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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배우 손예진, 그녀의 영화는 계속된다.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배우 손예진, 그녀의 영화는 계속된다.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0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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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배우 손예진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배우관이다. 손예진은 올해로 연기경력 20년을 넘겼다.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매해 작품을 쉬지 않고 30여 편의 작품으로 팬들을 만나 온 그녀는 자신의 배우관을 실천한 배우다.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컨디션과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가능한 일이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여야하고 그래서 배우 손예진에게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고, 그 속에서 배우 손예진과 어울리는 작품, 그리고 배우 손예진이 하고 싶은 작품이어야 ‘선택’이 가능해진다.

배우 마이클 케인은 그의 책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에서 ‘자신에게 잘 맞고 여태 맡은 배역과 다를 때 그 시나리오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이는 손예진이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항상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와 장르에 욕심이 생긴다고 밝힌 말과도 통한다. 배우는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캐릭터를 탐색하며 자기만의 연기로 해석하고, 인물과 감정의 내밀한 부분까지 동의가 되고 그 인물을 재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영화를 선택한다.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연달아 연기하는 것은 긴장과 몰입이 필수적인데, 이 선택의 과정을 매년 쉬지 않고 손예진은 해온 것이다. 그리고 작품 선택이 가능하려면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의 영화가 기획 개발되어야하고, 배우에게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그러나 손예진이 데뷔하고 활동했던 지난 20년 동안, 여성 배우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존재했을까?

2000년대 초반 로맨스 멜로 장르가 흥행한 이후로,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영화들은 남성 버디 영화들에 밀려나거나 블록버스터 하이콘셉트 기획 영화들에 속하지 못했다. 이는 배급과 상영 시스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큰 예산의 영화가 관객을 많이 끌어들인다는 공식아래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모험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그래서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들은 저예산 영화로 많은 관객들을 만나기 어렵거나 그 조차도 기획개발이 많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 손예진이 영화시장에서 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영화 산업의 변화 속에서 스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기 세계에도 변화를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멜로 퀸

손예진은 드라마 <맛있는 청혼>(2001)과 <선희, 진희>(2001)에서 착하고 순수한 장희애, 선희 역할로 데뷔했다. 영화는 <취화선>(2002)에서 장승업의 첫사랑인 소운의 역할로 데뷔했다. 손예진이 데뷔한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멜로 장르가 영화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흥행하는 장르는 반복해서 제작되기 때문에, 당시 손예진의 선택지는 멜로가 많았다. 손예진은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여배우로 사랑받는 캐릭터들이 청순하거나 가녀리거나 슬픈 느낌들이 많았었기에 작품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손예진은 영화 첫 주연작 <연애소설>(2002)에서 한 남자를 절친한 친구와 동시에 사랑하게 된 수인 역할을 하며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까지 친구를 생각하는 착하고 순수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어 <클래식>(2003)에서는 운명 같은 사랑을 하는 엄마와 딸, 1인 2역을 맡았다.

 

클래식
클래식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던 작품들 속에서, 데뷔 초기였던 손예진이 1인 2역을 해야 하는 <클래식>을 선택한 것은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엄마 주희가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현재의 딸 지혜가 운명적으로 완성해가는 영화에서 손예진은 주희를 주희답게, 지혜를 지혜답게 그려냈다. 단적인 예로 과거의 주희가 설레는 마음으로 가로등 계단에서 준하에게 달려가던 모습이나, 준하와 함께 비를 맞던 모습을 현재의 지혜가 상민과 함께 상민의 점퍼를 뒤집어쓰고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나, 상민의 우산을 들고 상민을 찾아 혼자서 빗속을 뛰던 지혜의 모습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특히 지혜가 상민을 향해 빗속을 달려가던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지혜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상민의 긴 우산을 들고 양팔까지 펼치며 뛰는데, 큰 동작과 함께 지혜의 충만한 감성이 우러나는 표정까지 흔들림 없이 보여주었다. 상민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을 알아버린 기쁨의 미소는 풀숏에서도 표정이 보일 만큼 좋았고, 탄탄하게 신체 훈련이 잘 된 배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후 로맨틱 코미디인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에서 바보처럼 아버지에게 끌려 다니며 자신을 지켜주기만 하는 남자친구를 답답해하는 주일매 역할을 코믹하게 표현했다. 드라마 <여름향기>(2003)에서는 혜원 역할을 맡아 혜원에게 심장을 이식해준 사람의 연인이던 남자와 슬픈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손예진을 멜로 퀸으로 만들어준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를 만난다. 회사 선배를 사랑했지만 배신당하고 불륜녀라는 소문까지 나서 마음 아파하는 수진역을 맡은 손예진은 영화 초반 짙은 아이라인 메이크업을 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처받은 수진을 표현했다. 이후 철수와 사랑은 이루어지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면서 모든 것을 잊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게 되는 수진을 애절하게 연기했다.

