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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의 스잔함
‘사라지는 것’들의 스잔함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8.3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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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늘 익숙하고 친숙했던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질 때, 씁쓸하고 애잔한 느낌이 든다. 어느 작가의 책 제목처럼 ‘합정과 망원 사이’에 살고 있고, 또 그곳에서 일하는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니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동네 가게의 주인들이 자취를 감추고, 간판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는 헛헛함을 느낀다.

 

작은 동네 카페 건너편의 위풍당당한 문학동네카페

굴지의 출판그룹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6층짜리 카페가 망리단길 초입에 우뚝 자리를 잡은 뒤, 내가 자주 가던 단골카페의 주인은 몇 달째 한숨만 푹푹 쉬다가 권리금은커녕 시설비도 못 건진 채 부랴부랴 팔고 나갔다. 그 뒤를 이어 그 카페를 인수한 두 청년은 처음엔 의욕을 보이며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을 환한 표정으로 맞았으나, 어느덧 지쳤는지 창문 너머로 손님들로 득실거리는 문학동네 카페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필자 회사의 주변에는 작지만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적지 않지만, 문학동네 카페가 들어선 뒤에는 거의 손님이 없어 아예 문을 닫거나, 문을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간판도 없이 철학자 들뢰즈의 철학용어 ‘차연(差延)’을 명함으로 내놓으며 필자를 늘 존재론적 고민에 빠트린 U카페의 진한 에스프레소의 산미가 내 혀를 간질이고, 그 모퉁이에 보이는 테이블 3개 규모의 작은 N카페에서는 케냐와 과테말라 드립커피의 향이 내 코를 자극하며 또 그 옆의 반지층 카페에서는 모델급의 멋진 남자 바리스타가 나를 반겨주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를 위태로운 운명이다.

이따금 스마트폰 인증이 되지 않아 장부에 연락처를 기록하면서, 얼추 하루 방문 고객을 훔쳐보니 20명을 채 넘지 않는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어쩌면 머지않아 이 카페들은 문을 닫을 것이며, 내게 스탬프를 찍어주던 바리스타들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10번 스탬프를 찍으면 커피 한 잔은 무료지만, 한 번도 제대로 챙겨 마신 적이 없다. 카페의 스탬프는 내게 단골집을 의미한다). 집과 회사를 오가면서 내가 자주 들르던 독립서점이, 어느 날 배달 치킨집으로 바뀐 것도 문학동네 카페 탓이라고 한다면 견강부회일까?

카페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망리단길 중간쯤에 제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2층짜리 소아과 병원이 카페로 변신했고, 낡은 음식점들이 헐린 자리에 카페들이 신장개업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비교적 쉽게, 소자본으로 우아하게 할 수 있는 사업이 카페라고 여기는 분위기 탓인지, 한 집 건너 카페가 문을 연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새에 문학동네 카페의 위력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곳 작은 카페들에 닥칠 운명에 몹시 회의적이다. 문학동네 카페에 들어서면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 다양한 종류의 커피 냄새, 그리고 사방의 벽에 수천 권의 책이 성곽처럼 꽂힌 책장에 금세 매료된다. 문학동네의 카페 경영진은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학동네는 독자들과 오랫동안 소통해온 콘텐츠 생산자다. 카페에도 책을 매개로 저자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커피나 빵 관련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동네 카페는 이곳 합정동뿐 아니라, 연남동, 종로, 명동, 세종, 증산, 인천 연수 등 전국에 지점을 열고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문학동네 카페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문학동네 카페는 ‘문학’적이지도, ‘동네’스럽지도 않다. 이곳 작은 카페들이 최강자로 등장한 문학동네 카페와 싸우며 ‘존버’를 해야 하지만 역부족이다. 가격을 대폭 낮추고, 무료 스탬프를 아무리 찍어줘도 고객들의 발걸음은 문학동네 카페로 향한다. 사실, 문학동네 카페의 패권적 지위는 시장에서 넓고 쾌적한 공간, 신선한 빵과 커피, 안방의 서재처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방대한 책을 내세워, 경쟁과 대결을 통해 얻은 ‘공정한’ 성과여서 절차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인다. 시장경제에서는 수많은 기업들 및 개인들 간의 경쟁과 대결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듯, 카페 시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시장에서 공정성 확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심판의 역할이다. 시장의 규칙 준수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는 공정거래법이나, 이를 감시-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대기업 소유의 쇼핑몰이나 제과점, 카페 등 체인점의 골목시장 진출에 때때로 제재를 가하는 이유는 막대한 자본을 내세워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깨트리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동네는 출판계 가장 큰 대기업으로 꼽힌다. 2020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펴낸 2019년 출판시장통계에 따르면 문학동네 매출은 300억 6,100만원으로, 출판시장의 침체기에도 1위에 오를 만큼 독보적이다. 하지만 문학동네의 관심사는 더 이상 출판시장이 아니다. 2년 전에 시행착오로 폐점하긴 했지만, 문학동네는 롯데하이마트와 협업해 도서와 유통의 결합을 겨냥, 롯데하이마트 구리점에 숍인숍으로 카페꼼마를 입점시키는 등 여차하면 카페 체인점으로 전환할 태세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업종 전환(또는 확장)이 무한경쟁 시대의 생존전략이라면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요즘 합정동에서 문학동네 카페가 초래한 동네 생태계의 마비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하다. 문학동네의 카페 진출은 고객들이 환호할뿐더러, 현행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카페 영업이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해서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공정 경쟁을 내세워 파라오적인 공간을 내세워 동네 카페의 숨통을 끊는 것은 반(反)공동체적이고, 반(反)유대적이며 반(反)연대적인 이기주의로 비쳐진다. 정의는 강자와 약자간의 공동체 정신이나 유대 또는 연대를 전제로 하며, 몇 년 동안 우리 출판시장의 최대 화두였다. 마이클 샌델과 존 롤즈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이지, 공정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했던 게 아니다. 물론, 정치권이나 경제계에서 ‘능력주의=자유 경쟁=공정’이라는 등식관계를 강조하고, ‘젊은 보수’ 이준석도 공정을 말하고, ‘검찰보수’ 윤석열도 공정을 말한다. 그들 모두 시장주의이자, 자유주의자이며 신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지식과 교양을 선사하는 문학동네 경영진들이 돈만 되면 뭐든 뛰어드는 시장주의자가 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커피와 빵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짐작한다. 그렇다면 작은 카페와 작은 독립서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나지막한 동네에 문학동네 카페는 왜 왔을까? 본사나 지사, 편집실이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스타벅스나 폴 바셋, 투썸플레이스 같은 대형 체인점 카페가 아직 이 좁은 골목까지 들어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합정동과 망원동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살가운 동네로 만들어온 작은 카페와 독립서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퍼뜩 다가온 가을의 스잔함을 느낀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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