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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경험을 소비하다 - 구독경제
[이병국의 문화톡톡] 경험을 소비하다 - 구독경제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2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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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셋째 주 목요일이면 전통주 구독 서비스인 ‘술담화’에서 보낸 담화박스가 집으로 배송된다. 술 취향과 인생술을 찾아준다는 콘셉트의 전통주 스타트업인 술담화는 월 39,000원의 구독료를 내면 매달 계절에 맞는 전통주 2~4병을 보내준다. 이때 보내주는 술은 랜덤박스의 형태로 배송되며 힌트를 제공하긴 하지만 어떤 술이 도착하게 될지 박스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 기대와 설렘이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나아가 각 술의 스토리텔링과 그 술에 어울리는 안주 추천 등이 적혀 있는 카드를 제공함으로써 술자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매번 담화박스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전통주라고는 막걸리나 전통주점에서 판매하는 몇몇 유명한 술을 제외하고는 접해본 적 없는 나이기에 2,000여 종의 전통주를 생산하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무궁한 새로움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충만하다.

 

출처_술담화 홈페이지
출처_술담화 홈페이지

술담화와 같은 구독 서비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경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시사 경제용어사전에서 ‘구독경제’를 검색하면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내고 정해진 기간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 나온다. 이는 신문이나 우유 배달처럼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서비스 방식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넷플릭스’의 무제한 동영상 스크리밍 서비스 등이 그 규모를 확대해가며 새로운 산업 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 코로나19 유행 이후 가입하여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용을 계산해보자. 술담화, 넷플릭스, 밀리의 서재, 지니뮤직......)

 

구독경제는 흔히 ‘사지 않고 사는’ 방식으로, 소비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주기적으로 상품을 공급받음으로써 원하는 상품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형태다. 비슷한 유형으로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가 있으나 서비스 제공자가 중개플랫폼이다 보니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상품 생산자에게 불리한 구조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에 비해 구독경제는 플랫폼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상품 생산 및 서비스 공급자를 소비자와 직접 연결하기도 하고 서비스 제공자의 상품 판매 방식을 구독의 형태로 바꿔 제공하는 등 비즈니스의 중심을 소비자로 전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상품의 소비를 넘어 소비 경험 자체를 제공함으로써 경험을 상품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월 일정액의 고정비용을 내면 상품과 서비스를 (특별한)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유하지 않고 더 다양한 소비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면서, 그 경험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아무런 제약 없이 무제한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변화 양상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전환되었다고 한들 이윤이 남지 않는 무제한적인 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술담화 역시 매월 제공되는 술의 양은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구독경제가 경제 구조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유는 더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별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다양한 상품을 소량 생산하여 제공하되 이를 위해 개인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제조 원가를 낮춰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한, 소비자 역시 개인화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으며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도 향유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구독 서비스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가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소유가 아닌 상품과 서비스 사용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여 소비자가 이를 장기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 ‘취향의 외주화’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때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 소비를 향유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소비자는 제공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나의 데이터를 제공해야만 하는 셈이다. 나와 타인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서비스 제공자는 소비자의 취향과 이용 방식, 피드백 등을 데이터화하여 관리할 수 있게 되고 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상호 작용에 의한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_게티이미지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비즈니스는 개별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소비의 경험을 확장하는 가치를 제공하며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경험하는 소비자는 자신의 개별 데이터를 기업에 제공해야만 한다. 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는 원천이 되지만, 마찬가지로 제공받는 서비스를 소비의 취향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역설이 되기도 한다. 구독 ‘해지’라는 선택지가 소비자에게 있지만 알다시피 ‘해지’는 쉽지 않다.

 

한번 결정된 사항은 돌이킬 수 없다. 특히 그것이 취향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소비의 질이 향상된다면 이를 되돌리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종의 아비투스, 취향의 계급 구조를 형성하여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사회 구조 내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의 말을 빌리면, 부의 추구와 시장에서 공급되는 소비재의 향유, 남보다 앞섰기에 얻는 기쁨은 경제가 무한히 성장한다는 이념과 결합해 행복한 삶의 거의 보편적인 레시피 역할을 한다. 경제적, 혹은 문화적 자본의 향유는 그것이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으리란 믿음과 결합하여 남과 다른 나의 행복을 거부할 수 없도록 유혹한다. 이를 끊어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루 한 잔의 커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전통주와 와인, 과자, 화장품처럼 일회적인 소비로 경험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지만, 구독경제는 개개인에게 옷과 집, 자동차처럼 장기 지속이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오직 하나뿐인 개인 맞춤형 서비스. 이러한 모델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가져오는 과잉과 낭비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불확실하고 불안한 소비사회에서 확실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분명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구별된 취향의 경제가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구축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즐기되, 의심하라. 경제적 풍요가 주는 새로운 가치 너머에 존재하는 취향의 외주화, 소비의 계급화, 경제적 불평등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 생활 전반을 장악할 것으로 생각된다. 작은 차이가 주는 효용성은 ‘나’의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시켜줄 기반으로 굳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최적화된 최선의 서비스. 언제든 수정 가능하며 보다 나은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끄는 유혹을 떨쳐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족 – 구독경제의 서비스는 문학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문예지 청탁 및 책 출간에 기반하여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일간 이슬아’의 성공적 기획은 작가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월 10,000원으로 4~6회의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시와 에세이, 사진과 음악 및 영상을 받아볼 수 있기도 하고, 일기와 같은 사적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며, 미발표 원고를 미리 읽을 수도 있다. 기업 단위가 아닌 개인 층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아직은 크라우드 펀딩처럼 상호부조의 개념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겠으나,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가능하다.

 

 

글 ·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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