 

외출
외출

2005년부터 손예진은 기존 청순한 이미지를 뛰어넘어 배우 손예진 자신을 뛰어넘는 선택을 한다. 바로 <외출>(2005)이다. 바람 난 남편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내 서영 역할은 당시 손예진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캐릭터를 맡았다고도 화제가 되었다. 서영은 일하는 여성들을 부러워하는 전업주부이자 남편과 상간녀가 일으킨 교통사고를 수습하며, 상간녀의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딜레마를 가진 인물이다. 손예진은 깊은 눈빛으로 서영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베드신까지 소화했다. 이후 <작업의 정석>(2005)에서는 클럽에서 섹시댄스까지 추며 연애의 밀당을 주도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밝고 앙큼한 바람둥이 여성 한지원 역할로 돌아왔다.

멜로와 로맨스 장르를 넘나들던 손예진은 좀 더 나아간 시도를 한다. 드라마 <연애시대>(2006)에서 유산의 아픔으로 이혼한 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재결합을 끌어내는 유은호 역을 맡은 것이다. 여기서 손예진은 20대 중반의 나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스타성과 연기력 모두를 한 번 더 입증하는 배우가 되었다. 유은호는 겉으로는 밝고 당차지만, 내면에 깊은 아픔을 가졌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인물이었다. 손예진의 목소리로 말하는 유은호의 내레이션은 인물의 변화를 진중하게 그려냈고, 그가 흘리는 눈물은 기존의 손예진이 맡았던 몸이 아픈 여성 캐릭터 <연애소설>의 수인, <여름향기>의 혜원,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수진이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의미로 표현했다. 유은호의 미소도 기존 손예진에게서 본 적 없던, 지난 아픔을 눌러두고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이는 미소였다. 손예진의 연기 인생을 어떤 이들은 <연애시대>의 전과 후로 나눌 만큼, <연애시대>는 배우 손예진의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연애시대> 이후 손예진은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도 시도한다. <천년여우 여우비>(2006)로 구미호 여우비의 호기심 가득하고 순수하면서도 중성적인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리고 영화 시장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멜로 장르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로맨스 장르는 멜로 장르보다는 형편이 나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제작편수가 줄어든 것이 현실이었다. 손예진은 자신에게 맞는 작품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변화를 시도한다.

 

무방비 도시
무방비 도시

<무방비 도시>(2007)에서 손예진은 소매치기 조직의 리더 백장미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악녀 팜므파탈로 변신했다. 소매치기를 하는 날렵하고도 가벼운 손놀림, 짙은 아이라인 사이로 독기 있게 반짝이는 눈빛은 처음 보는 손예진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스포트라이트>(2008)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서우진 역할을 거쳐, 손예진은 또 하나의 인생 작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선택했다.

 

