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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휴머니즘의 잔혹함
[이주라의 문화톡톡] 휴머니즘의 잔혹함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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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 자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를 만드셨다.

그러나 신이 수많은 모델 중에서 어떤 모델을 닮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화가들은 언제나 가장 안정적인 모델로 알려져 있는 700모델을 토대로 성화를 제작한다. 그래서 신은 언제나 전신에 금도금이 되어 있고, 네 개의 바퀴를 갖고 있으며, 오른쪽 귀 위와 양 팔목에는 700의 일련 번호가 새겨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종의 기원」, 『멀리 가는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2010, 189쪽.)

 

우리는 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보영의 중편소설 「종의 기원」에서 신은 700모델을 닮았다. 700모델은 아무리 뜯어 봐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4개의 바퀴를 가진 700모델은 로봇이다. 「종의 기원」(환상문학웹진 『거울』 22, 2005년 3월.; 『김보영 중단편선1-멀리 가는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2010.)은 지구의 지배종이 로봇으로 바뀐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SF소설이다. 대중적인 SF에서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은 보통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인간이 로봇의 지배를 받거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암울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김보영의 멀리 가는 이야기 표지
김보영의 멀리 가는 이야기 표지

알파고라는 존재를 통해 AI의 위력이 현실적으로 경험되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로봇 기술의 발전은 인간들에게 일단 두려움을 안겨 준다. 저것들이 나의 일자리를 뺏어 가면 어떡하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면 어떡하지? 보통의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면, 그러면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러한 두려움은 SF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형상화되었다. 특히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SF에서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문제적 해커인 인형사는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종일 뿐이다. 그러나 컴퓨터 통신망으로 이루어진 정보의 네트워크를 자유 의지를 가지고 조작하고 통제하며 옮겨 다니는 인형사는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가진 하나의 생명체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존재는 말한다. 인간 또한 DNA라는 자기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인간의 모든 신체를 사이버보디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인간 개체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생물학적 개별성이 희미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 개체의 고유성은 무엇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공각기동대>에서는 그것을 나 자신의 고유한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해커 인형사를 쫓으면서 자신과 동일한 사이버보디를 가진 인형사와 대면하며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쿠사나기 소령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때의 기억을 정부에 반환하고 퇴직해야 한다면 개인의 기억이라는 것도 자신의 정체성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신체가 점점 기계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고, 기계의 발전이 점점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과 학습 능력을 능가하게 된다면, 다른 생물이나 무생물보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로봇이 인간을 능가할 경우에 생기는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해서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만들었다. 로봇 3원칙에 의하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인간을 보호하며, 이 2가지 원칙 하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로봇 3원칙은 인간이 로봇 기술을 발전시킬 때, 철저히 도구로서의 로봇을 발전시켜야 함을 보여준다. 로봇 기술은 인간 삶의 편리함을 위해 활용하는 도구이자 수단일 뿐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은 그 초보적인 수준에서도, 상호 작용의 관계 속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특정한 존재로서의 특징을 이미 획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로봇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로봇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해 질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예상을 뛰어 넘어 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기술은 인간의 적절한 통제만 있으면 발전의 혜택을 문제없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드는 기술은 모두 인간 사회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긴다면, 로봇 3원칙처럼, 기술과 프로그램에 인간 우선주의, 인간 중심주의, 인간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주입시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구로서의 기술에는 이러한 인간 개체에 대한 보호와 인간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윤리가 프로그램으로 내장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존재들의 종류가 완전하게 새로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중심의 윤리와 철학만이 미래 세계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인간 중심의 윤리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더욱 문제적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듀나는 「기생」(『태평양 횡단 특급』, 문학과지성사, 2002)에서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경탄하였다.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은 생산 활동을 모두 로봇에게 맡기다가 생산과 관리의 주도권을 결국 로봇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로봇이 지배하는 세계에 기생하게 된다. 로봇이 지배하는 세계는 삭막할 것 같지만, 의외로 원칙에 따라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된다. 도시가 깨끗한 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연 생태계가 훼손 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듀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지배만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보영의 「종의 기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종의 기원」도 로봇이 지구의 지배종이 된 사회를 그린다. 로봇은 비록 자연물을 통해 새로운 물질이나 물체를 탄생시키지는 못하지만, 공장을 통해 자신들의 신체를 재활용하면서 끊임없는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진 로봇은 공룡과 인류가 멸망해서 사라진 지구 위에 자신들만의 문명을 건설한다. 로봇이 지배종인 지구의 환경은 인류가 지배종이던 때와는 정반대다. 지구는 공장에서 뿜어내는 검은 연기로 뒤덮여 태양열이 차단되었으며, 그래서 물은 얼었고, 산소는 사라졌다. 이 시기는 빙하기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철로 된 로봇이 살아가기에는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다. 물과 산소와 햇빛은 철을 산화시키기 때문이다. “물은 무시무시한 독성화학물이다. 비록 세척제와 화학용매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물질이기는 하지만, 많은 환경론자들이 대체물질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봇이 지배종이 된 세계는 이렇게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종의 기원」은 로봇의 문명에서 유기물과 생물이라는 존재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무기물인 로봇의 세계에서 유기물은 사실 생명체라는 정의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로봇의 세계에서 생명이란 전기가 통하여야 한다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전기 에너지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인 유기물은 로봇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괴물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는 일군의 학자 집단은 유기물을 성장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그들은 수만 년 전에 이 유기물들이 지구에 존재했을 때의 성장 환경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발견해 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랬을 거야. 공장은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전 세계에 걸쳐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까. 공장은 이산화탄소를 뿜어 대었고, 두 가스는 극도의 온실효과로 지구의 기온을 올리기 시작했어. 아마 어느 시점에서 한계 수위를 넘어서 버렸고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을 거야. 전 세계가 사막화되어 버린 거야. 아마 그 시점에서 대부분의 유기생물들은 멸종했을 거야. 공장은 그 후로 더 늘어났고, 공장이 뿜어낸 검은 구름이 차츰 안정된 상태로 대기 중에 머무르게 되었지. 그게 태양빛을 차단하게 되면서 다시 지구의 기온을 낮춰 현대에 이르게 된 거야. 그 시점에서 또 살아남은 유기생물까지 모두 멸종했을 거야. 몸에 있는 수분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버렸을 테니까. (「종의 기원」, 『멀리 가는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2010, 239-240쪽.)

