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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우리의 노래? 나의 노래!
[이혜진의 문화톡톡] 우리의 노래? 나의 노래!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4.0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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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뉴포크의 기수, 요시다 타쿠로(吉田拓郎)
요시다 타쿠로의 앨범 [출처: 로맨스 그레이의 LP쇼핑몰]
요시다 타쿠로의 앨범 [출처: 로맨스 그레이의 LP쇼핑몰]

 

1970년대 일본 포크의 대중화

 

포크나 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970년대에 일본에서 성행했던 ‘포크잼보리’라는 이름에 모종의 향수가 함의되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존 바에즈 등 당대 내로라하던 포크·록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했던 1969년 미국의 우드스톡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 비견되는 일본의 ‘포크잼보리’는 1969년에서 1971년까지 기후 현(岐阜県) 나카쓰가와 시(中津川市) 근교에서 개최된 일본 최초의 야외 포크음악 콘서트 행사를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포크잼보리’는 일본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몰려와 며칠 밤을 새우며 열광적으로 콘서트를 즐겼는데, 이것은 일본의 청년 문화사의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이 콘서트를 개최한 주체가 ‘일본노동자음악협의회’였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즉 1970년대 초 일본의 좌익 청년운동 세력이 쇠퇴해가고 있던 시기의 분위기와 함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의 포크음악은 어디까지나 언더그라운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에 시작된 안보투쟁과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포크의 가사도 점차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가사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일본 포크사에도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요시다 타쿠로(吉田拓郎, 1946.4.5.)가 등장한 직후의 몇 년 동안은 그야말로 일본 포크 씬 최대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시대의 역풍에 직면하면서 그때까지 비주류 장르로 체제 비판적 성격을 이어가고 있던 포크와 록을 단숨에 주류 음악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대중에 인지시킨 공적을 남긴 주인공이 바로 요시다 타쿠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시다 타쿠로에게 몰리는 인기의 특별한 성격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던 ‘일렉 레코드’의 상업적 원조는 결과적으로 프로테스트 일색의 일본 포크를 대중적 수준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즉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요시다 타쿠로가 개척한 가장 중요한 공적은 바로 포크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다.

요시다 타쿠로 [출처: 네이버 블로그 MUSIQUE]
요시다 타쿠로 [출처: 네이버 블로그 MUSIQUE]

 

일본 포크록의 탄생

 

일본 가고시마(鹿兒) 출신인 요시다 타쿠로가 간사이 포크의 성지인 히로시마에 처음 정착한 것은 10대 후반 무렵이었다. 1962년 히로시마 현립 히로시마 미나미 고교 시절에 ‘톤 다이아몬즈’(トーン・ダイヤモンズ)라는 이름의 연주밴드를 결성한 이후, 1966년 ‘콜롬비아 포크콘테스트’에서 요시다의 자작곡인 <땅에 울타리를 치는 바보가 있다(土地に柵する馬鹿がいる)>를 불러 우승을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1967년 히로시마 상과대학에 재학하면서 R&B 계열의 4인조 밴드 ‘다운타운즈’ 활동을 시작한 데 이어 1968년 ‘히로시마 포크무라’(広島フォーク村)를 결성하면서 이 그룹의 리더로 활약했는데, 이 무렵부터 서서히 일본 전역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했다.

1970년 4월 요시다는 ‘히로시마 포크무라’의 멤버들과 함께 한 옴니버스 앨범 낡은 배를 곧바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은 구식 뱃사람이 아닐 테지(古い船をいま動かせるのは古い水夫じゃないだろう)를 발매한 이후, 같은 해 6월 밥 딜런의 기타 연주에 강한 영향을 받은 이미지의 노래/마크 II(イメージの歌・マーク II)로 정식 데뷔했다. 곧바로 같은 해 11월에 발매한 첫 앨범 청춘의 시(靑春の詩)가 청년층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 여세를 몰아 1971년에 개최된 ‘전 일본 포크잼보리’에서 <인간이란(人間なんて)> 곡을 장장 두 시간 동안 열창하면서 청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던 장면은 현재까지도 일본 포크사의 렌전드로 평가되고 있다. 그 덕분에 같은 해 11월에 발매된 앨범 인간이란(人間なんて)이 1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는데, 당시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 포크의 신’으로 불렸던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요시다 타쿠로 시대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사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1972년 네 번째 싱글앨범 결혼하자(結婚しようよ)와 다섯 번째 싱글 여행의 숙소(旅の宿)가 연이어 히트하게 되면서 당시 남자 대학생이 주류 소비층을 이루고 있었던 포크 씬에 새롭게 열광적인 여중·여고생 팬 층을 형성해갔다. 또한 세 번째 앨범 『건강합니다(元気です)』가 40만 장 이상 판매되고 오리콘 차트 통산 15주 연속 1위를 독주하는 등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오카바야시 이후의 ‘뉴 포크의 기수’로 불리며 포크 음악을 일반에 퍼뜨리는 데 공헌했다.

