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구매하기
[최양국의 문화톡톡] 비 – 증기 그리고 힘 의지
[최양국의 문화톡톡] 비 – 증기 그리고 힘 의지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05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비는 태양의 별을 타고 하얗게 내린다. 하얀 별마다 꽃이 핀다. 내 꿈을 꾸는 나비가 침묵의 노래와 함께 하늘 거린다. 비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선물하는 감성, 힘 그리고 사유이다. 그 떨어지는 시간과 함께 젖어 드는 마음은, 흔들리듯 그림을 찾는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일까? 열대지방 스콜(squall) 같은 국지성 호우로 인해 뒷북이 가끔 울린다. 예년보다 10여 일 늦게 찾아온 장마는 감성적 차 한잔과 우산과의 이별을 미완성으로 남긴다.

 

내리는 / 비를 보며 / 생명체 / 근원 좇고

 비는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의 집합체로서 생명체의 근원이며, 자연 생태계의 유기체적 물의 순환 현상을 나타내는데 지속성과 반복적 영원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러한 비의 종류는 비가 내리는 시공간 및 그 양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이름을 갖는데, 우리의 농경문화를 반영하듯 순우리말이 유독 많다. 가루처럼 뿌옇게 내리는 가루비,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조금 가는 는개,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억수,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는 장대비,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오는 소슬비, 그리고 비이슬(비가 내린 뒤 풀잎 따위에 맺힌 물방울) 같은 어린 시절의 감성을 닮은 황순원의 비등.

비는 지나가 버린 시간을 투영하며 빗방울로 내린다. 빗방울들은 하나하나가 음표가 되어 크고 작은 음악회를 연다. 빗소리는 시공간에 어울리는 리듬과 운율을 좇아 연주하며, 침묵과 여백을 더한 변주를 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의 원인은 일차방정식의 해와 같이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일한 해를 갖지만, 불행은 다차 방정식의 해와 같이 각자 상황적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복수의 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에 관한 미술사적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는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1890년)이다. 그는 고갱(Paul Gauguin, 1848년~1903년)과 함께 그들 그림의 독특함 만큼이나, 유럽 미술계의 ‘불행 브라더스’의 전형이라고 할 정도의 고생을 하며 불행한 삶의 궤적을 남긴다.

유럽 미술의 경우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비 오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별로 없다. 그 이전에는 비가 막 그쳐서 먹구름이 물러가며 무지개가 떠오르는 장면등, 비가 내린 후의 그림이 드물게 보일 뿐이다. 이제 다차원 불행방정식의 해를 갖기 위해 놀랄만한 예술가적 창조적 열정과 곡선형 비애의 길을 걸은 고흐의 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원래 고흐는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대상이 된 소재를 바라보며 생물학적인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원시적이고 강렬한 색상으로 표현하는 화가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에 비와 관련된 그림이 있다는 것은 의외의 놀라움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작품 <빗속의 밀밭(Wheat Field in Rain), 1889년>은 내리는 비처럼 순간적인 작품인 듯하다. 여느 때와 같이 작렬하는 태양의 햇빛을 쫓아 나선 야외에서 갑자기 만난 자연의 장대비에 매혹되어, 1889년 프랑스 남부의 비로 탄생한 것이다.

 

* 빗속의 밀밭(Wheat Field in Rain, 1889년),Vincent Willem van Gogh,Google
* 빗속의 밀밭(Wheat Field in Rain, 1889년),Vincent Willem van Gogh,Google

고흐의 작품 중에 흔치 않게 비가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비 오는 장면을 간략하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능숙했던 일본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浮世繪) 작가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사망하기 1년 전 생레미드 프로방스(이하 생레미) 외곽에 있는 생폴드모졸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자신의 네모난 요양원 침실 철창 사이로 내려다보인 담장에 둘러싸인 네모난 밀밭, 다양한 자연의 조건 중에서 비 오는 날에 비친 모습을 그린 것 그리고 이에 대한 당시의 마음가짐 등에서 그가 그린 빗방울은 유난히 날카롭고 억세게 다가와, 어찌할 수 없는 당시의 절망적 상황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 오늘의 빗방울과 함께 느껴진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모습과 연관하여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년~1967년)를 향한 초현실주의 여행을 떠난다. 그의 작품 중 <겨울비(Golconde), 1953년>은 한때 화려했던 인도의 옛 도시를 의미한다.

