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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땅에 발붙인 서사의 중요성 - <제8일의 밤> 속 방향을 잃은 악에 대해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땅에 발붙인 서사의 중요성 - <제8일의 밤> 속 방향을 잃은 악에 대해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19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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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는 현실성, 더 가깝게는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가능성은 픽션을 구성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관객이 가상의 이야기로 진입하게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배경으로도, 인물의 성격으로도, 혹은 사건의 익숙함이나 사전적인 정보로도 끌어낼 수 있는 공감의 요소는 거대한 장치부터 아주 미묘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를 ‘땅에 발붙인 이야기’라는 관용구로 표현하는 것은 참 적절해 보인다.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소재와 사건, 감정 등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내려놓았다는 것은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울고 웃고, 혹은 분노할 수 있는 포인트를 쥐고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르라도 땅에 발붙인 이야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겠지만, 특히 공포는 이를 획득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했을 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혹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지와 같이 이야기 구성의 기본적인 플롯 방향이 설정될 수 있는 장르들과 달리 공포는 어떠한 서사적 틀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포의 요소는 사람마다, 문화마다, 또는 종교마다, 사회마다 너무도 다르기에 일반적인 서사적 틀의 정립이 불가능할 만큼 흩어진 장르이다. 수많은 귀신들이 등장의 방식을 달리하고, 수많은 살인마가 각기 다른 살인 도구를 지참하며, 때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괴물들의 물량 공세 등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닌 장면 그 자체이며 이것이 공포 장르가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더욱 현실처럼 보이기 위해 공포 영화는 이야기보다 형식을 빌려온다. 다큐 형식을 통해, 그러니까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장르가 요구하는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는 유일한 장르가 공포라는 점은 공포 장르의 특징을 가장 잘 잘 보여준다.

 

물론 공포 장르에서 서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다양한 행위는 공포를 자아낼 수 있고 여기에 현혹되거나 현혹되었는지도 모르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의 범주에 충분히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로서의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적 배경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악마’라는 형상이 잘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한다 해도 그것이 여태까지의 몰입을 깨뜨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국교가 없는 이 나라에서 절대악으로서 상징되는 ‘악마’가 낯선 까닭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악마의 악행보다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혼령과 그와 관계된 이들이 가질 공포가 익숙하고 더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론은 가능하다. 공포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최근 낯선 방식으로 혼령에 접근한 이야기들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곡성>이나 <검은 사제들>, TV 드라마까지를 포함한다면 <손 더 게스트>등과 같은 작품들의 중심에는 익숙치 않은 종교적 색채와 엑소시즘이 자리했음에도 분명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에서부터 시작된 서구의 엑소시즘류의 영화와 비교한다면 분명한 토착화 전략이 드러난다. 엑소시즘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특정 혼령의 빙의(혹은 빙의의 의심), 무속신앙에 대한 믿음과 이를 배제하지 않는 신부, 대물림, 악령의 현실적 범죄와 같은 것들은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충분히 땅에 발붙인 이야기의 세계로 진입시켰다. 이는 거의 판타지의 영역으로까지 끌고 갔던 <사자>나 영화의 후반 사이비 종교의 제물로 삼기 위해 한 가정에 침입한 이들의 모습을 그린 <침입자> 등의 실패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새로운 공포로의 진입을 위해 관객들이 몰입할 만한 익숙한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영화 <제8일의 밤>은 이러한 최근의 성과를 이어받은 티가 역력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른 어떤 영화보다 <사바하>의 뒤를 잇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불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기본 서사, 살인사건의 발생과 배후에 감추어진 비밀을 풀고자 하는 이들의 분투, 무당의 등장, 그리고 그것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으려는 여정 등은 <제8일의 밤>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두 영화는 결정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가르는 것이 바로 ‘땅에 발붙인 서사’의 달성에 있다. 당겨 말해 <제8일의 밤>은 관객들이 무엇에 몰입해야 하는지, 어떤 인물과 함께 사건을 따라가는지에 대해 어떠한 배려도 하고 있지 않다.

