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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 톡톡] 우리는 진정 ‘폴리스적 동물’인가
[안치용의 문화 톡톡] 우리는 진정 ‘폴리스적 동물’인가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21.04.19 0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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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폴리스적 동물이란 용어는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널리 회자되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표현의 출처이기도 하다. 원래 말은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이다. 그리스어 원어를 한글로 옮긴 천병희 역자는 이것을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렇다고 그 의미를 단순히 다른 생명종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군집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모여 사는 것으로 치면 저 들꽃도 그러하다.

폴리스적 동물,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기에, 후대에서 이 말의 등가로 쓰이는 정치적 동물이나 사회적 동물하고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하여도, 독자적인 맥락에서 생성된 고유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편의적으로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변용해 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그 전에 원래 이 말이 무엇보다 폴리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그리스 도시국가의) 인간이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쯤으로 소박하게 이해해도 좋을까. 그런데 현재 우리가 통칭해서 도시국가로 이해하는 당시 폴리스는 소위 근대국가로 통칭되는 지금의 국가와는 너무나 다르다. 지금 우리가 근대국가 시스템 아래에서 서구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살아가는 반면, 과거 폴리스의 그리스인들은 지금과는 판이한 체제와 제도 하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만일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로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면 당장 폴리스적 존재라는 큰 얼개엔 별다른 이견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인류가 역사에서 직면한 개별 폴리스(지금 우리에게 더 익숙한 용어로는 국가)가 매우 다양한 형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 천 년 동안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로 살았지만, 시대별로 폴리스적 동물의 구체적 의미가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간 방식은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대전제 하에, 폴리스 안에서 살거나 폴리스 밖에 살거나 하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기본값은 당연히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도편추방제(Ostrakismos)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널리 알려진 대로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인물의 이름을 아고라에서 도편(陶片:오스트라콘)에 적어내어 정해진 기간 동안 폴리스 밖으로 쫓아내는 제도였다. 도편추방제는 폴리스적 존재()폴리스적 존재로 변경하는 정치적 절차로 해석될 수 있다. ()폴리스적 존재는 얼핏 근대국가에서 목격된 ()국민과 유사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과 비교하여 (인간 개체가 처한 물리적) 상태의 비참정도와 무관하게 ()폴리스적 존재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본질적인 예외상태로 간주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폴리스적 존재자체가 폴리스적 존재의 다른 표현이다. 국민국가의 자의적 공권력에 의한 추방과 달리 도편추방이 폴리스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결집에 따른 결정이란 사실을 감안할 때 ()폴리스적 존재는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존재를 위해 성립한다. 반면 근대국가 혹은 현대 국가에서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국민을 비국민으로 만든다고 할 때 그 행위가 반드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폴리스적 존재는 전적으로 폴리스적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아가 폴리스의 시민은 폴리스적 존재로 생활하지만 잠재적인 ()폴리스적 존재이기도 하다. 폴리스의 성립과 지속은 도편추방을 통해 언제든지 ()폴리스적 존재가 될 수 있는 폴리스적 존재에 의존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용어를 차용하면 폴리스적 존재()폴리스적 존재는 폴리스 시민의 현실태와 가능태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현실태는 가능태에 우선한다.

부연하면 ()국민국민의 다른 표현이란 주장은 가능하지 않는다.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폴리스의 시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개적 표명과 달리 국민은 국민국가를 구성한다기보다는 국민국가에 의해 동원된다. 간단하게 말해 국민은 대체로 국가와 별개의 존재로 혹은 독립적으로 검토돼야 하지만 시민은 원천적으로 폴리스와 별개가 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참으로 폴리스적 존재였다.

폴리스적 존재로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폴리스에서 여러 가지 정체(政體)를 시험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명멸한 다양한 정치 시스템은 현대 정치의 원천이 된다. 특히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시원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관한 고대 폴리스의 그러한 결정적 기여와는 별개로, 당시 폴리스에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납득하기 힘든 불편한 사회현실이 존재했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그것 또한 폴리스적 존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노예제를 들 수 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를 바탕으로 꽃 피웠다는 역설은 종종 거론되기에 이 자리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고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끝내자. 고대 그리스의 불편한 현실 중에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과 다양한 차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근까지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인식이 나타났다고 하여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이른 바 정상을 참작할 수 있다는 것이지 고대 그리스의 그러한 인식을 바람직하다고 옹호할 수는 없다. 연장자에 대한 연소자의 복종이 기본 규범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현실이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다고 해서 폴리스적 동물이란 정의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시스템을 당연시한 인간상을 전제했다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당시 폴리스에는 물론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긴 했지만, 적어도 시민과 폴리스 간에는 폴리스적 동물이란 말이 가능할 정도의 통합이 있어서 후대의 국민이 명목상으로만 국민국가를 구성한 것과는 달리 시민이 실제로 폴리스를 구성하고 운영했다. 적어도 시민은 자신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폴리스적 동물인 인간은 (물론 폴리스적 동물에 국한하여) 배제와 소외가 없는 정치적 주체의 원형이자 전설이 된다.

그러므로 폴리스적 동물이란 용어는 특정한 시대의 이념을 체화한 구체적인 인간 유형을 겨냥한다기보다, 이제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을 탐구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도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치적 주체인 시민에 여성과 노예가 빠졌기에 폴리스적 동물의 의의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여성과 노예 등 모든 인류를 포괄한 보편적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로 상정하고 인간의 정치적 주체화를 모색하는 게 올바르다. ‘폴리스적 동물이란 표현에는 그리하여 화자에 따라 심오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가 하면 의미가 축소될 수도 있지만, 폴리스가 사라진 현재를 사는 근대적 인간이라 하여도 근대성의 속박 아래 살아가면서 폴리스적 동물로서 모종의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치적 주체로서 공동체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는 민주주의 시민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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