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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벌이 많아지면 더 달콤한 세상이 됩니다
도시에 벌이 많아지면 더 달콤한 세상이 됩니다
  • 안치용, 황경서 기자
  • 승인 2021.06.19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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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ESG시민혁명5]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
▲  꿀벌에 뒤덮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졸리는 생태계와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벌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이런 파격적인 화보를 찍었다.ⓒ 안젤리나 졸리 공식 인스타그램
▲ 꿀벌에 뒤덮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졸리는 생태계와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벌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이런 파격적인 화보를 찍었다.ⓒ 안젤리나 졸리 공식 인스타그램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었다. '세계 벌의 날'은 생태계 균형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벌의 이로움을 알리고 보호를 호소하기 위해 유엔이 2017년 12월 지정했다. 올해로 4회를 맞은 세계 벌의 날은 꿀벌 6만 마리에 뒤덮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화보가 대거 보도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세계 벌의 날에 맞춰 공개한 졸리의 화보는 양봉가이자 사진작가인 댄 윈터스가 촬영했으며 졸리는 꿀벌을 유인하기 위해 여왕벌 페로몬을 몸에 발랐다. 방충복을 입은 촬영 스태프와 달리 졸리는 하얀색 드레스 차림으로 촬영에 임했다.

졸리가 파격적인 화보를 찍고 유엔이 '세계'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념일을 새로 만든 이유는, 벌이 생태계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고 벌의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야생화의 90%, 식량작물의 75%가 수분을 할 때 매개동물에 의존하며 벌은 핵심 매개동물이다. 수분은 생태계 유지의 근간을 이룬다. 

도심에서 양봉을 
 

▲  도시 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 어반비즈서울
▲ 도시 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 어반비즈서울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는 세계 벌의 날을 맞아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다. 세계 벌의 날 당일인 지난달 20일엔 서울 성동구 서울숲 꿀벌정원에서 어린이들이 그린 벌 그림이 들어간 꿀벌통들을 늘어놓고 세계 벌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이틀 전인 18일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생활ESG행동 사무실에서 열린 '생태도시와 생활ESG행동'을 주제로 한 라운드테이블에 초대받아 서울의 도시 양봉을 소개했다.

2013년 설립된 어반비즈서울은 도시 양봉가를 양성하고 도시 양봉 기반을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8년에 산림청 산하 예비 사회적기업이 되었다.

박 대표는 원래 우체국쇼핑과 공공기관 등에서 일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중 취미로 한 도시농업을 본업으로 삼기로 하면서 어반비즈서울을 창업하게 되었다. 도시농업·환경·지역경제를 고민하며 차별화가 가능한 재미있는 사업을 구상하다가 박 대표는 벌을 주목했다.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와 박찬 이사는 형제사이다. 먼저 도시 양봉에 뛰어든 동생 박진 대표를 보고 가능성을 확인한 박찬 이사는 '벌로 새로운 삶을 만들고 싶다'라고 결심하고 2015년 4월 어반비즈서울에 합류했다.

2006년 이후 세계적으로 벌의 개체 수는 40%가량 감소했고, 2010년 이후 국내 토종벌은 90% 가까이 사라졌다. 형제는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벌을 지키는 것을 어반비즈서울의 사업목표로 삼았다. 벌을 지키려면 벌과 친한(bee friendly) 도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세부 목표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도시에서 양봉을 하면 생태계에 선순환을 가져온다. 도시 양봉은 꽃의 발화율을 약 20% 상승시키는데, 곤충의 수가 더불어 늘어나며 도시에 소형 새가 유입되는 결과를 낳는다. 벌이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는 시작점인 셈이다. 현재 어반비즈서울은 서울을 포함한 인천과 경기도에 22곳의 도시 양봉장과 7곳의 꿀벌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숲이나 어린이대공원과 같은 공원, 숭실대학교와 송도고등학교와 같은 교육 공간 등에 양봉장을 설치했다.

박 대표는 "생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재미있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을 앞세우다 역효과가 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먼저 흥미를 유발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그 활동에 스며들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적인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라며 "학교에서 생태적인 부분을 강조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어반비즈서울은 생물 다양성에 관한 필수교양 수업을 신설하는 것을 서울 시내 대학과 논의하고 있다.
 
더 달콤한 세상을 위해 

▲  꿀벌ⓒ 어반비즈서울
▲ 꿀벌ⓒ 어반비즈서울


어반비즈서울은 'Beyond Honey, 꿀 너머 다른 세상을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이들의 철학은 여타 양봉 사업과 차별화한 양봉 과정에서 드러난다. 양봉과 함께 Bee119 꿀벌 구조대·예방단을 통해 벌을 구조한다.

