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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붕괴사고’ HDC현산, 정몽규 회장 “불법하도급 없다”지만... “알고도 묵인한 정황”
‘광주붕괴사고’ HDC현산, 정몽규 회장 “불법하도급 없다”지만... “알고도 묵인한 정황”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1.08.12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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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철거현장 붕괴사고(학동참사)로 9명 사망, 8명 부상
HDC현산 정몽규 회장, 권순호 대표 “불법 재하도급 없었다”
국토부 “불법 재하도급으로 공사비 삭감 ... HDC현산은 알고도 묵인했다”
9인 희생에도 과태료만? 유족 “원청 꼬리자르기 말라”
지난 6월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며 지나가던 시내버스를 덮치고 있다. 이 사고로 시내버스에 탄 탑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차량 블랙박스 동영상 캡처)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 ‘광주 철거현장 붕괴사고’(이하 학동참사) 당시, 불법 재하도급 문제를 인식했음에도 이를 묵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토교통부 중앙건출물사고위원회(이하 사조위)는 불법 재하도급으로 공사비가 기존의 6분의 1수준으로 깎여나갔음을 지적하며, 그로 인한 ‘안전관리 미비’와 ‘무리한 해체공법 적용’ 등을 사고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HDC현산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9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지난 6월 광주 동구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학동참사’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고로 광주 학동 4구역 주택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조사에 따르면 해당 공사는 HDC현산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한솔기업이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사고 당시 공사를 진행했던 주체는 백솔건설이었다. 한솔기업이 백솔건설에 불법으로 재하도급을 맡긴 것이다.

HDC현산은 줄곧 불법 재하도급 사실을 부인해왔다. 사고 발생 직후 권순호 HDC현산 대표는 “철거공사 재하도급에 관해서는 한솔기업과 계약 외에는 재하도급을 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6월18일 열린 국회 국토위원회 현안보고에서도 “재하도급은 몰랐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영욱 사조위 위원장(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HDC현산이 이런 해체 공사 공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전체 과정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을 여러 가지 관련 정보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도 중간 수사결과,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재하도급을 인지하고도 묵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원청의 업무태만이 사고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에 안전사회 시민연대는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HDC현산 정몽규 회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참사 직후 정몽규 회장은 ‘다단계 하청은 없었다’고 국민들 앞에서 말했다”며 “이후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졌고 정 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죽음 부르는 불법 재하도급, 어처구니 없는 부실공사

불법적인 다단계 재하도급은 철거 및 건설에서 부실공사의 주범으로 간주돼 왔다. 하청·재하청 과정에서 계속해서 ‘이익금 빼먹기’가 벌어져, 공사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학동참사가 일어난 공사 역시 공사금액이 당초 계획의 16% 수준으로 깎여나간 상태였다. 

공사는 부실하게 진행됐다. 건물을 철거할 때 상부를 철거한 뒤 하부 작업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하부를 먼저 철거하고 최상층 철거를 위해 토사를 무리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학동참사 건물 붕괴 과정

조사에 따르면 백솔건설은 건물 최상부층 해체를 위해 3층 높이(10m)까지 흙을 쌓아 올렸는데, 토사 무게를 견디지 못한 1층 바닥판이 먼저 붕괴됐다. 이후 바닥판 위에 있던 토사가 지하층으로 몰리면서 상층부에 있던 흙더미까지 건물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이때 충격으로 건물 기둥과 벽체가 무너져 건물 붕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9명 희생에도 HDC현산 과태료만? ... 유족들 “꼬리자르기 말고 원청 처벌하라”

불법 재하도급 관행이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재발방지를 위해 원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희생자 9인의 유족들은 지난 5일 현대산업개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유족들은 “이번 참사는 과실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이라며 “꼬리 자르기가 아닌 본청인 현대산업개발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안전사회시민연대도 기자회견을 통해 “붕괴 참사는 다단계 하청구조에 대한 건설업계의 고질적 병폐 때문”이라며 “이를 방치한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 권순호 대표는 이에 응분하는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4구역 5층 건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HDC현산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사진은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6월 16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의 모습. /출처 = 뉴스1

하지만 현재까지는 HDC현산이 재하도급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공모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과태료 등 행정처분만 내려진 상태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원도급자가 불법 재하도급을 지시하거나 공모한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묵인이나 과실의 경우 과태료만 부과받는다. 

다만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으로, 차후 수사결과에 따라 HDC현산에 대한 추가 처벌이 있을 수 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최종적인 판단은 경찰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HDC 현산에 수차례 취재를 시도했으나 사측은 응하지 않았다.

 

 

글 · 김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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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김유라 기자 yulara199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