 

* 겨울비(Golconde, 1953년),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Google
* 겨울비(Golconde, 1953년),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Google

하늘로부터 내려오는지 또는 올라가는지 알 수 없는 정장을 한 신사들이 도시의 공중에 떠 있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신사들 각각은 조금씩 다른 표정과 자세,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중절모를 쓴 신사의 모습은 마그리트의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소재인데, 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획일화되고 통제된 도시인의 삶과 인간을 소외시키며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나타낸다. 또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 구성을 통해 반중력(척력,Repulsive Force)적 모습을 강조한다. 마치 공중 부양하고 있는 듯한 신사는 진격하는 거인들의 무차별한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자화상인 듯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조리와 실존적 존재의 부재, 그리고 정신적 고독과 소외에 대해서는 인지 못 하면서 온갖 욕망의 바벨탑만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달리는 법은 알지만 멈추는 법은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렇게 질서(안정)는 배웠지만, 질서 너머는 차마 알지 못한다.

 

증기는 / 생명 활동 / 에너지의 / 근원이네

 증기(Steam)는 물의 표면에서 액체인 물이 증발하여 기체로 변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하며, 주로 생명체 활동의 에너지가 된다. 이에 비해 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인 수증기가 차가운 공기를 만나 작은 물방울(액체)로 변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증기는 비와 비교 시 단기적 단속(斷續)성 및 비반복성을 특성으로 한다.

19세기 후반 이전의 유럽 미술과 같이, 우리 옛 그림에는 비 내리는 풍경을 직접 담은 그림이 거의 없다. 대부분 비가 내리는 순간보다는, 마치 비 오는 날 허공에 흩어지는 증기의 여행처럼, 비가 내린 후의 고즈넉한 자연의 모습을 통한 안빈낙도의 가치나 비구름이 걷히고 서서히 밝아 오는 대기와 같은 긍정적 희망의 달성을 염원하는 분위기의 장면이 주로 나타난다. 이런 그림 중 가장 대표적인 그림이 겸재 정선(1676년~1759년)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이다.

 

* 인왕제색도(1751년),겸재 정선,Google
* 인왕제색도(1751년),겸재 정선,Google

이는 겸재가 76세 때 비가 내린 뒤의 인왕산을 그린 것이다. 인왕산의 어두운 비구름이 걷히며 개이듯, 60년 지기 친구인 시인 이병연이 병을 떨쳐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소나무처럼 일어나기를 기원하며 그린, 절망 뒤의 희망에 대한 건강한 카타르시스를 기원하는 진정한 자아의 발견과 휴머니즘의 발로로 보인다.

해외의 대표적 증기 그림은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풍경화가인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년~1851년)의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8년~1839년>이다. 이는 혁신적 과거의 해체와 미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8~1839),Joseph Mallord William Turner,Google
*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8~1839), J.M.William Turner,Google

돛을 달아 풍력(風力)으로 움직이는 범선(帆船)으로서 수명이 다해 해체될 운명을 맞은, 전함 테메레르를 끌고 가는 배는 새로운 해양 운송 수단으로 등장한 증기선이다. 터너는 비록 전함 테메레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현실은 인정하되, 대영제국의 찬란한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써 기념하고자 한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끌려가는 전함 테메레르는 밝고 크게, 다가올 미래의 힘을 나타내는 증기선은 어둡고 작게 상호 대비해 표현한다. 또 힘과 권위 및 번영을 상징하는 해의 시간대는 노을빛이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시간대를 선택함으로써, 해와 전함을 동일 선상의 시작과 끝점으로 비유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작은 증기선에 끌려 해체되기 위해 예인되어 가는 큰 범선이 “나는 이제 사라지지만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을 일몰에 던지는 듯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계열적 지속성과 실존적 존재 간 상생, 그리고 초연결성으로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문화 지체와 단절된 자아로의 무분별한 확장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면서 온갖 닫힌 인간계로의 변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연결하는 법은 알지만 연계하는 법은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배웠지만 ‘나’ 너머는 차마 알지 못한다.

