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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호명으로 덜어낸 싸움의 무게-<쓰리 빌보드>
[김희경의 문화톡톡]호명으로 덜어낸 싸움의 무게-<쓰리 빌보드>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04.1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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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연기는 단단하면서도 섬세하다. 영화 <노매드랜드>로 올해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전에 이미 <파고> (1997)와 <쓰리 빌보드>(201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의 오스카 노미네이트 소식에 오랜만에 <쓰리 빌보드>가 떠올랐다. 맥도맨드가 <노매드랜드>에서 자유롭고도 중심을 잃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쓰리 빌보드>에선 전혀 다른 색채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 강인하고 저돌적인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쓰리 빌보드>를 다시 꺼내 보았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에서 맥도맨드는 딸의 살인 사건이 묻히자 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엄마 밀드레드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강렬한 호명으로 시작된다. 밀드레드는 광고판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윌러비 서장?” 이라 적으며 경찰 윌러비(우디 해러슨)를 불러낸다. 여기엔 또 다른 호명이 추가된다. 윌러비는 돌연 자살을 선택하는데, 죽기 직전 많은 동료들 중 딕슨 경관(샘 록웰)만 특정해 편지를 남긴다. 영화는 왜 누군가를 불러내는 호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먼저 작품 속 두 경찰에 대해 얘기해 보자. 윌러비 경찰서장은 온화해 보이는 성품으로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딕슨 경관은 흑인 차별과 폭행 등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 윌러비는 갑자기 자살한다. 딕슨은 이에 각성한 듯 이전과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분노를 참지 못해 창밖으로 집어던진 광고사 직원 레드에게 사과를 하고, 무관심했던 밀드레드의 딸 안젤라의 강간 사건도 돕기 시작한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갑작스런 태도 전환을 연이어 배치한다. 연이은 호명에 따른 파급효과다. 

 

영화는 우선 밀드레드가 윌러비를 지목하는 첫번째 호명을 통해 ‘안젤라 사건’과 ‘밀드레드 사건’을 구분 짓는다. 안젤라 사건에선 피해자 안젤라 이외엔 아무도 특정되지 않았다.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며, 책임자는 경찰의 우두머리인 윌러비 서장은 커다란 집단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 상태에서 안젤라 사건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무관심 속에 표류하고 만다. 그런데 밀드레드는 윌러비를 호명함으로써 ‘사건 이후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표면적으로는 윌러비를 책임자로서 특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암에 걸린 윌러비를 굳이 지목한 밀드레드를 가해자, 윌러비를 피해자로 간주한다. 만약 밀드레드가 윌러비 서장이 아닌 경찰 집단 자체를 광고판 문구에 넣었다면 사람들도 밀드레드를 동정하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이를 알면서도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길을 선택, 새로운 ‘밀드레드 사건’을 만들어 낸다. 

밀드레드가 가해자를 자처한 이유는 뭘까. 호명은 감정을 작동시킨다. 집단의 감정은 쉽게 형성되고 증폭되지 않지만 개인은 특정되는 순간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을 갖게 된다. 밀드레드는 무난하게 경찰을 가리킬 수 있지만 감정의 증폭을 위해 개인인 윌러비를 호명한다. 호명 대상은 의무도 부여받는다. 호명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밀드레드는 윌러비를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억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윌러비의 행동은 밀드레드의 예상과 달리 비겁한 형태로 나타난다. 죽기 전까지 수사를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죽음으로 끝을 낸다. 집단 안에서 안주해 왔던 윌러비는 적극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며 자체 종결을 선언한 셈이다. 

 

영화에서 윌러비가 딕슨을 부르면서 이뤄진 두번째 호명은 윌러비가 보여준 비겁함의 연장선상이다. 윌러비는 마치 자신의 행동에 변명을 하듯 자신보다 행동력이 강한 딕슨을 편지로 불러낸다. 딕슨은 이미 흑인 서장이 부임하면서 해고됐지만 마음만은 집단에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이 호명으로 딕슨은 자신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윌러비가 완수하지 못한 안젤라 사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결국 두번째 호명으로 윌러비 자신은 밀드레드 사건에서 빠져 나오고, 대신 딕슨을 밀드레드 사건 안에 편입시킨다. 딕슨이 평소 생각이 단순하고 몸이 먼저 앞선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윌러비는 자신의 호명 한번으로도 이런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딕슨이 밀드레드의 편에 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범인은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윌라비 서장?”의 광고판 앞에서 딕슨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안젤라 사건에 대해 밀드레드가 받은 첫번째이자 마지막 연락이다. 영화 시작부터 단 한번도 웃지 않았던 밀드레드가 마지막엔 유일하게 웃는 쇼트가 나오는데 이 또한 딕슨으로 인해서다. 밀드레드는 딕슨이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잠깐이나마 환한 미소를 보인다. 

밀드레드는 범인을 잡는다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애초에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편에 서서 관심을 가져주길 원하는 마음으로 광고판을 세우며 호명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맥도맨드는 외로운 싸움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고 있는 밀드레드를 연기하며, 그 감정의 폭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글·김희경
문화평론가
 
*사진: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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