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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다음은 바그다드인가
카불 다음은 바그다드인가
  • 아크람 벨카이드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 승인 2021.08.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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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가을,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이 지연됐다. 그러자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해체를 열렬히 지지하던 네오콘들은 이 목표를 탈레반에 맞선 개입과 엮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전으로 폐허화한 카불>, 1996 - 디디에 르페브르

2001년 9월 15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잔해에서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작은 위원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차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 토미 레이 프랭크스 미국 중동군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시간이 흐른 뒤 흘러나온 정보들에 따르면,(1) 이 위원회에서 다룬 논의는 무엇보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공격에 맞설 (프랭크스 사령관이 지휘할) 군사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세운 이슬람 토후국이 조준 대상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1월에 임기를 시작한 뒤부터 그의 행정부가 염두에 두어온 목표를 곧바로 떠올렸다. 지난 30년간 이라크에서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울포위츠 차관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동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그다드에서 정권 교체의 단초를 마련하자는 이 주장이 승인을 받는다 해도, 군사행동에 나서려면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해야 하고, 또 알카에다의 우두머리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그의 인도를 거부하는 탈레반의 패배를 기다려야 했다.

당시 미국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알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조성된 분위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공식 선언되면, 언론이 이를 정당한 대응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이었다. 이 경우 구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과 유엔(UN)의 동조도 쉽게 얻을 것이라고 관측됐다. 또 다른 선택지는 이라크 침공이었다. 이라크 침공은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를 이끌어내겠다는 집요한 의지에서 출발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이 안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맹점이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으며 미국에 어떤 위협도 가할 수 없는 이 고립무원의 빈곤국을 공격하려는 것일까?(2) 사실 이라크의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은 이미 이웃 국가인 이란을 1980년과 1990년에 침공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적들은 물론 측근들과도 격렬하게 맞섰고, 자신에 대한 모든 저항을 피로 진압했다. 특히 1988년 쿠르드족에게는 화학무기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라크를 골칫덩이로 만들었고, 1991년 1~3월 워싱턴이 주도하는 연합군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라크 대통령은 9·11 테러는 고사하고 빈 라덴이나 알카에다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지하디스트라고 불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집권 바트당의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본래 세속적인 성향의 후세인 정권을 불경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럼에도 미 정부는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결탁설을 입증하려 애썼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세계무역센터에 돌진한 두 대의 비행기 중 한 대를 조종한 모하메드 아타가 프라하에서 이라크 비밀정보기관 요원과 접선했다는 주장은, 워싱턴이 이라크를 끌어들이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논거들 중 하나였다.

이 전쟁이 어떻게 2001년 9월부터 미국의 계획에 포함됐을까? 답을 찾기 위해,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이라는 두 네오콘 학자는 워싱턴에 ‘아메리카 신(新)세기 프로젝트(PNAC)’를 설립했는데, 이는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의 군사력 보강에 활용할 목적으로 만든 싱크탱크였다(2006년에 해체될 예정이었다). 1998년 1월 26일, PNAC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바그다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유명무실’하다고 비난하며 무력으로 사담 후세인을 타도할 것을 촉구했다.(3) 

PNAC는 ‘1991년의 과제를 완료하는 것’, 즉 후세인을 정권에서 몰아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 조지 부시 1세가 이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결과, 쿠웨이트를 해방시킨 미군 병력이 후세인 정권 타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4) 이 문서에 서명한 이들 중에는 2001년 조지 부시 2세 시절 요직을 차지한 몇몇 정부 인사들이 있었다. 럼스펠드와 울포위츠는 물론 백악관 중동 담당 보좌관 엘리엇 에이브럼스,(5)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 존 볼턴, 펜타곤 산하 싱크탱크인 국방정책자문위원장 리처드 펄 등이다. 