2017년 기준으로 소방관의 연간 출동 횟수는 65만 건이며 그중 벌집 제거를 위한 출동 횟수가 15만 건이었다. 벌집 제거 출동이 화재진압 출동보다 많았다. 출동을 포함, 벌집 제거로 약 225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명구조에 특화한 소방관은 벌의 습성에 익숙하지 않아 벌집 제거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부분 벌과 벌집을 아예 없애버린다. 어반비즈서울은 꿀벌을 산 채로 구조하는 구조대와 주로 봄철에 돌아다니는 말벌을 미리 잡는 예방대를 운영하며 도시 양봉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 성동소방서 등과 협약을 맺고 활동 중이며, 어반비즈서울의 활동으로 소방관의 출동 횟수가 15% 준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구조된 꿀벌은 도시 양봉장으로 옮겨진다. 도시 양봉장을 관리하는 이들은 'beegin again'이라고 불리는 양봉가이다. 이들은 도시 양봉 기술을 익힌 후 서울과 수도권 내의 도시 양봉장 관리자로 활동한다.  

▲  도시 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들ⓒ 어반비즈서울
▲ 도시 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들ⓒ 어반비즈서울


어반비즈서울은 2017년에 성동구 지역자활센터와 협약을 맺어 'beegin again, 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양봉 기술 학습에 앞서 지역자활센터의 면접을 거친 양봉가 지원자는 일주일간 양봉장을 다니며 도시 양봉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시간을 거쳐 자신이 도시 양봉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 양봉사업단에서 활동할 기회를 부여한다.

현재는 7명의 'beegin again' 활동가가 있다. 이들이 생산한 꿀은 어반비즈서울에서 전량 수매하여 유통한다. 2019년에 약 2t의 꿀이 생산되었다. 판매수익금 일부는 지구를 살리는 활동의 일환으로 꿀벌 정원과 꿀벌 숲을 조성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대규모 양봉 지대를 만드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아직은 작은 정원 단위로만 진행 중이다. 대부분 양봉장이 서울 시내 건물의 옥상에 있으며 서울숲이나 한강 잠원지구에 꿀벌 정원과 꿀벌 숲을 만들고 있다. 현재 7곳의 꿀벌 정원과 꿀벌 숲이 있다.

어반비즈서울은 2025년까지 서울 내에 도시 양봉장 250곳을 운영할 계획이다. 자치구마다 10곳의 양봉장이 설치되는 것을 의미하며, 25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양봉이 가능한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에서 사용하는 가로수 농약을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벌이 사라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농약이기 때문에 현재 어반비즈서울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만이라도 벌에 해로운 농약을 사용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벌에게 이로우면 사람에게도 이롭다.
 
꿀벌이 살 수 있는 도시 
 

▲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 어반비즈서울
▲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 어반비즈서울


박 대표는 "도시화로 꿀벌이 살 곳이 사라지고 있어서 인간과 꿀벌이 공존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으며, 도시 양봉과 더불어 야생벌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꿀벌은 벌 세계에서 10% 비중일 뿐 나머지 90%는 야생벌이다.

벌 자체의 생존에 관한 활동을 펼치지 않고선 벌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복원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야생벌을 연구하는 사람이 적다. 어반비즈서울은 벌들이 어디서, 어떻게 꽃가루를 모아오는지에 관한 이력과 어느 범위까지 수분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나무와 꽃을 선호하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며 자체적으로 연구자료를 쌓아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도시는 벌이 선호하는 공간이다. 고온 건조한 기후, 먹이의 다양성, 농작물이 없어 농약이 적게 살포된 환경, 넓은 꽃밭 그리고 경쟁상대나 천적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환경 상태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표종으로, 꿀벌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사람도 살 수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꿀벌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생태 도시의 기본이 된다.

UN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이 세계 100대 농작물 71%의 수분을 매개하고 있다. 꿀벌 의존도가 100%인 아몬드는 벌이 사라지면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사과나 양파 등도 수분의 90% 이상을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꿀벌 같은 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사라지면 과일과 채소값이 급등해서 한 해에 140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

벌을 살리겠다는 어반비즈서울 박 대표의 포부는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태도시의 구축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더 많은 꿀벌과 야생벌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치용(ESG연구소장 겸 '생활ESG행동' 시민행동본부장)
황경서(바람저널리스트)

사진 

어반비즈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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