로맨틱 퀸

당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들은 기존 신데렐라 콘셉트의 여성 주인공에서 벗어나 2000년대 초반부터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거나 여성이 우위에 있는 로맨스를 그려왔다. 그런 흐름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는 성별 인식을 전복하는 스토리의 정점을 찍은 신선한 작품이었다. 박현욱 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공 주인아는 축구를 좋아하고 일도 사랑도 원하는 대로 주도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남편 덕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인아. 그 말에 당연히 덕훈은 화를 내는데, 인아는 “내가 무슨 별을 따 달래 달을 따 달래? 난 그냥 남편만 하나 더 갖겠다는 것뿐인데....”라고 말한다. 그런 주인아를 손예진은 세상 억울하고 귀여운 표정으로 표현했다. 덕훈의 입에서 쏟아진 대사대로 “정말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말 같게 하는” 능력을 갖춘 주인아를 손예진은 원작 소설에서 상상되던 인물보다 더욱더 능청스럽고 사랑스럽고 짠하며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렸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소설원작 영화를 한 번 더 선택한 손예진. 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 <백야행>을 원작으로 한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이후 <백야행>)에서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성공을 향해 살아가는 미스터리한 인물 유미호를 연기했다. 미호와 요한의 슬픈 사랑이 전반에 깔려있지만, 미호는 그릇된 욕망으로 자신을 지켜주었던 요한을 지켜주지 못하게 된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딜레마를 안은 미호를 연기하며 손예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고 호평 받았다. 이후 드라마로 복귀한 손예진은 <개인의 취향>(2010)에서 일도 사랑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진취적인 여성 박개인을 연기한다. 박개인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상고재를 지키면서 게이로 위장한 연하남과 동거하게 되며 사랑에 빠지는 인물인데 이를 밝고 털털하게 연기하면서 보이시한 매력까지 보여주었고 여성 팬들이 많이 생겼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2001년 데뷔한 손예진의 10년은 그렇게 숨 가쁘게 흘러갔다. 1982년생 손예진은 2001년 데뷔해서 2000년대 초반 멜로 퀸의 입지를 굳혔고, 2000년대 중후반 밀도 있는 연기로 손예진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창조했다. 멜로, 로맨스 장르를 선택하더라도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고 변신했던 손예진은 2010년대로 들어서면 장르와 캐릭터에 더욱 색다른 도전을 매해 거침없이 해나갔다. 앞서 멜로 장르는 2000년대 후반 쇠락의 길을 걸었고 현재까지도 전멸하다시피 되었고, 2010년대는 로맨스 장르가 타 장르와 혼성되면서 생존을 이어가던 때였다. 여성 캐릭터가 주도할 수 있는 장르 시장이 주춤하면서 그나마 존재하던 여성 배우들의 자리마저 좁아진 시기였고 작품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지만 어느덧 서른이 된 손예진의 세계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에는 매해 새 작품을 선택하고 쉬지 않는 그녀의 행보에 ‘성실하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그녀의 시간은 그녀가 성실한 것을 넘어, 여성 배우로서 어떻게 영화 시장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결과가 됐다.

2010년대 첫 작품은 <오싹한 연애>(2011)였다. 로맨스와 호러 장르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적 시도 아래 손예진은 기존 로맨스물의 여성주인공과 달리 어둡고 엉뚱하면서도 슬픈 강여리 역할을 맡았다. 귀신을 보는 탓에 연애는커녕 소소한 인간관계조차도 맺기 어려운 여리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영화 중간 귀신이 등장할 때마다 호러 장르의 리액션을 함께 하면서 연기했고 장르도 내용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여전히 로맨틱 퀸임을 입증했다.

 

오싹한 연애
오싹한 연애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결합을 연기했던 손예진은 다음 작품으로 블록버스터 재난물인 <타워>(2012)를 선택했고, 원톱 주연이 아닌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손예진은 한국에 없던 소재의 영화이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108층 주상복합 빌딩 화재 속에서 썸남의 딸아이를 데리고 탈출해야하는 서윤희 역을 맡아 몸 사리지 않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뒹굴라면 뒹굴고, 뛰라면 뛰고, 해야 할 액션을 시키는 대로 모두 소화했다는 그녀. 연달아 <공범>(2012)으로 돌아와 15년 전 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아버지를 의심하면서도 아버지를 믿고 싶은 딜레마를 가진 정다은을 내밀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드라마 <상어>(2013)에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검사가 되고 가족과 갈등하는 조해우를 연기했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타워>에 이어 다시 블록버스터 액션이자 사극에 도전한 손예진. 이번에는 여성 주인공에 남성 주인공이 함께하는 투톱 영화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서의 여월은 고래가 삼켜버린 조선의 국새를 찾는 여성 해적 대단주로, 해적이기에 무술과 선상 액션을 당차게 벌이는 캐릭터다. 무뚝뚝하면서도 부하들을 챙기는 츤데레 같은 여월을 낮은 톤의 사극 대사로 연기했고,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캐릭터와 블록버스터 사극영화로 흥행에 성공하며 손예진의 세계를 더 넓혔다.

