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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개인의 문제와 로맨스- <새콤달콤>(2021)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개인의 문제와 로맨스- <새콤달콤>(2021)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02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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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장르 콘텐츠가 웹툰과 웹소설, 웹드라마 등의 매체에서는 여전히 다수 제작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제작비 규모가 큰 상업 영화시장에서는 제작이 주춤한 지 오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먹고사니즘,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개인의 생존 문제’에 있다. 취업이 어렵고, 취업이 된다고 해도 비정규직이 많은 현실, 가장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짠내 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패키징이 화려하고 재미있거나, 입소문이 날 만큼 극적인 설정 혹은 반전이 있다면 모를까, 시시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극장까지 찾아가서 볼 여유는 없다.

OTT에서라도 로맨스 영화를 보게 된다면, 여성과 남성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지, 급작스러운 전개로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는지, 특히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납득이 되는지가 명쾌하지 않으면 혹평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영화든 드라마든 남녀 간의 사랑은 서브이고, 개인의 문제를 메인으로 해결해야 하는 구성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경우, 로맨스를 메인으로 한 작품들보다 사건이 많고 집중도가 높지만,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쓰다 보니, 깍두기처럼 등장하는 로맨스에는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는 지적을 받기 쉽다. 특히 영화의 경우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소화해야 할 개인의 문제와 로맨스의 접점이 부족할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민을 균형감 있게 풀어낸 영화 <새콤달콤>(2021)을 만났다. <새콤달콤>은 일본 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2015)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이누이 구루미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소설의 반전 코드를 잘 살린 영화라고 평가받는다. <새콤달콤>도 원작의 반전코드를 따랐지만, 내용은 원작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연인들의 리얼함을 담으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먼저 영화는 풋풋흐뭇한 ‘새 운동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한 컴공과 출신 이장혁이 간염으로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친절한 간호사 다은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비정규직 차별과 3교대 근무로 힘들어하는 다은을 보살펴 준 끝에 장혁은 다은과 사귀게 된다. 그리고 다은에게 새 운동화를 선물 받은 장혁은 반드시 살을 빼서 멋진 남자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살을 빼려고 달리던 장혁은 어느새 날씬한 장혁으로 변하면서, 시간은 점프 된다.

이제 ‘헌 운동화 이야기’로 넘어간다. 인천의 중소기업 정규직인 장혁은 대기업 파견직을 제안받고 파견 기간에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기업 정규직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다은의 인천 집에서 동거 같은 연애를 했던 장혁은 차로 인천에서 서울까지 매일 출퇴근을 해서라도 회사생활도 연애도 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피곤함이 예상되는 선택을 하며 들어간 대기업에는 라이벌 파견직 보영이 있고, 일을 잘하기 위해서 보영과 얽히면서 다은과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인천을 오가며 꽉 막힌 출퇴근길, 반복되는 야근, 회사 내의 라이벌 구도, 대기업 정규직이 되려는 노력과 함께 다은과의 연애에도 지속이라는 점을 찍어줘야 하는 장혁은 점점 지쳐간다. 그런 장혁을 기다리고, 장혁의 변화에 실망하는 다은도 지쳐간다.

 

‘새 운동화 이야기’ 부분은 첨예한 갈등과 사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소소한 에피소드에 다소 지루할 수 있고, 다은의 행동에 부분부분 개연성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납득이 되는 문제들이다. 원작 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포스터에 그리고 영화 시작 전 자막으로 ‘본 영화에 반전이 있다’고 밝힌다. 영화의 초중반이 다소 지루하다 하더라도 이미 반전이 있음을 스포일러 당했기 때문에 어떤 반전일까를 생각하면서 집중하며 보게 된다.

 

그러나 <새콤달콤>은 반전을 감춘 전략을 택했다. 자막으로 알려주지도 않았고, 홍보에서도 반전 노출을 조심스러워 했다. 중요한 것은 반전의 재미가 맞지만, 그것보다 더 공감할 연애의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던 것 같다. 원작과 전혀 다른 제목을 택한 것처럼, 이들의 로맨스가 어떻게 새콤함과 달콤함을 오가며 변해가는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먹고사니즘과 로맨스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영화는 처음부터 ‘취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짚고 있다. 다은은 간염으로 병원에 실려 와서 황달에 시달리면서도 정규직 취업에 성공해 기뻐하는 이장혁을 보고 부러워한다. 똑같이 3교대하는데 자신은 비정규직이라고 푸념하는 다은은 피곤에 절어있어도 먹거나 쉴 틈이 없고, 갑자기 바뀐 근무 스케줄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직급이다. 그런 다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쉴 시간을 주는 혁이 오빠는 분명 고마운 사람이다. 장혁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중소기업 정규직에서 대기업에 임시 파견되고, 그 대기업의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파견된 임시직과 대기업 정규직 사이에는 차별이 존재하고, 같은 처지의 파견직 보영과 함께 일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보영에게 호감이 생긴다.

 

그렇게 ‘새 운동화 이야기’와 ‘헌 운동화 이야기’ 모두 먹고사는 문제가 충족될수록 로맨스가 자리 잡기 편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먹고사는 문제로 원거리 커플이 되어버린 장혁과 다은의 사이는 점점 피곤한 연인이 되고,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 그치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정했던 연인의 사이를 갈라놓고, 어떤 일이 닥쳐도 연인이나 가족이 함께 해결하자던 연대 정신 보다는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각자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자’는 식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연애 감정은 ‘우리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로 간단하게 정의된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이경영 배우는 장혁과 보영의 로맨스가 성사되도록 여러 번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파견직으로 힘들어하는 장혁에게 “힘들 땐, 사랑이지”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힘들수록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는 마치 이경영 배우와 같은 연배의 기성세대들이 아무리 고달픈 일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했던 로맨스를 지향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고달픈 일이 있다면 ‘사랑은 다음 기회에’를 선택하는 것을 대비해서 보여주려던 의도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화 후반부에 장혁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시간을 거슬러 여러 포인트를 짚게 되는데, 장혁이 떠올리는 모든 지점이 사실 잘못의 반복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장혁이 몰랐던 다은의 반전, 새콤함과 달콤함의 간극은 여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새콤달콤>, <이니시에이션 러브>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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