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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아직’의 세계에서 들리는 :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인터뷰
[양근애의 문화톡톡] ‘아직’의 세계에서 들리는 :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인터뷰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2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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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여러 분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의 예술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우선 만들어진 무대와 제 역할에 알맞은 복장을 갖추어 입은 배우와 대면하게 되고 곧이어 무대에서 흘러가는 순간들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힘들이 연극을 진행시킨다. 사운드가 그 중 하나다. 연극에는 배우의 목소리 외에도 극의 전개에 따라 유려하게 흘러가는 음악, 배경을 가시화 시키고 분위기를 형성하는 음향 등 많은 소리가 있다. 연극에서 소리를 담당하는,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를 만났다.

사운드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는 일은, 그가 만든 사운드를 독자에게 들려줄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 미완의 모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 번의 인터뷰 끝에 깨달았다. 연극에서 대본과 배우의 연기와 무대, 조명, 의상, 분장 등 눈으로 보았던 장면은 때때로 기억에 선명해서 묘사도 할 수 있지만, 음향은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지나갔거나 워낙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어 의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마도 소리가 일상에서 점유하는 강도와 닮아서 일 것이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바람 소리,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린다면, 그건 그 순간 뭔가 예민하게 귀를 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소리란 뭘까. 우리 주변의 소리를 들으면서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목소의 말을 떠올렸다. 귀는 의식적으로 닫을 수 없는 기관이지만 자극받지 않으면 못 들었다고 믿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극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일상의 소리와는 다른 문법을 가진 언어가 아닌가. 생각이 복잡해진다. 녹음된 몇 개의 파일을 수차례 열고 듣는다. 주고받는 말의 틈새로 드르륵 창문이 열렸다. 대화 속에 불려 나온 연극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비 내리는 소리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어둡지만 이슥하지는 않은 어느 시간에 달칵, 스윽, 쨍, 호옥, 투둑.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

 

사진제공: 목소
사진제공: 목소

 

듣기의 태도와 윤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어떤 순간에 들리고 인식되는지, 또 그것들이 가지는 리듬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 극에서 무엇을 들려주는지 배우 혹은 관객들이 들으려고 하는지예요. 듣기의 태도나 윤리라고 할까요. 관객에게 들려주는 것 이외에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연출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목소는 2011년에 처음 연극의 음향을 만드는 일을 했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 작업이나 개인 작업을 병행하면서 연극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2021년의 목소는 그 누구보다 한국 연극의 판을 잘 알고 있는 ‘연극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연출의 의중을 파악하고 구현하는 창작자로서 동료들에게 신뢰가 높지만, 기획과 배우와 다른 디자이너들의 다정한 친구로 필요한 곳에 있다. 바쁠 땐 한 달에 몇 개의 연극 작업이 겹칠 정도로 여러 극장을 오가지만,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들 속에 연극의 진행 과정을 누구보다 잘 고려하고 있는 작업자의 사려 깊음이 드러난다. 음향은 극장에 셋업하기 전부터 배우에게 가이드를 주는 일이 필요하기에 테이블 작업부터 참여하게 된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음향 드라마투르그’가 아닌가 싶다는 그의 말은 농담 같지만 ‘연극에 진심인’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관객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 것인가를 넘어, 듣기의 윤리를 고민한다는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영화처럼 빼곡한 소리와 달리, 관객과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지는 연극의 소리는 배우의 목소리와 관객의 바스락거림과 극장이라는 물리적 신체와 그 질감이 만들어내는 잡음과 함께 작동한다.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2017)에서 정작 소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이 작업에서 ‘듣기’의 태도와 윤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잘 들리지 않는 개의 울음소리를 쫓아 ‘바닥 아래의 바닥’으로 기꺼이 내려가는 일종의 윤리적 태도 내지 결단을 담은 이 연극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소리들이나 허가된 소리들에 대해, 혹은 싸우고 있거나 애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듣고 있을 소리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들려주는 사람에서 듣는 사람으로의 전회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이 국립 청소년예술가탐색전 <듣는 시간 들리는 공간>으로까지 연장된 것 같아요.”