 

비~증기 / 지향 속도는 / 힘 의지로 / 함께 해

 물은 자연계에 강, 호수, 바다, 지하수 따위의 형태로 널리 분포하는 액체이다. 이는 비의 유기체적 순환에 따른 생명 유지의 원천 및 증기의 에너지화 따른 생명 활동의 근원이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 <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우리를 비~증기 연관된 명화의 지향점인 속도로 안내한다.

 

*비,증기,그리고 속도(Rain,Steam and Speed,1844년),Joseph Mallord William Turner,Google
*비,증기,그리고 속도(Rain,Steam and Speed,1844년), J.M.William Turner,Google

이 작품은 비와 대기가 서로 만나며 소용돌이치는 비에 젖은 대기, 기관차가 내뿜는 증기, 속도감을 역동적인 하나의 장면으로 결합한다. 물아일체인 하늘-기차-땅 간의 경계선은 사라지며, 기차는 대각선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여 속도의 정량화를 통한 역동성을 표현하고, 관객은 기차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선택한다. 자연현상인 물·불·공기와 기술혁신의 아이콘인 증기기관차의 만남을 실감 나게 포착한다.

문광훈은 <미학수업, 2019년>에서 “<비, 증기, 속도>에서 모든 것은 떠다니는 듯하다. 비도 기차도 부유한다. 이 효과는 화면을 채우는 안개의 희뿌연 색채 덕분에 더 실감 난다. 어쩌면 기차의 속도감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속도가 빠르면 시각의 소실점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것이 모호해진다. 어딘가에서 달려와 다시 어딘가로, 무한으로 기차는 달려간다. 전통적 풍경화가 엄격한 규칙과 공간 배분을 강조한다면, 터너의 그림은 질서정연한 공간 논리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현대성을 선취한다고 평가된다.“라고 한다.

이 계절의 장맛비는 우리에게 선진국 진입 소식을 전한다. 정부 보도에 따르면 ”UNCTAD는 7월 2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 그룹A에서 선진국 그룹B(32개국)로 옮기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미-중 첨예한 갈등은 다음과 같이 심화하고 있다.

[G7 정상회담 공동합의문 / 국제사회의 책임과 공동의 행동 : 우리는 중국에 특히 신장 지역과 관련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그리고 중-영 공동선언과 홍콩 기본법에 간직된 홍콩의 고도 자치 촉구를 포함해 우리의 가치들을 진작시킬 것이며, 우리는 동·남중국해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현상을 바꾸고 긴장을 증가시키는 어떠한 일방적인 시도도 강력히 반대한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 이제 중국을 괴롭히거나 억압하거나 예속화시키려는 망상을 하는 어느 외부 세력이든, 14억 중국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강철같은 만리장성 위에서, 머리는 깨지고 깨진 머리에서는 피가 쏟아져 흐를 것이다.]

비~증기 이후 속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 헌법은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권~비(지속성과 반복적 영원성), 권력~증기(단기적 단속성과 비 반복성)의 상관성을 보인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창의적 속도(Creative Speed)를 목표로 한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을 위한 자기극복(끊임없이 자신을 극복 하는 존재)능력 제고, 내면적 가치의 외재화를 통한 조화로운 질서체로서의 자아 형성, 씨줄과 날줄의 체계적 정립 강화를 통한 관계적 실존력 증대 등을 위한 지속적 성찰, 측정 및 평가 역량 제고 및 이를 통한 실존적 존재로서의 진화가 필요하다. 국가적으로는 DNA형 스마트 속도(Smart Speed with Data, NetWork, AI)를 추구한다. 도덕 주인형(한점의 부끄럼도 없는) 정치적 중립 실현과 공정한 게임의 규칙 정립과 준수, 나선형 성장 가치관 정립 통한 성별~세대~지역~가치 간 상생의 장 실현 및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배려와 존중이 넘치는 지속가능한 국가생태계를 정립해야 한다.

개인과 국가는, (‘나’와 ‘너’, ‘내면’과 ‘외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대상으로), 양방향적 ”힘을 위한 의지(The Will for Power)“를 향하는 비와의 ‘놀이’가 되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날에는 황순원 <소나기>의 개울가 소녀와 소년이 된다. 정선의 시화상간도(詩畫相看圖)를 만나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는다. 비꽃을 느낀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