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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윤여정과 윤여정
[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윤여정과 윤여정
  • 강선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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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배우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영화가 가진 힘을 그것의 거짓 운동에서 찾았다.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 또는 움직임들은 근본적으로 거짓이며, 영화 안에서의 움직임으로 남아 있지 않고 영화 밖의 실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짓 운동, 실재로는 일어나지 않는 그 운동이 실재 운동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운동을 단지 가리켜보이게 되는 일, 그것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고유함이다.

영화의 거짓 운동에 주목하는 이러한 바디우의 생각은 배우를 만날 때 아주 독특한 관점을 발생시킨다. 바디우는 영화의 거짓 운동에 대해 말하면서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 한 장면을 이야기한다. 경찰관이 술집 주인의 집에 찾아가 ‘당신은 당신의 오랜 친구를 잊어버렸나?’라고 묻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경찰관은 오손 웰즈 그 자신이고, 술집 주인은 마를렌 디트리히이다. 늙고 뚱뚱해진 오손 웰즈가 연기한 행크 퀸란 경위는 한때는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감만 믿고 증거를 조작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제작사와의 긴 갈등 끝에 영화 제작의 기회를 잃어가던 오손 웰즈가 할리우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만든 작품이 <악의 손길>이라는 점에서, 퀸란 경위는 오손 웰즈의 삶에 가닿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늙고 뚱뚱해졌지만 여전히 고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서 있다. 그리고 그에게 결국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오손 웰즈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할리우드 황금기를 누렸던 마를렌 디트리히이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영화 속에서도 자신의 오랜 친구인 퀸란 경위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변해버린 오손 웰즈의 모습을 훑는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경찰관이 술집 주인을 찾아가는 장면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시절을 스크린을 빠져나와 전달한다. 바디우가 주목하는 것은 이 경찰관과 술집 주인의 만남이 영화 속 움직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손 웰즈와 마를렌 디트리히, 두 사람의 실재 만남으로 우리를 데려간다는 바로 그 점이다. 할리우드 황금기를 살았던 두 사람을 그대로 이미지화하는 것,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를 현실세계로부터 빼내어 스크린으로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영화의 운동은 실재하지 않는 거짓 운동이면서 기어코 실재 운동에 가닿게 만든다. 영화가 현실세계로부터 빼내어 가져온 이미지는 현실세계에 빈 공간을 드러내고, 이것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빈 공간을 떠올리게끔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윤여정과 배우

윤여정이라는 배우는 이런 방식의 바디우의 생각에 너무도 걸맞는 배우일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스크린 안에서도 스크린 바깥의 윤여정이라는 존재와 그녀가 살아온 한국 영화의 역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배우이다. 윤여정은 2021년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신의 첫 감독이었고, 너무도 천재적이었던 감독이었다고 말했고, 또 그 뒤에는 이제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여정이라는 한 배우 개인의 역사는 그렇게 한국 영화의 역사가 된다.

 

김기영의 1971년 영화 <화녀>에서 윤여정은 시골에서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다가 첩이 되는 명자를 연기하는데, 이 명자는 김기영의 이전 작 <하녀>의 하녀(이은심)이기도 하고, 이후 작 <충녀>의 명자(윤여정)로 이어지기도 한다. 1970년대 개봉했던 여러 편의 일명 ‘호스티스 드라마’에서의 여성들과 다르게 <화녀>에서 윤여정은 순결과 정조 관념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도발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

호스티스 드라마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등 1970년대 집장촌의 성매매 여성이나 비어홀의 호스티스 등 매춘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을 말한다. <별들의 고향>은 경아라는 순수한 사랑을 믿었던 여성이 첫사랑에 실패하고 호스티스로 전락하게 되는 사랑의 역사를 그린다. <영자의 전성시대> 역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하였으나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매춘을 하게 되는 영자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창수를 밀어내는 영자의 모습에서, 그리고 경아의 역사에서 70년대 여성들이 마주한 사회적 시선과 그 시선의 내재화가 만들어낸 불행이 드러난다. 여성의 희생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분명 성적 대상화에 그치지 않고, 당시 시골에서 올라와 식모, 버스 차장, 창녀, 이 세 선택지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억압된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김기영이 그려내는 여성들은 이러한 호스티스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호스티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늘 주눅 들어있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며, 성적 대상화와 연민이라는 이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면, 김기영의 여성들은 유사한 플롯 아래에서도 늘 능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며, 가부장제를 비웃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남성들을 마치 하나의 짐승처럼 바라본다. 그들은 가부장적인 제도 아래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리고 결국 희생되면서도, 가부장제가 가진 모순을 꿰뚫어 보고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로서 표현되는 것이다. 윤여정은 김기영의 영화에서 바로 그런 여성을 연기한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김기영의 여성 그 자체라고 말해도 아무런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그런 배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화녀>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서에서 시작한다. 살인 사건과 관계된 몇몇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고, 경찰관은 한 여성에게 죽은 여자와의 관계를 물으며 말한다. ‘나는 촌에서 올라 온 여자에게 적극 반감을 갖는다. 기껏 한다는 직업들이 음탕한 직업들뿐이라니.’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촌에서는 서울 올라간 여자들이 돈을 보내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것이 김기영이 너무도 극적인 이야기들을 전개시키면서 현실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6~70년대 한국에서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시골의 여성들이 하급 노동에 내몰리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영화에는 항상 플러스알파로 시대상황이 들어가 있다.’ 김기영의 이 말은 그가 영화를 통해 목표로 했던 바가 무엇인지 잘 드러낸다.

