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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셀프 포트레이트 2020>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셀프 포트레이트 2020>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15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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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포트레이트> 포스터

이동우 감독은 “자기만큼 멋지다”고 말을 걸어온 노숙자 이상열을 만난다. 감독이 이상열을 세 번째 만난 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과를 나왔고 방송국을 다녔으며 첫 번째 단편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분에 초청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작품을 찍고 싶다는 이상열의 말에 이끌려 감독은 탑골 공원에서부터 그의 노숙자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감독은 영화와 카메라를 매개로 친구가 된 이상열의 3년의 시간을 기록한다. 노숙자, 영화감독, 알콜 중독자와 같이 이상열을 둘러싼 호칭의 낯선 조합은 이상열의 인생 만큼이나 영화도 예측불허로 흘러가게 한다.

 

이상열의 첫 등장 
공사음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이상열 

<셀프 포트레이트 2020>에는 두 개의 영화가 있다.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이상열의 단편 <자화상2000>으로 시작해 끝맺음을 하고, 전체적으로는 이상열이 연출하고 이동우가 촬영하려고 기획 중인 영화의 진행 과정(이라기 보다 시도)을 담고, 그렇게 두 영화가 엉켜 이동우 감독 이상열 주인공인 <셀프 포트레이트 2020>가 탄생한다. 영화와 영화, 인물과 인물의 관계는 유연한 듯 낯설다. 특히 이들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성이 그렇다. 현재 <셀프 포트레이트 2020>는 과거의 <자화상2000>과 미래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열의 두 번째 영화를 동시에 품고 있다.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인과적이거나 선형적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세 영화는 이상열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면서 각자 독자적으로 나열되어 키치적 감성을 만들어낸다. (2000년대 초반 신파적이고 비애미 가득한 극영화와 2020년의 포스트 시네마 감각의 다큐멘터리는 ‘독자적-공존’을 통해 나름의 감각을 구축한다.)

 

이상열 영화 <자화상 2000> 
이상열 영화 <자화상 2000) 

영화에는 두 명의 감독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둘 다 당대 주목받는 신인 감독이라는 유사성으로 인해 거울이라거나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 영화는 이동우와 이상열의 기묘한 우정의 산물이다. 처음부터 영화는 감독 이동우가 노숙자 이상열을 찾아간 영화가 아니었다. 자기만큼 멋지다고 먼저 다가온 이상열을 재미난 어른으로 만났고, 영화 도입부도 술 먹은 이상열의 전화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이상열이 다가와 이상열 스스로가 열어준 공간에 이동우가 들어간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열은 이동우의 일인칭 관찰 카메라 앞에서 때론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때론 술에 절어 카메라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을 무방비로 내보인다. 어쩌면 이상열은 늘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상열은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때론 활용하고 때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든 이동우는 그런 이상열을 이상열이 보여주는 그대로 담는다. 실제 이동우 감독은 영화 GV에서 흔들리는 카메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상열과 함께 할 때 카메라를 보고 있기보다 이상열과 그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감독은 카메라와 더불어 상호작용하면서 감독이자 대상의 자리와 역할을 의도치 않게 넘나든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은 말그대로 예측불가의 영화이다. 인생과 영화는 ‘정상성’의 이름 아래 ‘어떤’ 공식이 있다. 먼저 인생 공식은 태어나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 등과 같은 수순이, 영화에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기승전결 서사를 가진다는 류의 공식이 존재한다. 예측가능한 삶과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은 영화의 주인공 이상열은 이미 예측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만큼, 영화 자체도 예측이 불가하다. 영화는 브레송을 언급하며 비애미 가득한 90년대 독립단편 극영화에서 출발해 2018년 술취한 이상열을 보여주고 한줄 자막으로 2017년 이상열과의 첫만남을 말한다. 영화는 현재 정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이상열을 보여주듯 시종일관 핸드헬드의 흔들리는 카메라로 그를 담고, 점차 이상열의 영화 또한 이상열의 과거 자전적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그렇게 영화는 이상열의 영화와 이상열의 삶을 파편적으로 엮어가면서 이동우의 영화로 나아간다. 영화는 극적 사건이 부재하지만 이 예측불허의 흐름으로 인해 긴장감이 가득하다. 마치 방향감각 없이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거리 한복판에서 서 있는 이상열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편견에서 자유롭다, 영화는 이상열 만큼이나 노숙자를 담는 방식이 입체적이다. 앞 서 언급한 것처럼 카메라가 노숙자를 기록하기 위해 다가가기 보다 노숙자들이 자발적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경우가 더 많은 작품은 기존의 노숙자에 대한 편견을 자연스럽게 뒤흔든다. 노숙자를 사회 밑바닥으로 내몰린 인간 혹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영화는 노숙자 개개인의 개성과 인성을 담고 심지어는 특정 노숙자에게 궁금함까지 자아낸다. 삶의 궤도에서 내몰린 점도 있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임을, 이상열의 표현에 빌면 “자유”다. 무엇보다 이들 노숙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찍히는 대상이 아니라 카메라를 알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전시하는 대상이자 주체이다. 거기에는 카메라 뒤에 있는 이동우 감독과의 관계가 전제된다.

사실 이 영화는 정제된 문자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작품이 아니다. 설명이나 의미 부여를 하기 보다 영화가 가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감각이 전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주하지 못하고 궤도 일탈한 한 인물과 만남과 관계를 전제로 한 우정의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 영화를 가만히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면, 표면을 다루는 시각의 이미지를 넘어서 후각과 촉각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영화의 매혹이자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셀프 포트레이트 2020>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 특별언급이 되고,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대상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의 고정필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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