 

김보영이 로봇 세실의 간략한 요약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망해 버린 지구의 모습이다.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낸 공장은 무수한 로봇을 만들어 내면서 지구의 환경을 인간이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환경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환경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생산한 로봇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자신의 멸종을 재촉한 셈이다.

김보영의 작품은 그래서 공장을 만들지 말자거나, 로봇을 만들다가 인간이 죽는다거나, 이러한 배타적인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김보영의 작품은 언제나 결국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데에 의의를 둔다. 인간의 멸망이 지구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는 인간이 지배종이 아니더라도 존속할 수 있다. 그리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인간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로봇이 아니다. 인류는 인간 스스로가 멸망시킨다. 김보영의 「종의 기원」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 혹은 막연한 공포 또는 기술이나 로봇에 대한 배타적 배제를 넘어서서 우리가 로봇이라는 존재의 발전과 더불어 사고하고 성찰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 사회의 윤리와 상식 그 자체라는 점이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 표지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 표지

이진경은 「노예와 줄기세포」(『씨네21』, 2005.07)에서 신대륙 발견 당시 휴머니즘 논쟁이 신대륙 원주민이 인간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이었고, 원주민들이 인간이 아니라 판단한 인간(백인)들이 그들 원주민을 인간(백인)을 위한 노예로 부려먹어도 된다고 결정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이처럼 휴머니즘은 잔혹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개념이다. 휴머니즘의 개념 속에서, 인간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존재는, 백인을 넘어 점점 확대되어 왔지만, 인간이라고 인정받지 못한 존재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은 근대 사회의 발전 논리를 거치면서 더욱 잔혹해져 왔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스트 휴머니즘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휴머니즘의 배타성과 인간 중심주의의 잔혹함을 넘어서서 자연과 기계문명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존재의 개념을 확립시키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에서는 인간과 로봇(혹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존재들)의 관계가 언제나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얼마나 닮았는가』, 아작, 2020)에서 AI인 훈은 자신이 조종하는 우주선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상적 프로그램 상태에서 인간의 신체인 사이버보디에 들어간다. 인간의 신체에 들어간 AI 프로그램은 극도의 혼란을 겪는다. 선조적인 시간 순서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의 논리와 달리 인간은 신체로 받아들인 동시다발적인 감각과 정보를 매우 복잡한 회로를 거쳐서 순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로봇의 정보처리 속도가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로봇은 인간의 무수한 정보를 동시다발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인간의 정보처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I 훈은 인간이 로봇을 필요로 하듯이, 로봇도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김보영이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AI의 목소리를 통해 말해주듯이, 포스트 휴먼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이러한 서로에 대한 필요와 존중이 아닐까 한다.

 

 

글 · 이주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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