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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하트> - 경계의 놀이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하트> - 경계의 놀이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1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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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월 개봉 포스터 

<하트>는 정가영 감독 특유의 사랑 이야기이다. 정가영 감독은 전작 <비치온더비치>(2016)와 <밤치기>(2017)를 통해 여성이 주도하는 성과 사랑을 다루는 관계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하트>는 그 연장선상에서 유부남과의 관계를 다룬다. 전작이 애인 있는 전 남친, 혹은 애인 있는 남자와의 만남을 다룬다면, <하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도에 안착한 유부남과의 관계를 전면화한다. 그래서 영화는 전작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전작의 거침없는 돌진과 달리 감정적 딜레마를 담고 있다. 그 감정적 딜레마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자기 물음으로 확장하면서 경계에 대한 질문을 야기한다. 

 

정가영 감독 전작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가영이 유부남 전남친을 찾아와 지금 끌리고 있는 유부남에 대한 감정을 토로하면서 관계를 맺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가영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보낸 그러나 거절하는 남자 배우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즉 후반부에서 시나리오로 언급된 영화의 완성작이 전반부인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유부남과의 성과 사랑이라는 내용을 영화의 영화 형식으로 담으면서 내용에서 뿐 아니라 구성에서도 주류의 터부를 건드리면서 대면하게 한다.

<하트>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주류의 관습과 제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질문을 유도한다. 먼저 영화는 표면적으로 유부남을 사랑하면서 다른 유부남을 만나는 마음 따로 몸 따로의 모습을 재기발랄하게 담는다. 이는 사회적 통념이나 결혼 제도를 개의치 않는 하지만 동시에 제도를 강하게 인지하는 양상을 동시에 드러낸다. 사랑과 성을 분리하고, 통속과 전형성을 비웃지만 이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가영과 성범과의 핑퐁 대화에서부터 관계 이후 공포 장르로 분한 화장실 장면, 후반부의 배우와의 만남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가영과 성범 
가영과 재섭 

영화는 시작부터 유부남 담론(?)에서 시작한다. “니가 그냥 유부남이냐? 나랑 잔 유부남이지!” “술 마시면 (유부남인)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아들 태어난 날 나랑 잤잖아.” 공격도 자학도 분노도 아닌 이 일상적이면서 담담하게 대담한 대사는 한마디 던질 때마다 지난 사건을 압축적으로 소환하고 시각화하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표면의 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음 상황을 이어간다. 다른 유부남을 향한 감정을 토로하는 가영을 향해 전남친 유부남 성범이 “난 이제 너 보호 안 해.” 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음 장면에서 둘은 열렬히 키스를 한다. <하트>에서 성행위는 통속적 멜로드라마처럼 낭만화된 사랑의 결정체이거나 포르노적으로 대상화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그런 일상의 행위로 그려진다. 터부의 영역을 설정하고 넘나들면서 이를 일상적으로 담아내는, 다시 말해 경계를 설정하지만 넘나들면서 다시 경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질문을 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먼저 영화의 전반부 시간의 흐름이 대표적이다. 전반부 ‘영화의 영화’ 파트에서 영화는 선형성과 때론 인과성 마저 벗어던지고 시간의 앞뒤를 모호하게 엉키듯 배치한다. 시간예술인 영화는 늘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가능하다. <하트>는 화실에서 가영과 성범이 만나는 현재에서 기대고 있지만 불쑥 과거 그 둘이 처음 만난 시간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장면, 그리고 유부남 남자와 만나는 장면에 이어 다시 찾아온 미래의 가영을 시간적으로 나란히 병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다소 의식적으로 변주한 의상을 통해 이 장면들은 병치인 동시에 틈입하는 방식으로 기입하고 있기도 하다. <하트>에서 시간만큼이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이야기이다. 가영은 영화 속에서 현실을 빗댄 그러나 가상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 모자에 콘돔을 넣고 다니는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무인도의 남녀 이야기라든지, 심지어 <죄와 벌>을 빗댄 <벌과 죄>의 밤새지 않는 사람들의 이론은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를 변주하고 놀이로 까지 읽히게 한다. 

 

성범과 재섭 
감독역을 하는 배우 가영 

영화는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둘의 페르소나를 겹쳐냄으로 인해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도 한다. 정가영 감독은 자기 자신을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하여 실제와 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트>의 후반부 경우는 특히 감독 역의 배우로 자신을 등장시켜 영화의 실제 여부를 의심하고 질문하게 한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자전적 이야기라는 장면을 기입함으로 인해, 영화 밖의 질문을 영화 안으로 들여어보면서 일종의 ‘게임’을 시도한다. 실재와 허구를 겹쳐내고 분리하고 그리고 의심하도록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부 재섭의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는 역을 거절한 그럼에도 할말 다하는 ‘재수없는’ 배우이지만 동시에 가영의 또 다른 자아이자 분신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하트>는 제도의 경계, 관계의 경계, 사랑의 경계 나아가 영화의 장르적 경계, 시간적 경계, 실재의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주류의 터부를 대면하고 균열일 자아내고 그 틈새로 질문을 하게 한다. 재기발랄하면서도 신랄하게, 거슬리면서도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쓸쓸하게 그렇게 말을 건네며 사건과 감정을 구축한다. 

 

2020년 12월 재개봉 포스터 

 

사진출처: 네이버

 

·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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