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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게 진화하는 140자, 트위터
아찔하게 진화하는 140자, 트위터
  • 모나 숄레
  • 승인 2011.10.10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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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시된 이래 트위터는 네티즌이 인터넷 통신망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단문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해왔다. 간단하고 새로운 이 무료 서비스 이용자 수는 1억 명을 넘어섰다. 과연 트위터는 창안자들의 야심에 걸맞게 ‘지구상에서 가장 정보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대중에게 공개된 지 15년이 지난 인터넷의 특성을 ‘사용자가 만드는 미디어’라고 보는 분석은 앞으로도 계속 빗나갈 수 있을까? 인터넷 통신망은 흔히 기존 정보 수단들을 간단히 한곳에 모아놓은 것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도미니크 카르동 연구원은 이의를 제기한다. “이런 시각은 기존 전통 미디어 안에서 만들어진 형식, 즉 편집 과정의 감시·감독, 희소성의 경제 원칙, 대중의 수동적 인식 등을 인터넷에 무기력하게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1) <<원문 보기>>

인터넷의 속성은 ‘웹 2.0’의 출현과 사용하기 편리한 도구들이 나타나면서 뚜렷해졌다. 특별한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는 네티즌도 블로그 플랫폼(컴퓨터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을 통해 자기 글을 써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초기에 창조적인 사이트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과 달리 블로그들이 뚜렷이 표준화되면서 초기의 선구자들은 실망하기도 했다.(2)

문화 프롤레타리아의 지속적 열광

콘텐츠 생산자 범위가 확대되면서 뮤지션들이 특히 많이 사용하는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잠재력이 상승하게 된다. 각각의 소셜 네트워크들이 비슷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소셜 웹’(사이버 공간에서 어떤 목적에 따라 사람들 간의 관계를 형성해 정보를 주고받는 서비스)은 “문화 자산을 많이 보유하지 못한 네티즌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쉽게 무대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다.”(3) 소셜 웹에 대한 열광은 식지 않고 있다. 장기적으로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지난 6월 말에 등장한 소셜 서비스의 막내 ‘구글플러스’는 출시된 지 한 달 남짓 만에 벌써 2500만 명이 가입했다. 이 정도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페이스북은 3년, 트위터는 33개월이 걸렸다.(4) 지난 8월 초 트위터의 자산 가치가 80억 달러로 평가됐다.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트위터 사이트의 수익 모델이 허약하다는 점을 들어 투자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 <무제>, 연도 및 작가 미상
트위터는 사용자 참여 웹이 허용해준 가소성(可塑性)과 적응성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트위터는 끊임없이 네티즌의 필요와 제안에 따라 자신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한다. 2006년 출시됐을 때 트위터 인터페이스 메인 화면에 등장한 질문은 ‘지금 뭐하고 있나요?’(What are you doing?)였다. 이 질문은 분명 감동적인 정보를 대량 유통시킬 만한 가능성을 지니지 않았다. 트위터에 올릴 수 있는 글은 140자로 한정돼 있고, 이 제약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목적에 트윗이 사용되기 힘들었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신문 기사나 방송에 대한 리뷰를 싣고, 시사 문제를 논평하고, 때로는 실시간으로 서로 연락하고, 집회나 모임을 알리고, 농담하고,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고, 구인·구직 광고를 내게 되었다. 트위터는 이런 사실을 간파해 2009년 11월, 메인 화면의 문구를 좀더 광범위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What’s new?)로 바꾼 것이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트윗을 전달하기 위해 ‘RT’(리트윗)라는 표시를 앞에 붙여 자신의 팔로어에게 메시지를 전파함으로써 그 정보를 옮기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자 지난해 이 서비스가 트위터에 통합되면서 ‘리트윗’ 버튼이 등장했다.

현재 인터넷의 주역이 누구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트위터는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소셜 네트워크인가, 아니면 한 개인이 발신자이면서 동시에 수신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 개인 미디어인가? 트위터 설립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지난해 트위터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이던 에번스 윌리엄스는 트위터를 ‘정보유통망’으로 확실히 정의했다.(5) 하지만 1년 뒤 ‘친구 찾기’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이 등장했다.

