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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스라이팅 효과'와 '사랑'의 구조적 차이점에 대하여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스라이팅 효과'와 '사랑'의 구조적 차이점에 대하여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28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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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스등> 1944

CGI기술이 가상을 현실로 불러오는데 있어서 이질감이 사라진 이 시대에, 20세기 초중반의 흑백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르긴 해도 둘 중 하나 때문일 것이다. 요즘 영화에서 받게 된 인상이 너무 무뎌져서 그러거나 흑백영화가 지금의 이 시대를 그 어떤 영화보다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어서 그러거나. 나는 후자의 역할을 믿고 있다. 그러다가 영화<가스등>을 떠올렸고, 이 영화가 과거와 지금을 이어주는 중요한 주제란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 <가스등>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스라이팅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로 변주되어 사용될 만큼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가스등, 1944
가스등, 1944

문제는 이거다. 왜 ‘가스라이팅 효과’는 여전히 강력하게 인간관계 속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가스등>이 설정하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도대체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되물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관계는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때 ‘사랑 받는 사람’(그레고리 역, 찰스 보이어)이 내뱉는 언어는 모두 '거짓말'로서, 어떤 비밀 세계(폴라의 살해 당한 이모가 숨겨놓은 보석이 있는 다락방)로 수렴된다. 그런데 그 세계는 '사랑을 주는 사람'(폴라 역, 잉그리드 버그만)을 '완전히 배제한 세계'다.

 

그런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야말로 그의 거짓말을 이해하기위해, 아니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그녀의 고통과 그 고통으로 인한 혼란은 모두 그 거짓의 언어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것들이었다. 해독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언어를 폴라에게 끊임없이 내뱉는 그레고리(찰스 보이어). 그래서 그레고리의 언어는 거짓말을 넘어서 고통과 혼란을 가중시키기위한 ‘덫’이 되고 만다. 게다가 점점 더 강해지는 이 거짓말은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점점 강렬해지는 해석의 의무를 '강압'한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마치 밖으로 밀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밖에 설치한 덫에 빠뜨리기 위해 기어이 뒤에서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랄까. ‘가스라이팅 효과’는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을 주는 사람'의 사유 속에서 행사하는 전에 없던 '폭력’이 된다.

 

긴 말 할 것 없이 여기까지만 보아도 우리는 간략하게나마 ‘가스라이팅 효과’와 ‘사랑’의 차이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둘 모두 ‘거짓말’이라는 점에서는 같아도, 사랑은 그 거짓말의 해석에 끝이 있지만 ‘가스라이팅 효과’는 그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가스라이팅 효과는 이 과정을 동원하여 ‘사랑을 주는 사람’을 전략적으로 없애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을 ‘타자’(他者)라고 하고 ‘타자’의 의미가 개인의 차원과 집단의 차원 모두를 아우른다고 하면 ‘가스라이팅 효과’의 위험성은 '타자를 향한 배타성'이라는 문제로써 더 끔찍해 질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인종적, 문화적 배타성의 문제 등은 항상 끔찍한 결과를 초래해왔다.)

그래서 요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가스라이팅 효과’는 당사자 간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 하더라도 심각하게 바라 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개인과 집단의 차원을 초월한 ‘정신의 절멸’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1944년에 개봉한 영화 <가스등>은 1940년대 전쟁사의 관점으로도, 언어학적 의미로도 지금의 이 시대에서 여전히 '거짓의 언어'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없이 정확하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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