부시 정부의 부통령 딕 체니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이 인사들은 이라크 대통령의 몰락이 중동을 재편하고, 중동에 미 군사력이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심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모두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걸프 군주국들을 영구적인 위험에서 확실히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라크 공격이 있기 몇 달 전 다시 한 번 케이건과 크리스톨은 “이라크를 재건하고 민주적 통치를 여는 데 미국이 주력함으로써, 사담 후세인에 대한 긴박하고 파괴적인 공격은 아랍 세계에 긍정적인 충격파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썼다.(6)    

 

50만 아동의 죽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앞서 네오콘들은 클린턴을 설득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1998년 12월, 클린턴은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에 협조하지 않은 이라크를 응징하는 뜻에서 폭격을 명령했다. 그는 두 번째 임기 내내 바그다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이를 더 강화했다. 1990년대에 식량 및 의약품 제재로 50만 명이 넘는 아동이 사망하는 끔찍한 인적 비용을 치러야 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7) 유엔 미국 대사이자 훗날 클린턴 정부의 국무부 장관을 지낸(1997~2001)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인구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고, 비용이 들었지만 우리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8)

네오콘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해, 훗날 이라크에 매장된 원유에 대한 미국 정유업체들의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400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3,000만 배럴) 다음으로 많다. 네오콘의 가장 절친인 딕 체니야말로 이런 암묵적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95~2000년에 석유회사 핼리버튼의 CEO를 역임했고 이후 부통령으로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 개발을 책임진 그는, 백악관의 전략 및 외교 정책에서 항상 이라크를 우선순위에 뒀다.(9)

2001년 9월, 네오콘들은 행동에 나섰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국무부 부처 및 일부 군 책임자들의 저항을 뿌리치고, 최선의 전략을 찾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서 미군이 활개 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유권자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두 나라에 대한 미국 개입의 논리적 연속성을 납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위험한 것은 탈레반과 알카에다뿐일까? 사담 후세인도 이들 못지않게 위협적인 존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 이 전쟁은 ‘민주정권 구축’에 바쳐질 것이며, 새로운 이라크 건설에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군사적 무력사용인준(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이 미군에 2001년 9월 11일 테러의 주범들을 공격할 권한을 준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무기사용은 군사작전을 민간 산하기구에 의뢰할 수 있다는 법적 조항에 따라, 전적으로 ‘새로운 이라크’를 통치하는 데 적용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 전략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2002년 1월부터 ‘대중동(Great Middle Eas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모로코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를 지리적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엉뚱하고 비상식적인 발상이지만, 워싱턴은 이 나라들이 이슬람 세계에 속해 있고, 민주화가 지연되고 있으며, 미국 및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동일 집단으로 표현했다.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한 몸이라는 주장이 일부 여론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더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시 행정부는 곧 깨달았다. 2001년 9월 18일부터 기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배달된 탄저균 우편물은 강박증을 촉발했고, 이 사건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가할 위협을 우려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담화에 힘이 실렸다. 담화문은 간단했다. ‘사담 후세인은 이 행성의 일부를 파괴할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고, 이는 미국에 9·11 공격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1차 걸프전이 종식된 뒤 이라크가 유엔과 IAEA에 일관되게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이런 무기 계획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후 허무맹랑한 이라크 반체제 인사의 망명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는 1992년 요르단 법원에서 허위 은행 부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라크의 사업가 아흐메드 찰라비가 주도한 것이다. 그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을 퍼뜨렸으며, 미국 언론의 특별 정보원으로 일했다. 찰라비와 그의 측근들은 이라크가 치명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워싱턴이 듣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약속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민주적이고 친미적이고, 이스라엘과 평화적으로 지내며 이란의 패권적 야망에 적대적인 이라크를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필두로 거의 모든 언론이 지지를 보낸 이라크 공격은 이렇게 최우선 과제가 됐다. 2002년 1월 29일,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마무리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부시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서 그는 북한 및 이란과 더불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전 세계에 촉구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14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해군이 바그다드로 입성했고 사담 후세인은 도망쳤다(그는 2003년 12월에 체포돼 2006년에 사형당했다). 네오콘의 승리였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Philip S. Golub, ‘Comment s’est décidée l’offensive contre Bagdad(바그다드 공격은 어떻게 결정됐나)’, dans ‘L’Empire contre l’Irak(이라크에 대항하는 제국)’, <Manière de voir>, n°67, 2003년 1-2월 호. Cf. J. Kael Weston, 『The Mirror Test: America at War in Iraq and Afghanistan』, Vintage Books, New York, 2017 (1re éd.: 2016), & Ron Suskind, 『The Way of the World:A Story of Truth and Hope in an Age of Extremism』, Harper, New York, 2008.
(2) Alain Gresh, ‘Muette agonie de l’Irak 이라크의 소리 없는 최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9년 7월호.
(3) ‘Blast from the past: PNAC’s 1998 letter to Clinton’, Daily Kos, 2008년 1월 28일, www.dailykos.com
(4) Micah L. Sifry & Christopher Cerf, 『The Gulf War Reader: History, Documents, Opinions』, Times Books, New York, 1991.
(5) Eric Alterman, ‘Le retour du secrétaire d’État aux sales guerres(한국어판 제목: 미 베네수엘라 특사의 어두운 과거, 에이브럼스는 누구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9년 3월호.
(6) Robert Kagan & William Kristol, ‘What to do about Iraq’, <The Weekly Standard>, Washington, DC, 2001년 1월 21일.
(7) ‘Rapport sur la nutrition et l’alimentation en Irak(이라크 영양 및 식량 보고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로마, 1995. 1999년에 유니세프(Unicef)의 새로운 연구가 이 수치를 확인했다. 
(8) <60 Minutes>, CBS, 1996년 5월 12일.
(9) Kurt Eichenwald, ‘Dick Cheney’s biggest lie’, <Newsweek>, New York, 2015년 5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50년사 