경찰관의 말에 대한 여자의 대답으로부터 일종의 플래시백처럼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시골에서 겁탈을 당할 뻔한 명자와 경찰서의 여자는 쫓기듯 상경하게 된다. 이 장면이 윤여정의 명자라는 인물의 독특성을 잘 드러낸다. 버스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명자에게 여자는 말한다. ‘나는 결심했어. 이왕 촌을 쫓겨나온 이상 남자 털어먹는 직업을 가질 거야. 다방, 바, 돈벌이라면 뭐든지.’ 명자는 말한다. ‘난 옳게 사는 집 식모살이를 할 테야. 잘 사는 법을 지켜보고 배운단 말이야.’ 이들의 대화는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들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순수함과 순종적인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이들은 내몰리고 쫓겨났지만 여전히 당찬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이 버스 안에서도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명자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묘한 현실성을 표현한다. 서울에는 31층 빌딩이 있으니 그것을 쳐다보고 살자는 여자의 말에 명자는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고 답한다. 명자라는 여성의 독특성은 이렇게 처음부터 서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품고 올라오는 순진한 시골 소녀의 모습과의 괴리감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화녀>와 <충녀>

<화녀>에서 윤여정이 연기한 명자는 이 버스 장면과 같이 뜨개질을 하면서 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시대적으로 주어진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면서 고층 빌딩의 허상을 비웃는 여성이다. 그녀는 불륜을 저지르고 난 뒤 죄를 지은 사람처럼 욕조에 담긴 물을 손으로 퍼 마시고 얼굴을 닦아 내기도 하고, ‘이 집 남자는 애를 배게 하고 이 집 여자는 애를 떼게 하고 내 몸을 장난감처럼 다루는구나’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주인집 부부가 하고 있는 위선적인 행동들을 날카롭게 비웃기도 한다. 이런 명자라는 캐릭터는 여성에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으로 부여되었던 이미지와 그 이미지 자체의 모순성을 그 안에 담지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쥐약을 마신 명자에게 남자는 말한다. ‘너도 불쌍한 인생이다.’ 그러고는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야 ‘당신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되었구나’라고 읊조린다. 잘 사는 법을 배우러 식모살이를 시작한 명자는 ‘당신’이 될 수 없는 그 변두리에 서서 순종적인 부인이라는 안전한 지위를 얻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진하게 사랑만을 믿을 수도 없는 파멸적인 캐릭터로 남게 된다. 쥐약을 마신 명자는 그제야 이야기한다. ‘이제 뭐든지 돼요. 흙도, 물도, 바람도, 태양도…….’ 윤여정은 순수한 웃음과 도발적인 웃음, 처절한 울음과 염세적이고 자조적인 울음 사이에서 이 명자라는 여성의 다층적인 모습을 모두 구현해낸다.

 

<충녀>에서의 명자 역시 이러한 다층적인 모습들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자 명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명자를 호스티스 일로 내몬다. 이후 명자는 동식의 후처가 되어 어머니를 다시 찾는데, 그 자신 역시 후처였던 어머니는 생활비를 가져온 명자에게 ‘네 신세가 나보다 낫다’고 말한다. 명자는 이 지독한 되물림으로 인하여 울부짖는다. 이런 식의 배경에서 명자는 동식의 진정한 부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식의 부인으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부인이 만든 규칙에 철저히 따르는 양가적인 존재가 된다. 그녀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동식에게 ‘그런 건 몰라요. 사랑이란 오히려 타락을 가져온대요. 서로 필요한 것만으로 봉사하고 충성하고 희생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결코 순진하게 사랑을 믿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정받는 존재, 안전한 존재, 그리고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발버둥친다. 그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녀는 어느 무엇도 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화녀>의 대사처럼 죽고 나서야 흙도, 물도, 바람도, 태양도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명자이다.

 

이 무엇도 되지 못한 존재의 불안은 천장에서 쥐들이 떨어지는 꿈 장면이나 입양한 아기가 피를 묻힌 채 하수구로 기어 들어가는 환상과 같은 장면 등으로 표현된다. 동식의 딸이 키우는 쥐가 증식하고, 동식의 부인과 아들이 늦은 밤 명자와 동식의 집에 숨어들어오기도 했고, 또 아들이 아기를 죽인 혐의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완전히 꿈이고 환상이지는 않을지라도, 그 환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명자는 어떤 것도 온전히 취할 수 없다. 냉장고 속에 얼어 있는 아기의 형체를 보고 동식은 명자에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라고 말한다. ‘우리 식구는 너에게 잘해줬어. 다만 네가 운이 없는 거야.’ 명자는 이렇게 한 순간에 내팽개쳐진다.