사용자들, ‘사교’보다 ‘시사’에 관심

트위터가 추구하는 목표는 경쟁업체들을 이기고, 신규 가입자가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안에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트위터에서 친구들을 찾으세요’는 고맙지만 사양한다”라든가 “친구들은 케티 페리(미국 팝가수)를 향한 내 편집적인 관심을 이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6)고 반박했다. 네티즌은 트위터에서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 그룹을 형성하기보다는 자신이 관심 갖는 내용을 확산시키는 쪽을 선호한다. 물론 몇몇 발신자를 개인적으로 알 수는 있지만 그 전파 과정은 다르다.

게다가 트위터에서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트윗), 자신을 따르는 사람(팔로어), 자신이 따르는 사람 등 모든 것이 공개된다. 페이스북이 제한된 접근을 원칙으로 삼는 것과는 반대로, 공개적인 트위터에서 ‘트윗 보호하기’ 기능을 활성화하는 사용자는 드물다. 트위터의 이점은 메시지를 되도록 광범위하게 유통시키는 것이다. ‘타임라인’ 항목은 각국에서, 또는 세계적으로 어떤 주제가 뜨고 있는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트위터는 진지한 내용이나 가볍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은 계정, 일반적이거나 극도로 전문화된 계정 등 팔로우하는 계정을 개인적으로 잘 조합시켜 각자가 이득을 본다는 점에서 특히 작은 규모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트위터 계정은 대개 개인이 이용하지만 기업이나 협회, 사회운동단체, 미디어 등이 관리할 수도 있다. 트위터 사용자의 40%가 전혀 글을 올리지 않고, 트위터에 올라오는 내용의 80%가 20%의 사용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7)

사용자들, ‘사교’보다 ‘시사’에 관심

여행이나 축제 사진을 올리기에는 페이스북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는, 냉정하고 중성적인 디지털 텔레타이프가 되기는커녕, 다양한 소스와의 연결을 통해 정보를 중계하고 정보와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시사 문제에 대한 반응이 개인적 영역, 자신이 속한 주변 사람들(기자들의 경우 편집국)에 제한돼 있었지만 트위터와 함께 이런 반응은 공적인 무게와 차원을 획득했다. 예전에는 확실히 영역이 구분된 정보와 잡담, 코멘트가 트위터스피어(트위터 이용자들의 사이버 공동체)에서 참신하게 혼합됐다. 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경멸과 경계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카르동은 이런 반응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주체성 확인, 표현 형식 완화, 정보의 유희화, 유머와 냉소적 거리 유지, 루머와 도발 등이 정보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경향이 돼가고 있다. 정확성이 요구되고, 새로운 자료 수집 역시 계속 강화되고 있다.”(8)

언론보다 빠른 진위 검증과 확산

속임수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신속히 그 진위가 확인된다. 예전에는 기자들만의 몫이던 정보 검증 작업이 이젠 모든 네티즌에 의해 명백하게 진행된다. 한 예로, 지난 8월 ‘다마스쿠스의 레즈비언’(A Gay Girl in Damascus)이라는 블로그가 가짜로 밝혀진 지 몇 주일 뒤, 한 영국 학생이 또 다른 가짜 아랍 여성 블로거를 트위터에 폭로했다. 그 블로그에 올라온 온라인 기사들이 일관성이 부족하고 편파적인 것에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9)

흔히 ‘스위스 칼’로 규정되는 트위터는 사용자가 다양하고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코드와 결부해 사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얻는다. 다른 모든 소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트위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프로필’이라는 균질적인 범주 안에 들어오게 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터페이스와 언어를 공유하고, 동일하게 잠재된 사회성을 실천한다. 그 결과 ‘디지털 에스페란토(세계어)’가 탄생한다. 지난겨울의 아랍 시위자들이나 지난 5월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은 디지털 세계어의 구성성분을 그들의 플래카드에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다. 하지만 가입자들 간의 격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지난 2월, 강경한 시위 진압에 항거하는 바레인의 민주주의 지지자들이 트위터에서 왕실 공주들을 공격하자, 심한 교만으로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들이 침묵으로 우리를 시기하는 동안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얘기하게 내버려둬. (중략) 당신이 하찮은 삶을 사는 건 내 탓이 아니야. 돈이 없는 거지,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삶을 만끽하고 있는 걸 보는 게 괴롭지, 응?”(10)

속도와 일회성, 익사를 주의하라!

