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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래한다, 고로 세계는 존재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⓺
인간은 노래한다, 고로 세계는 존재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⓺
  • 지현희
  • 승인 2021.04.1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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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⓺

 

음악은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2002한일월드컵당시 창원광장 거리응원전 모습(창원시 제공)/출처= 뉴스1

 

2002년, 모두가 미쳐있던 시절이 있었다. 거리엔 빨간색 깃발이 나부끼고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당시, 사람들을 고무시킨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우리의 축구 영웅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어디서나 들려오는 음악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꺼이 악마가 되게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하겠지만, 사람들은 드넓은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화면을 보았다. 그 화면 아래 있던 모두가 홀린 듯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박자에 맞춰 5번 박수를 쳤다. 이 박수는 여럿이 모여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이 힘이 되어 ’월드컵 4강 진출‘이란 역사를 만들어 냈다.

 

연고전에서 학생들이 모교를 응원하고 있다 / 출처=연세대학교 공식홈페이지

내가 처음 대학교에 입학해 연고전에 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음악의 힘을 피부로 느꼈다. 사람들은 한쪽은 파란색, 다른 쪽은 빨간색 옷을 입고 저마다 하나 되어 응원가를 불렀다. 당시 난 입학한 지 몇달도 채 안 된 새내기였지만, 내 마음속에는 애교심이 샘솟았다. 동시에 상대 학교에 대한 경쟁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끼고 내가 속한 집단에 친밀감을 느끼는 한편, 상대편은 경쟁의 대상으로 느껴졌다. 음악이 가진 힘인 것이다. 음악은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그것이 반복적이고 광범위할수록 그 위력은 배가 된다. 그러니 대상이 학교가 아닌 사회가 되고, 대중이 된다면 어떨까?

 

<마니에르 드 부아르> 3호 음악편

여기, 대중을 홀린 사랑스러운 음악들이 있다. 재즈, 랩, 록, 클래식 등등…. 아름다운 선율과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사를 가진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다. 이 책은 음악이 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음악에 맞춰 함께 노래해 온 인간들의 이야기다. 대중이 사랑한 노래와 그 안에 담긴 감정, 그 시대 상황을 담은, 악보 뒤에 숨겨진 비화를 그리고 있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노래가 끼친 영향력과 그 사회적 의미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론적으로 음악이 지닌 힘을 두려워하면서도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 울타리, 그리고 역사를 이루는 음악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다닌 노래, 유행하는 음악은 한 시대를 대변한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상황이 음악을 구성하는 선율과 가사 속에 직•간접적으로 녹아난다. 마치 내 얘기를 하는 듯한 음악에 대중은 매료되고 사랑에 빠지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그 음악이 다시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마치 닭이 달걀을 낳고 달걀에서 닭이 나듯이 사회가 음악을 낳고 음악은 다시 사회를 만든다. 이 과정이 우리가 지나온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음악은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그것이 반복적이고 광범위할수록 그 위력은 배가 된다. 음악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행동하도록 고취한다. 그렇게 음악은 공동체를 만드는 하나의 울타리가 된다. 

 

이러한 울타리는 비슷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결집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을 다르다고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음악에는 개인의 신념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달려있다. 음악의 선율, 장르 자체가 한 집단을 대표하는 데 사용되어 군중의 정치적, 사회적 행동을 초래한다. 미국 농촌 지역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냈던 컨트리 뮤직이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란 표어 아래 정치적으로 사용되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이 일본 근대화의 신화를 나타내는 제2의 애국가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각 나라의 군가나 애국가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의 불꽃은 언제나 그것을 찬양하는 찬가가 함께한다. 그동안 역사의 한 페이지는 노래 없이는 단 한 줄도 쓰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음악에 매료된 두 집단이 서로 충돌하여 갈등을 자아내기도 하며 큰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가 된다. 

 

음악으로 통제하면, 음악으로 저항하라

 

때론 음악은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고 한 가지밖에 볼 수 없는 바보로 만들기도 하지만, 음악으로 자유를 노래할 수도 있다. 사랑스러운 음악은 우리를 유혹하고 자각하지 못한 채 음악에 담긴 신념을 그대로 따르도록 우리의 사고를 제한한다. 음악이 가진 힘을 사용해서 영리를 채우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다. 그러나 그 강요와 억압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음악이다. 예술가들은 노래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고발하고 그들을 옥죄는 검열에 저항한다. 음악으로 통제하고, 음악으로 저항한다.

이 책은 마치 음악으로 인덱싱된 세계의 백과사전과 같다. 컨트리 음악에 담긴 미국정치,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담긴 전쟁의 역사, 재즈와 랩에 담긴 흑인의 삶…. 세계라는 오선지 위에 음표라는 글자로 음계라는 문장으로 쓰인 역사를 글로 서술한다. 빈 종이 위에 쓴 가사는 그 역사를 사는 인간들이 보낸 세계를 향한 편지이다. 음계를 읽고 편지를 읽음으로써 과거를 배우고, 새로운 음계와 가사를 써 내려감으로써 현재를 기록하며, 현재를 노래하고 연주함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킨다. 그렇게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노래한다, 고로 세계는 존재한다.
 

 

글·지현희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4학년 재학. 팍팍한 공대 실험실안에서도 읽고 쓰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과학도 문학도 예술도, 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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