾아보는 장면에서는 버즈아이뷰숏으로 사실 여부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을 보여주는 반면, 아내의 과거 고백 장면에서는 투숏과 오버더숄더숏으로 부부의 교감을 보여준다.


진실의 고백과 용서/복수의 반전
 

<더 시크릿>의 후반부에서는 진실의 고백과 용서/복수의 반전을 보여준다. 마야는 토마스의 집을 방문해서 유대인 아내가 낀 유대인 반지를 보고는 자신의 기억을 확신한다. 한편 밧줄을 푼 토마스는 마야의 이마에 총상을 입히고, 마야는 그의 손가락을 잘라 유대인 반지를 확인한다. 루이스는 토마스의 잘린 손가락을 치료해주고 마야의 잔인한 행동에 실망하여 마야의 뺨을 때린다. 마야는 과거의 진실에 대한 의혹과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토마스에게 죄만 인정하며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토마스는 15년 전 나치 친위대에 있을 때 자신의 폭행, 강간, 살인을 인정하고, 마야가 강간, 폭행으로 기절한 가운데 여동생이 살해된 사실을 털어놓는다. 토마스의 고백을 들은 루이스는 토마스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마야와 루이스는 다시 자신의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간다.

진실/거짓, 기억/망상 사이에서 헤매던 과거의 사건은 결국 토마스의 고백으로 마야의 기억이 진실임을 확인시켜 준다. 토마스의 강력한 부인과 남편의 의구심 앞에서 마야는 토마스와 그의 부인을 조사함으로써 폭행범, 강간범, 살인자인 토마스의 악행을 밝혀낸다. 이 영화는 과거의 상흔으로 고통 받던 마야가 마지막으로 진실을 요구한 반면에, 의구심에 시달리며 용서하라고 부탁하던 루이스가 오히려 살인으로 복수를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말로 끝이 난다. 이러한 결말은 아내가 현재의 살인으로 미래에 고통을 받지 않게 하려는 배려, 아내가 끝까지 믿어달라고 한 과거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 결국 밝혀진 토마스의 악행에 대한 분노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더 시크릿>의 후반부 스타일에서는 사운드, 교차편집, 카메라, 앵글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대비, 상처에 대한 치유를 보여준다. 과거의 총성을 되풀이하는 사운드는 여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여동생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강조한다. 총성, 빛/어둠, 폭행, 강간, 총성, 살인의 과거 장면과 걷기, 심호흡, 조용한 마을의 현재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공포와 현재의 평화를 대비시켜 끔찍한 과거의 상흔을 강조한다. 토마스를 용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남편이 부탁하는 장면(투숏)과 용서할 수 없다고 아내가 강경하게 말하는 장면(원숏)은 미장센의 차이로 부부의 교감과 갈등을 대비시킨다. 토마스의 고백이 필요한 이유는 남편의 믿음 때문이라고 아내가 말한 후에 부부가 침대에 눕는 장면에서는 상흔으로 인한 아내의 내적 고통과 부부의 사적 갈등을 슬로우 모션으로 강조한다. 토마스가 죽은 후 삶은 계속된다며 부부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오버더숄더숏으로 부부의 교감을 강조하며, 마지막에 부부가 불꽃 축제를 바라보는 장면은 하이앵글로 일상적인 기쁨을 관조적으로 지켜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기억의 고통과 사적 복수의 정당성

<더 시크릿>에서 비밀은 기억/진실에 대한 두 가지의 의문으로 이어진다. 첫째, 과거의 진실/거짓, 기억/망상의 문제이다. 마야의 과거 기억은 진실인가 아니면 망상인가? 토마스는 무고한 일반인인가 아니면 강간범/살인자인가? 둘째, 현재의 용서/복수, 상처/치유의 문제이다. 끔찍한 기억으로 인한 피해자 마야의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피해자가 용서와 복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영화는 비밀을 둘러싼 이러한 의문들을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라는 대표적인 스타일적 연출로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과거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현재 피해자의 고통을 들추어내는 과정이다. 가해자가 신분을 위조하고 증거를 조작함으로써 공적 처벌이 좌절된 상황은 사적 복수를 정당화한다. 과거 가해자의 잔인한 악행과 현재 피해자의 끔찍한 고통에 대한 강조도 또한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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