그리고 문제작 <비밀은 없다>(2015)를 만난 손예진은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이자, 남편의 국회 진출을 돕는 아내인 연홍 역할을 맡았다. 선거 운동 첫날 딸이 실종되고, 남편의 선거에 방해가 될 거라 적극 수사를 못 하는 상황에서 연홍은 홀로 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딸에게 김밥을 먹이며 잔소리를 하는 편안한 엄마로, 남편을 내조하는 다정한 아내로 살던 연홍이 실종된 딸을 찾아가면서 자신이 그동안 어떤 엄마로 존재했는지 자각해 가는 과정을 손예진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시나리오에 적혔을 연홍의 특이한 모성과 그리고 가학적으로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손예진은 연홍이 겪는 변화와 간극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표현해 주어야 했다.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

영화 오프닝에서 공허한 눈빛으로 딸이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연홍의 첫 얼굴로 손예진은 연홍이 마지막에 밝혀내게 될 비밀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암시해주었다. “내 딸이 사라졌는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내레이션에 이어 수사기록을 얻지 못해 점점 미쳐가는 연홍의 벌건 눈빛은 딸의 죽음을 목도하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며 점점 광기 가득한 눈빛으로 변해버리고 사건을 해결한 뒤 상실의 눈빛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는 손예진의 손도 눈에 띄는데, 몇 장면을 짚어보면, 딸을 위해 김밥을 썰고, 남편의 국회의원 선거 홍보 차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춤동작을 하던 그녀의 발랄한 손짓은, 딸을 찾아달라며 손소라 선생에게 무릎을 꿇고 그녀의 종아리를 꼭 감싸 쥐며 매달리는 손으로, 딸을 찾아 나서지 않는 남편에 대한 증오를 담아 선거 홍보물을 선뜩하게 가위질하고, 결국은 자신의 왼손 등을 그 가위 끝으로 찍어 누르며 자해를 하는 손으로, 딸의 장례를 치른 뒤 다가오는 남편을 거절하기 위해 단호히 밀어내듯 들어 올린 양손으로 표현했다. <비밀은 없다>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손예진이 배우로서 가능한 연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이후의 손예진은 한중합작 영화 <나쁜 놈은 죽는다>(2015)를 선택해 납치된 조카를 구하려는 비밀스러운 여성 지연 역을 맡아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고, <덕혜옹주>(2016)에서는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났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덕혜옹주의 비운의 삶과 여정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덕혜옹주
덕혜옹주

그리고 다시금 멜로 영화로 돌아온 손예진은 인터뷰에서 2000년대 멜로 로맨스 장르가 다시금 주목받기를 기대하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7)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아들 지호와 남편 우진을 향해 기적 같은 사랑을 이어가는 수아를 통해 손예진은 20대 때의 멜로와는 다른 밀도로 30대 손예진의 멜로 연기를 보여주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0년대 손예진의 마지막 영화는 <협상>(2018)이었다. 침착하고 냉철한 위기협상팀 소속 협상전문가 하채윤으로 돌아와 인간적이면서도 냉철한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손예진은 드라마에서 다시 로맨스를 택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와 <사랑의 불시착>(2019-2020)으로 손예진은 여전히 로맨스 퀸이다.

 

협상
협상

2010년대 손예진의 영화 활동은 <협상>을 끝으로 마무리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제기된 여성 서사와 여성 영화인에 대한 영화 산업 내의 자성에 힘입어 2010년대 후반부터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손예진이 팬들을 기다리지 않게 했던 작품 활동의 의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 이미지를 유지하며 작품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고, 크고 작은 예산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 역할을 꾸준히 연기한 것은 여성 주인공과 여성 서사에 대해 한국 영화 시장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모든 배우가 변신하지만, 손예진의 변신과 끊임없는 작품 활동에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 시장의 변화에서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여배우 기근이 아니라 여배우 소외 현상까지 언급되던 상황에서 손예진은 여성 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그렇게 손예진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 서사를 갖추고, 주체적인 여성을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남성들이 주도하던, 액션,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작품을 선보여 여성 배우들도 장르의 제한을 뛰어넘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여성 주인공의 블록버스터도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녀의 필모그래피로 입증했다. 앞으로도 손예진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팬들은 그녀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매년 작품으로 돌아올 것이니까.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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