트위터의 명성은 상당 부분 언론사와 방송사를 간발의 차이로 앞서는 유연성과 반응성에서 나온다. 트위터는 단문 메시지 포맷으로 돼 있고, 많은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에서 접속한다. 일단 글이 올라오면 중요한 뉴스는 아찔할 정도의 속도로 신속히 퍼져나간다. <피가로>의 한 기자는 “내가 아는 한, 그 어느 것도 이 지구상에서 트위터보다 빠르게 퍼지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순간, 그의 동료 기자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11)

‘실시간’이란 사건 추적에만 해당되지 않고 그 사건의 새로운 전개에 부합하는 집단적 심층 분석과도 관련 있다. 중독 위험과 함께 트위터의 이런 아찔한 가속화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고 감동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마치 이때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트위터에서는 이런 능력이 새삼스레 요구된다. 한 주제에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이다가 완전히 무관심해지는 단계가 번갈아 이어지는 미디어 논리는 절정에 달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3월, 마치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것처럼 리비아의 군사 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두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옥신각신 치고받던 사람들이 몇 달 뒤에는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링크를 추천하는 ‘이 글은 벌써 하루가 지났지만, 읽어볼 만하다’는 문구 역시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트위터는 불빛 밝은 창문에 들러붙은 불나방처럼 즉각적인 시사 문제에 얽매이게 하고, 충실함도 깊이도 없는 시간을 살게 할 위험이 있다.(12) 트위터는 주제와 관련해 이전 문서를 찾는 데 적합하지 않아서, 트위터에 심하게 열중한 사람들은 자신이 접속하지 않았을 때 ‘뭔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저널리스트 장크리스토프 페로는 “터치 패드 위에 펼쳐지는 단어와 정보, 생각과 감동의 물결의 최면에 걸린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세요”(13)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문제는 이 디지털 흐름 속에 익사하지 않고 어떻게 활력을 끌어낼까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해 우리는, 20년 전에 이미 자신들이 “팩스로 발송하거나 아니면 죽거나”(14)라며 그 시대의 광기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신기술의 포악한 공격을 예고했던 사람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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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 숄레 Mona Choll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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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미니크 카르동, ‘인터넷 민주주의, 가능성과 한계’, <사상 공화국>, 쇠유, 파리, 2010. 
(2) 필리프 드 종키르, ‘시작, 혼란의 메모지’(La Bloc-notes du Désordre), 2011년 6월 2일 참조, www.desordre.net.
(3) 도미니크 카르동, 앞의 책.
(4) ‘구글플러스, 산뜻한 출발,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2011년 8월 4일, www.generation-nt.com.
(5) ‘트위터는 더 이상 소셜 네트워크가 되고 싶지 않다’, 2010년 3월 17일, www.infos-du-net.com.
(6) ‘트위터의 중압감?’, 2011년 7월 19일, www.gizmodo.fr.
(7) ‘트위터는 시간낭비인가?’, 2011년 6월 2일, www.problogger.net. 기타 수치도 이 자료에서 인용. 
(8)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나아갈까? 도미니크 카르동 인터뷰’, www.nonfiction.fr, 2011년 7월 7일.
(9) ‘트위터 조사, 또 다른 미들이스트 혹스를 적발하다’, 2011년 8월 2일, http://thenextweb.com.
(10) ‘바레인 앙투아네트: LOL을 먹게 내버려두라’, 성질 나쁜 올빼미(The Grumpy Owl), 2011년 2월 18일 참조.
(11) 로랑 쉬플리, ‘뭄바이에서 나의 저녁나절, 혹은 트위터는 왜 이제 불가피한 것이 되었나’, 괴짜를 따라오세요(Suivez le geek),  http://blog.lefigaro.fr, 2008년 11월 27일.
(12) ‘현재를 살아가는 문명과 마주해서’, 2010년 9월 6일, www.internetactu.net, 하르트뮈트 로사, ‘가속: 시간에 대한 사회적 비평’, 디디에 르노 옮김, 라데쿠베르트, 파리, 2010 참조.
(13) ‘인류의 친구, 트위터는 우리를 무엇으로 만드나?’, Sur mon écran radar, 2010년 9월 11일, http://monecraradar.blogspot.com.
(14) 모리스 로네, ‘팩스로 보내거나 죽거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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