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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지속되는 차별, 그리고 인식의 답보
[김희경의 문화톡톡] 지속되는 차별, 그리고 인식의 답보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13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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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바보같이 보이게 됐다.”(뉴욕타임스)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미국은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한다.”(CNN)

올해 엻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둘러싸고 외신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매체들은 일제히 시상 기준 등에 대해 지적했다.

그 논란의 중심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있었다. 2021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차지하는 큰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과 윤 배우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혔다.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가 이끌고 있는 제작사 ‘플랜 B’가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 영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주 언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점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됐다. 결국, 외국어 작품으로 분류된 <미나리>는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으며 ‘외국어 영화상’을 받는 데 그쳤다. 윤 배우도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를 두고 많은 관계자가 인종차별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골든글로브는 <미나리> 이전부터도 차별 논란에 시달렸다. LA타임스는 87명으로 구성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흑인 멤버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흑인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에 대해서도 차별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골든글로브뿐 아니다. 그래미 어워즈 등 미국 대표 시상식들이 열리면, 그 전후로 항상 ‘피부색’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영화, 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와 기준은 작품과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피부색이란 문화·예술 작품과 무관하며 부차적인 요소가 주요 기준이 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는 시대가 변하고, 또 변한 것 같아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시상식조차 예외가 아니다.

비단 피부색 문제만이 아니다. 인종, 성별 등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기본적인 요인들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차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이는 문화·예술계에서도 차별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매번 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쉽게 수정·보완되진 않고 있다. 심지어 차별을 잠재적으로 선택하고, 묵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현상을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계의 차별 문제를 들여다보기 전, 인류사 전체의 관점에서 이 편견과 차별의 정도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인류사는 편견과 차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이 교차·반복되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그 노력이 무색할 만큼 특정 사건들에 의해 답보, 또는 퇴보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사회 등에서 코로나19 이후 일어나고 있는 극단적인 동양인 혐오 같은 경우엔 명백한 퇴보적 양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런 조짐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 등과 맞물려 인종에 대한 차별이 크게 확산됐다. 성차별도 마찬가지로 개선된 것처럼 보이나,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다른 성을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화·예술로 범위를 좁혀서 보더라도, 이런 현상들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화·예술은 인간의 사고와 상상력의 총체이다. 그렇기에 그 내면에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면 작품들에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오랫동안 디즈니 등의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백인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의 타이틀롤을 내세운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로 쏟아지는 주요 시상식에서의 차별 문제도 다시 곱씹어 보자. 글로벌 스타 등에게도 일어나는 시상식 차별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차별이 개선되고 있으며, 또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단숨에 좌절시킨다.

2018년 열린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일어난 차별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당시 가수 비욘세는 앨범에서 자신과 같은 흑인 여성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아 호평을 받았다. 그래미에선 ‘올해의 앨범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베스트어번컨템포러리 앨범상’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주요 부문 경쟁자였던 아델에게 ‘올해의 앨범상’ 등 대부분의 상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아델조차 시상식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가 올해의 앨범상을 타려면 도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하나요”

성별에 따른 차별 문제도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다. 문화·예술 산업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닌, 객체이자 작품의 대상에 머물러 왔다. 1989년 미국 뉴욕에서 한 포스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포스터엔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나?” 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문 작품 중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5%에 그쳤다. 하지만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의 85%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포스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편견과 차별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나오고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런 시대적 요청이 있었기에 재평가를 받게 됐다. 2020년 미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HBO맥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콘텐츠 목록에서 삭제했다. 1939년 개봉한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명작으로 꼽힌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하지만 작품은 흑인 노예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다루고, 이들을 차별하는 백인들의 행동을 영웅시했다. 영화 <노예 12년>의 각본을 쓴 영화감독 존 리들리는 작품의 삭제를 적극 요청했다. 당시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항의 시위가 일어나면서 이 같은 요청은 더욱 주목받았다.

결국 HBO맥스 측은 삭제 조치를 발표하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시대의 산물이며 불행히도 당시 미국 사회에 흔했던 윤리적·인종적 편견 일부가 묘사돼 있다”라고 인정했다. 또 삭제 조치에 대해 “이런 인종차별적 묘사는 당시나 지금이나 틀린 것이며, 이에 대한 규탄과 설명 없이 해당 영화를 방영 목록에 두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시선의 변화, 여기에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명작의 기준과 명단이 바뀌게 된 것이다.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미에서 차별을 당한 비욘세를 위해 아델이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아델은 시상식에서 당당히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며 비욘세를 위로했다. 이는 단순히 스타이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차별과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차별은 차별받는 사람만의 피해가 아니다. 차별하는 사람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다양성이 사라진 곳에선 제대로 된 문화·예술이 싹틀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양한 나무가 있다면 숲은 더욱 울창해진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이 모더니즘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인정받자, 빈에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다.

각자의 생각과 상상력의 열매가 맺히고 꽃 필 수 있는 토양과 환경. 문화·예술계에 온전히 그 기반이 마련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사진: 네이버영화

글 · 김희경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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