첩이 되기 전, 학교에서 명자는 도둑질을 하다 선생님에게 걸렸었다. 선생님은 명자를 범인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청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젊음, 용기, 행동, 순수, 아마추어, 열병. 학생들은 그렇게 답했다. 선생님은 청춘이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용기라고 말하면서 명자에게 그 말을 반복시켰었다. ‘청춘, 그건 용기.’ 명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그렇게 외친다. 동식을 죽인 뒤 함께 죽기 위해 약을 먹고 자해를 하고 유리창 밖으로 몸을 던졌지만 죽지 못했던 명자는 사건 현장을 모두 재현하고 그 자리에서 외친다. ‘청춘, 그건 용기.’ 명자도 죽어서 집안 망신을 안 시켰어야 했다고 말하는 동식의 부인에게 그녀는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무엇도 될 수 없던 존재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윤여정이라는 역사

<화녀>와 <충녀> 이후 50년이 흘러 윤여정은 오스카에서 다시 한 번 김기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21세 무렵에 만나 50년이 지나서야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미 몇 편의 영화를 연출한 오십대의 감독이 이십대의 소녀에게서 삐딱하면서도 청승맞은 표정을 발견했는데, 그 표정을 오랜 세월이 흘러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서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윤여정은 감사를 표했다. 김기영이 발견한 윤여정의 표정은 <화녀>와 <충녀>에서의 도발적이면서도 처연한 명자의 표정이 되었고, 윤여정은 오랫동안 그 표정을 간직해왔다. 간직해왔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새롭게 발견해왔다. 윤여정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미나리>의 순자는 윤여정의 이 다면적인 표정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트렁크 팬티를 입고 앉아서 레슬링 경기를 보고 앉아있는 순자는 어린 데이빗의 시선에서는 꼭 자기를 돌봐주러 온 할머니가 아니라 괴롭히러 온 할머니 같다. 먹지 않으면 혼나는 쓰디 쓴 약을 가져오고는 자신은 마운틴 듀를 가져오라고 시시때때로 심부름을 시키는 할머니, 이불에 지도를 그린 손자를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브로큰 딩동’이라고 놀리는 할머니, 심장이 약한 데이빗에게 뛰어도 된다고 말하고, 뱀이 나오는 곳에 데려가 뱀은 보이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할머니. 그렇지만 이 할머니는 손자가 마운틴듀가 들어있었어야 하는 잔에 오줌을 담아 와도 괜찮다고 말하고, 종아리를 맞을 매를 강아지풀로 가져와도 웃는 할머니이고, 꿈에서 천사를 보지 못하면 어떡하냐고 묻는 손자를 꼭 안고 ‘내가 너 죽게 안 놔둬’ 말하는 할머니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한국의 할머니의 이미지, 타향살이를 하는 딸을 위해 한국에서 재산을 처분하여 들고 온 그런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는 딸이 살고 있는 트레일러를 보며 눈물 짓고, 남은 생의 매순간을 그들을 위해, 그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줄 그런 할머니이자 어머니일 것이다. 순자는 그런 할머니이면서 그렇지 않다. 그가 딸과 손주들의 행복을 원하지 않는 것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아온 삶의 형태가 있고 그것을 온전하게 지켜낼 뿐이다. 미나리를 가져와 심듯이, 자신의 삶을 척박한 그 땅에 다시 한 번 심을 뿐인 것이다. 윤여정은 바로 이런 할머니, 자신의 모든 삶을 송두리째 뽑아와 다시는 뿌리내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그 헌신과 희생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제껏 지켜내어 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할머니를 연기한다. 한국사회의 외할머니라는 고정된 역할에 그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순자라는 인물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나리>에서 때로는 짓궂은 표정의 할머니가 되어, 또 때로는 처연한 표정의 할머니가 되어 연기할 때, 우리는 이 할머니의 다면성에 놀라게 된다. 우리는 이토록 다채로운 할머니를 본 적이 있던가? 데이빗이 보통 할머니와 너무 다르다고 소리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데이빗을 다치게 한 서랍을 혼내주는 할머니에게서 우리들의 할머니를 본다. 어느 보통 할머니로도 환원되지 않는 순자는 그렇게 순자라는 할머니가 된다. 그리고 순자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은 인물에 평면적으로 다가가기를 거부해 온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힘일 것이다.

우리는 바디우의 이야기로 영화에서 배우가 어떻게 우리를 영화 밖으로 이끄는가를 이야기했다. 오손 웰즈와 마를렌 디트리히의 만남은 이미 지나버린 그들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윤여정이라는 배우 역시 그녀가 가진 영화의 역사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녀가 이 할머니에서 저 할머니로 다채롭게 옮겨갈 때, 우리는 그녀가 김기영의 영화에서, 그리고 이제까지 모든 곳에서 보여주었던 다층적인 이미지들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의 삶, 그녀라는 캐릭터, 영화 속의 할머니 바깥의 그녀의 모든 역사들이 순자와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힘이고,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힘일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강사 및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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