<제8일의 밤>은 부처가 숨겨놓은 번뇌를 상징하는 붉은 눈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며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일을 번민”이라 이야기하며 “번민하는 자의 눈은 빛을 잃어 검다”는 말로 검은 눈과 일치시키고, “지나간 것을 떠올리며 잊지 못해 슬퍼하는 일을 번뇌”라 하며 “번뇌하는 자의 눈은 분노로 붉다”는 말로 붉은 눈과 일치시킨다. 각기 다른 곳에 있던 검은 눈과 붉은 눈이 만나면 인간을 괴롭히는 지옥도가 열리기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 영화는 여기에 집중하며 달려나간다. 두 눈이 만나기 위해 희생되는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는 살인사건으로 파악되며 호태(박해준 분)와 동진(김동영 분)의 몫으로 남고, 이 사건들을 쫓으며 두 눈을 만나지 못하도록 악과 대결을 벌이는 것은 진수(이성민 분)과 청석(남다름 분)의 여정으로 기록된다. 번뇌는 인간의 몸을 바꾸어가며 악행을 드러내고 그 모습을 쫓는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건과 부딪힌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시작은 다소 환상적이라 할 수 있는 설정과 종교적 색채를 바탕으로 한다. 익숙하지 않은 이 이야기로의 진입을 돕기 위해서는 이러한 설정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표지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이 작품은 이 점에 있어 전혀 친절하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이 작품은 어떤 인물과 함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야 하는지를 상정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공감할 부분을 찾기 힘들다. 인물의 전사(前史)는 영화의 진행이나 붉은 눈과 검은 눈의 상징과 연결짓기 힘들며, 어떤 이유로 악이 희생자를 찾는지도 악 자체와 연결되지 않는다. 즉, 세상을 지옥도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악과 그 상황에 대해 감정을 일으키기 힘든 것이다. 가령 호태가 동진에게 가진 연민이나 진수가 청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증은 이 작품이 정의하고 있는 번뇌나 번민과 특별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작품에서 진수가 가지고 있는 전사가 중요하게 부각되긴 하지만, 그것은 진수가 행하려는 행동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누구에게서도 악에 대한 공포를 읽어낼 수 없다.

영화 <사바하>를 떠올려 보자. 긴 경전에 대한 해석과 그림에 대한 설명들, 알 수 없는 괴물의 탄생, 살인사건, 그리고 불사(不死)를 믿었던 교주와 그들의 심부름꾼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작품의 중심에 선 것은 인간이었다. <사바하>는 천천히 무당을 통해 엄청난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점을 알렸고, 어디선가 들었음 직한 기도회를 통해 믿음을 위치시켰으며, 왜 그들이 제석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촘촘히 나열했다. 나한(박정민 분)을과 박목사(이정재 분)를 오가는 서사는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와 그를 지켜보며 신의 존재에 대해 되묻는 이의 절규로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법한 문제로 자리했다. 이렇게 <사바하>는 거대한 종교적 물음을 땅에 발붙인 이야기로의 전환 시켰고, 인물들이 가진 고민 즉 내가 믿고 있는 무엇에 대해 의심이 생겼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절대자라면 과연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물으면서 인물들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참조: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과연 신의 뜻은 선한 것일까 - <사바하>의 흥미로운 질문 2021.1.18.)

 

두 작품의 차이는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낼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설정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사소한 것들, 그러니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제8일의 밤>은 악의 형상화를 시도하며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하고자 분투하는 인물들을 구성했지만, 악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지옥도에 대한 공포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단순한 ‘악’에 대한 접근은 구체적인 설정이 필요한 요소들을 쉽게 ‘나쁜 것’ 정도로 내려놓았고, 또 쉽게 발각되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관객은 이 작품의 무엇을 쥐고 악과 싸우는 여정을 함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서사적 답변이 필요하다.

 

<제8일의 밤>(2021)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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