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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녀의 조각들>, 삶으로 돌아오는 여정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녀의 조각들>, 삶으로 돌아오는 여정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1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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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등장인물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영화는 널려 있지만, 그 고통을 잘 다루는 영화는 매우 드물다. 코르넬 문드루초가 연출한 <그녀의 조각들>(2020)은 후자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만하다.

 

<그녀의 조각들>의 첫 쇼트는 건설되기 시작한 다리(bridge)에서 시작한다. 날짜는 9월 17일, 다리 건설의 현장 책임자인 숀(샤이아 러버프)은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곧 태어나게 될 딸이 가장 먼저 이 다리를 걷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두 개 정도의 씬이 지나간 다음, 숀의 아내 마사(버네사 커비는 마사 역할로 202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는데, 수상할 것 같다)의 출산 장면이 전개된다. 진통이 시작되고 양수가 터지고 산파 에바가 도착한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21분에 이르는 ‘롱테이크’가 펼쳐진다. 관객은 이 롱테이크를 통해 출산 과정에서 마사가 겪는 극심한 고통과 태어날 아기에 대한 열망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그 사건에 분명히 연루되고 아기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아이를 잃은 마사를 사로잡는 감정은 분노다. 마사처럼, 비극적인 사건에 처한 사람은 슬퍼할 수도 없고,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슬픈 사건이기에 슬프다고 인식하는 순간 둑이 터지듯 정신적으로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왜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는지’ 끝없이 자문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마사는 의학연구 목적으로 아기의 시신을 기증하는데, 마사의 엄마는 나중에 시신을 돌려받아 묻어주자고 설득한다. 엄마가 “아이를 공동묘지에 묻히게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할 때, 마사는 냉소를 띠면서 “싸구려 사고방식”이라고 비웃는다. 마사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방치하고, 아기의 시신을 버리려는 행위는 아기를 그렇게 만든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벌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분노는 마사가 슬픔과 죄책감에 직면하지 않게 하는 방패가 된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사람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이해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다리가 점점 완성되어 가면서, 마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치유가 시작된다. 3월 22일, 다가온 봄날과 함께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법정 장면이 등장한다. 산파 에바의 과실을 다투는 법정이지만, 원고측과 피고측 변호인이 증인으로 출석한 마사에게 신문하는 과정만 연출된다. 피고측 변호인이 “병원에 가지 않은 결정을 직접 했느냐?(즉, ‘마사에게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고 물을 때, “태어난 아기를 안았을 때 어땠는가?(즉, ‘아기에게는 문제가 없지 않았는가’라는 질문)”라고 물을 때, 카메라는 반복해서 마사의 왼쪽에서 목과 어깨 부분을 클로즈업한다. 따라서 관객은 그녀가 어렵게 “그렇다”고 답하거나,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해 난처해하는 순간의 표정을 보지 못한다. 코르넬 문드루초는 롱테이크를 통해 인물들이 겪는 모든 순간을 포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물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뒷모습과 옆모습 등을 통해 관객이 표정에서보다 더 많은 감정을 읽어내기를 주문한다.

 

변호인들의 신문에 답하면서, 마사는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죽던 그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마사는 태어난 아기를 안았을 때 찍었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인화되면서 점점 아기의 모습이 나타날 때, 마사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 장면은 배경 음악과 함께 크쥐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눈물과 함께 애도가 시작되면서, 마사는 아기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가 아니라 아기의 탄생에서 느꼈던 사랑을 돌이킨다. 그리고 아기의 죽음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인정하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게 된다. 누군가 이 비극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시작된 법정에서, 마사는 “아이가 누구의 보상이나 형벌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왔던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마사의 시선은 엄마를 향해 있고, 마사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에서 엄마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로 연결된다. 비록 여러가지 인간적인 문제를 갖고 있지만, 엄마는 마사에게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라’고 계속 간절하게 호소했다. 마사는 딸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모녀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의 연결을 통해, 마사와 엄마는 화해한다.

4월 3일, 마침내 다리는 완성되었다. 마사는 그 다리에서 남편이 떠날 때 두고 간 비니를 쓰고, 그럼으로써 어찌 되었건 아이의 아빠와 함께, 강물에 아기의 뼛가루를 날려 보낸다. 애도는 마무리되고, 사과(1) 씨는 발아해서 사과나무로 자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진짜 봄이다. 마사가 다시 삶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1) 이 영화에서 ‘사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태어난 아기를 안았을 때 어땠는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마사는 가까스로 “사과향이 났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아이의 시신조차 찾지 않으려고 하면서 필사적으로 아이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하지만, 계속 사과를 먹는다. 아마도 그녀는 ‘아이에게서 사과향이 났다’고 대답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왜 계속 사과를 먹는지, 왜 사과 씨를 모아서 발아시키려고 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과가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모국인 헝가리에서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 쿠퍼의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에 따르면, 금단의 과일이자 죽음을 상징하는 한편, ‘풍요, 사랑, 즐거움, 지식, 예지, 예견, 호사’를 나타낸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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