일본 싱어송 라이터의 효시이자 당시 비주류 음악으로 취급되었던 포크와 록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요시다 타쿠로는 현재 일본에서의 포크 비즈니스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일본 전공투를 비롯한 일부의 좌익 청년들은 포크계의 히어로인 요시다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을 비난하면서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공연장에서 돌을 던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장면은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와 포크록을 연주했을 때 히피 들이 그를 향해 배신자라고 비난하면서 공연장에서 달걀을 투척하고 ‘유다’라고 야유했던 장면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당시 포크 팬들에게 일렉트릭 기타는 물질주의와 배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뉴 포크의 기수’ 요시다가 확산시킨 포크록의 배경에는 밥 딜런의 행보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요시타 타쿠로는 일본 반체제의 상징적인 인물로 간주된다. “서른 살 이상은 절대 믿지 말라”는 유명한 발언과 함께 TV 방송사에서 자신의 공연을 제한하거나 편집하는 행태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TV 출연을 거부하고 대규모 단독 야외 콘서트와 콘서트 투어를 기획하는 등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공연 방식을 개척하면서 대대적인 팬들을 확보해갔다. 그 외에도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는 등 새롭고 다양한 길을 개척한 공로자로 손꼽히는 요시다 타쿠로는 일본 팝뮤직 역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뮤지션 중의 한 명이다.

 

요시다 타쿠로 앨범-청춘의 시-[로맨스 그레이의 LP쇼핑몰]
요시다 타쿠로 앨범-청춘의 시-[출처: 로맨스 그레이의 LP쇼핑몰]

 

청춘이란 포크송에 빠져 반전가요를 부르는 것

 

요시다 타쿠로가 1970년에 발표한 앨범 <청춘의 시(靑春の詩)>의 표제곡에 묘사된 청춘의 모습은 당시 지극히 평범한 일본의 동세대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던 공통된 심정을 읊은 것이었다. 포크음악을 통해 당대 청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냈던 요시다 타쿠로는 1970년 안보투쟁의 패배와 학생운동의 급격한 쇠락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의 카리스마가 되었다. 당시 물질주의와 상업성에 대한 강렬한 거부가 포크 씬의 공공연한 기본 태도였음에서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시대 대중의 일상적인 감성을 편안하게 노래하고, 또 광고 곡을 만들거나 대중가요계에 자작곡을 제공하는 것에 관대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의 기본 정신은 지켜나갔다. 그렇게 그의 행보는 포크가 ‘공동체의 노래’에서 개인의 노래로 크게 전환되어간 과정과 함께 했다.

일본의 많은 청년들이 요시다 타쿠로의 대중적 포크에 열광했던 이유는 단 하나, 즉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언어를 전달하는 멜로디의 압도적인 친근감에 있었다. 다시 말해 요시다의 노래는 부르기 쉬운 멜로디가 가진 자연스러운 안정감과 ‘우리’ 자신의 평범한 감수성을 깊은 여운과 함께 전달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시다 특유의 독창적 아우라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매력이 공존할 수 있었다. 한때 영화 <짱구는 못 말려(극장판): 폭풍을 부르는 모레츠! 어른 제국의 역습>(2001)의 OST인 <오늘까지 그리고 내일부터(今日までそして明日から)>를 불러 요시다 특유의 쓸쓸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기서는 요시다의 초기 대표작 <청춘의 시>를 소개해본다.

 

<청춘의 시>

찻집에 그녀와 둘이서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영화관에 그녀와 둘이서 들어가 그녀의 손을 꼭 잡는 것

아- 그것이 청춘

번화가에서 내 앞에 걸어가는 멋진 여자의 딸을 꼬시는 것

아- 그것이 청춘

근사한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해 러브레터를 쓰는 것

아- 그것이 청춘

고고클럽에서 땀범벅이 되도록 춤을 추는 것

아- 그것이 청춘

그룹사운드에 열광하면서 소리를 크게 질러보는 것

아- 그것이 청춘

포크송에 빠져 반전가요를 부르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처음으로 섹스를 알고 어른이 되었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아버지가 숨겨 놓은 술, 담배, 수면제, 그리고 마지막에는 접착제, 신나 장난

아- 그것이 청춘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빠서 학교에도 안 가고 적당히 지내는 것

아- 그것이 청춘

비행기 탈취, 혁명 절규, 피와 땀에 젖는 것

아- 그것이 청춘

공부 이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스포츠야말로 남자의 근성을 만들어주기 마련이니,

축구하랴, 야구하랴, 일 년 내내 새까만 얼굴

이- 그것이 청춘

멋진 양복, 멋진 자동차, 플레이보이, 플레이걸로 불리는 것

아- 그것이 청춘

파칭코, 마작, 경륜, 경마, 도박, 전문적인 겜블러

아- 그것이 청춘

일 년 내내 규칙대로 사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줄리! 쇼켄! 긴 짱!

아- 그것이 청춘

고독하게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것

아- 그것이 청춘

자유롭게 생각한대로 무엇이든지 해보는 것

아- 그것이 청춘

그런데 청춘이란 도대체 뭘까?

그에 대한 답변은 저마다 각각 다르겠지

다만 한 가지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어른보다 시간이 많다는 것

어른보다 많은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

어른들이 앞으로 30년을 산다면

우리는 앞으로 50년을 살겠지

이 귀중한 시간에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할거야

이 귀중한 시간을 우리는 청춘이라 불러도 될거야

청춘은 다시 또 돌아오지 않지

여러분 청춘을…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청춘

 

 

이혜진 ·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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