 

  • 1973년 7월 17일. 무함마드 다우드 칸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로 왕정시대는 막을 내린다.
  • 1978년 4월 27일.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는 자신이 당원으로 있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다.
  • 1979년 9월 14일. 국무총리 하피줄라 아민이 타라키 대통령 살해 후 대통령직에 오른다.
  • 12월 24~25일. 아민이 미국과 가까워질까 우려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다. 반소련 무자헤딘 세력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과 다른 서방국가들이 무자헤딘을 지원한다. 아민의 뒤를 이어 바브락 카르말이 대통령이 된다.
  • 1987년 9월 30일. 인민민주당 무함마드 나지불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 1988년 4월 14일. 소련군 철수 조약 체결, 1989년 2월 25일 공식 발효된다. 정부군과 무자헤딘 세력 간 내전이 일어난다.
  • 1992년 4월. 체제가 전복된다.
  • 1996년 9월 26~27일.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운다.
  • 2001년 9월 9일. 알카에다 대원 두 명이 탈레반과 맞서던 북부 연맹사령관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암살한다.
  • 10월 7일. 미군이 개입한다.
  • 12월 5일. 독일 본에서 협정이 체결되고, 이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협조한 전력이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가 과도정부 대통령직에 오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주도하에 국제안보지원군이 개입한다.
  • 2004년 1월 4일.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출범한다. 카르자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 2011년 6월 22일. 프랑스 NATO군이 2014년까지 완전 철수를 목표로 철수를 시작한다.
  • 2014년 4월 5일. 세계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활동했던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탈레반과의 내전은 계속된다.
  • 2016년 2월. 모스크바에서 다자간 평화회담이 열린다.
  • 2018년 2월. 도하 카타르에서 미국-탈레반 회담이 열린다.
  • 2020년 3월.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후보 모두 본인이 대선 당선자라고 주장한다. 결국, 압둘라 압둘라가 최고 행정관이자 아프가니스탄 화해협의회 의장으로 임명돼 탈레반과의 협상을 도맡는다.
  • 2020년 2월 29일. 도하에서 미국-탈레반 협정이 체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5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과 NATO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한다.
  • 3월 10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결의안 2513(도하협정)을 승인한다.
  • 2021년 새로 취임한 바이든 미 대통령이 9월 11일로 미군 철수를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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