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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다르지 않다, 그러나 평등하지 않다
[양근애의 문화톡톡] 다르지 않다, 그러나 평등하지 않다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1.05.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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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서 나온 수상 소감에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발화되었음에도, 그 말이 언어 표상 너머 진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대중적 파장이 이토록 미미할 수가 있을까. 내가 미처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포털 사이트 검색을 시도해보았다. 수상자가 발표되던 날 저녁과 다음 날까지 연극인 동료들의 가슴을 울린 수상 소감은 주요 일간지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유튜브 검색을 시도했다. 영화 부문에서 이준익 감독이 상을 받을 때 참석자들이 기립을 했는데 예능 부문에서 유재석이 대상을 받을 때에는 기립하지 않았다는, ‘예능 홀대 논란’에 관한 영상들이 조회수 백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백상예술대상에 18년 만에 연극 부문이 부활한 지 올해로 3년째, 힘든 상황에서도 매해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온 배우, 연출가들이 수상하는 것을 보며 내심 뿌듯했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거나 객석이 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시청률에 준하는 관객수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인기순이 아니라 동시대적 의제를 세심하게 다룬 작품들을 기억하는 심사위원들의 밝은 눈에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좋으면서도 속이 상한다. 논란이 되지도 못하는 ‘연극 홀대’에 관한 볼멘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 세례에 익숙하지 않은 연극 부문 수상자들의 소감이 시상식의 관습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기쁨과 감사의 소회를 이탈하는 듯한, 일종의 호소로 읽힐 수밖에 없는 어떤 맥락이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다. 모두를 향한 발화이지만 듣는 사람의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신되고 심지어 축소되고 왜곡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은, 의사전달 불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를 연출한 구자혜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부끄럽지도 않고, 용기를 내고 싶어서입니다. 이 공연을 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대단하다, 용기를 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신념과 용기를 낸 사람은 이 공연의 대본을 쓴 이은용 작가입니다. 그는 본인을 생존하는 트렌스젠더 작가로 가시화하면서 객석에 앉아 있는 또다른 트렌스젠더들의 삶에 마음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연출로서 트렌스젠더 프라이드를 갖고 연출을 했고 배우분들은 선언이 연기가 될 수 있도록 발화의 개념을 고안하셨고 스태프분들은 이들의 말이 극장을 넘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기술을 운용했습니다. 수어통역사와 음성해설 작가분은 이 연극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언어를 벼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창작진들이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는 소중하고 훌륭한 연극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삶과 선택 이야기는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신념, 유머를 우리에게 건네준 은용과 함께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의 존재는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을 감히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중에라는 합리화로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는 정권이 부끄러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을 받은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구자혜 연출의 소감을 받아 쓰면서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을 담아내기 어려운 글의 한계를 느낀다. “어떤 사람의 존재는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당연한 말을 뱉어내기까지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사진 출처: 오마이포토
사진 출처: 오마이포토

 

지난 3월 31일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에서 트렌스젠더의 정체성 자체를 기념하고자 2009년에 만든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의 날이었다. 사진 속 문구처럼 퀴어는,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 숨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시화’ 되어야 한다는 역설은 한 달 새 한꺼번에 떠나보냈던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활동가와 이은용 작가의 중단된 삶을 차마 애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은 다름 아닌 혐오와 차별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을 믿은 어느 여성의 죽음’이라는 글은 변희수 하사의 마지막 결정이 결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님을 드러낸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변희수 하사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으며 성확정수술을 결정했고 소속 대대의 지지를 받아 치료를 받았다. 주특기인 전차 조종 성적에서 대대 하사 중 유일하게 A를 받고, 공군참모총장상도 받았던 변희수 하사는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강제 전역 당한다. 끝까지 국가와 군대를 믿었지만 인권위의 결정을 무시한 육군으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하고 생계의 위험에 놓이면서 그가 겪었을 외롭고 고된 싸움을 어찌 다 형언할 수 있을까. 

동성애를 ‘찬반’의 도마 위에 놓고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를 입에 담는 정치인이 있는 세상에서 일상의 혐오와 차별을 떨쳐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이주민도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며 함께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인종, 성별, 성정체성, 신체조건(장애), 외모, 나이, 출신 국가, 민족, 지역, 언어, 피부색, 병력,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여부, 가족 형태, 종교, 사상, 범죄전력, 학력 등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다른 요인들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골자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다르게 태어났지만,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 인간적인 존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사실은 자주 망각되고, 더 많은 자본을 쥐고 태어난 사람의 죽음은 대대적인 추모의 대상으로 조명하면서 부당하게 차별당하거나 빈곤 속에서 최소한의 존엄을 박탈 당한 죽음과 안전 시설 미비로 인한 재해와 사회적 참사로 인한 죽음에 대한 애도는 시혜의 시선으로 치르는 기이한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을 살고 있다. 다행히 아직 나에게 닥치지 않은 불행에 안도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체 없는 정상성의 허구적 위계 하에 사는 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을 가진 자 앞에서 덜 가진자들은 언제나 미달 된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과 이격 되지 않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승인하며 살 수 있어야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 그것이 기본이다. 그러니 신체의 일부분이 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는 치료나 회복의 대상으로 단순화 될 수 없다. 성정체성은 고칠 수 있는 병이나 취향으로 호도될 수 없다. 더 많은 다양한 삶들이 가시화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이 모색되지 않으면 불평등이 기본이라고 승인하는 기울어진 세계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불평등은 사회의 위험 신호다. 자유에 침식당한 평등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민주주의의 역설을 고민하고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정치인은 소수지만,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자기와 이웃의 행복을 지향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기로 결심한 소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가족에게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고 외면당하지만, 허울뿐인 제도적 관계의 허점을 발랄하게 찌르며 동성 애인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나는 아주아주 행복한 사람으로 죽을거야”라고 말하는 소설 「사랑하는 일」이 그랬다. 성적 정체성을 승인받기까지 겪는 괴로움과 고통에 할애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받았던 기억을 간직하며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이미 많이 보아온 이야기지만, 소수자의 일상과 욕망과 소망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는 뭉클해졌다. 너무 귀한 삶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들이 남긴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존재는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 당연한 말이 너무나 당연해서 언젠가 농담이 되기를 바란다. 

 

 

글 · 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을 수상했다. 기억과 역사의 길항 및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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