<듣는 시간 들리는 공간>(2018)에서 그는 청소년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소리’를 고민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자기 언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청소년들이 느끼는 자기 안의 소리는 팽창 직전의 부피로 차올라 있다. 목소는 그 작업에서 과거의 자신과 손잡고 청소년들이 자기 세계의 문을 열고 길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 것 같았다. 타인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외부 세계와 만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그의 음성에 힘이 실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2021년 목소의 얼굴에는 청소년 시절 우정인의 얼굴이 말갛게 남아 있기도 하다.

 

생각을 만드는 소리

“연극에서 음향은 음악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관객이 좋아하는 듯한데, 저에게 중요한 건 감각이나 자극보다 리듬이나 호흡이고, 생각을 시작하게 만드는 소리였으면 좋겠고, 그걸 작품 안에서 같이 고민하고 싶어요.”

<좋아하고 있어>(2017)에서 물소리를 기본으로 해서 소리라는 번역의 언어를 찾았던 것은 이와 같은 고민의 결과였다.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일은 연극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자기 세계를 가늠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고 있어>의 프로그램북에 쓴, “밖에 갇힌” 청소년들을 거울처럼 응시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가만히 이어보는 그의 글은 여러 차례 같은 자리를 쓰다듬어 솔질을 하는 단정한 손의 온도를 느끼게 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로서의 작업보다 최근 한국 연극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나누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 퀴어, 장애인 연극 등 최근 연극계의 이슈들이 극장에서 와글거릴 때, 목소는 활동가나 운동가를 자처하는 연극인들과 함께 의지를 다지고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안전’과 ‘불안’에 관한 생각들을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나누고 이를 퍼포먼스로 만든 <WALK ON>(2016)은 그가 삶과 공연을 전치 시키지 않고 나란히 놓기 위해 자기 언어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세월호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미투 운동 이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진 연극인들과 함께 움직이며 연극의 고민을 자기 안으로 끌어안은 목소에게 연극 작업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과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당연히,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관객들이 거의 못 듣는 소리도 많이 써요. <7번 국도>(2019)에서 형광등 소리를 깔아놓기도 했고, 택시 안에 있는 소리도 미세하게 다 달라요. 정말로 명확하게 듣지 못해도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소리가 채웠다가 사라졌을 때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든지 감각이 있으니까요. 근데 아무도 못 들으니까 약간 속상하기는 하죠.”

그러고보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소리는 대사로 발화되는 사태보다 미묘한 기미로 존재한다. 소리가 사라졌을 때 공기의 흐름이 바뀌고 무언가 달라지는 결을 느낀 적도 있었다. 지금 연극의 바뀐 흐름도 그런 것이 아닐까. 미학적 성취를 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동안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들, 사각지대에 내몰린 사람들을 가시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들이 계속 되고 있는 한, 연극도 조금 더 나아진 세상과 함께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는 당연히, 극장 소속으로 구자혜 연출과 함께 만든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 센터 스트리밍서비스공연>(2020)에서 그는 코로나19로 ‘온라인 극장’이 열린 후, 그쪽으로 이동하는 연극에 대항하듯 몸을 돌려세워 극장 안에 소리라는 구조 자체를 현시했다. 프로그램북에서 그는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는, 무대와 극장을 벗어난 프레임 외부의 소리는 지금 여기서 들리는 소리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고,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온라인 연극이 갑자기 생겨나면서 배우의 목소리를 비롯하여 연극의 현장감을 담당했던 극장의 소리들은 예민하게 논의할 지점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 극장 안에 존재하는 소리는 극장 바깥의 소리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구자혜 연출과는 대학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기에 연출이 대본에 명시하지 않은 개념적인 소리를 디자인하는 일은 기꺼운 그의 몫이 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며 변화를 겪는 동안, 여당극의 구성원들도 목소도 어느새 연극을 통해 지금-여기를 고민하는 중요한 지점에 와 있다.

 

어쩌면 무한한, 외롭고 두터운

래퍼로 활동하면서 만든 목소라는 이름은, 그가 그려낼 수 있는 많은 세계를 닮았다. 로맨스의 알파벳을 재조합해서 만든 morceau는 프랑스어로 ‘조각’이라는 뜻이 되고 한자로는 目逍를 쓴다고 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선보인 <그의 이름은 도시>(2011)는 ‘관계로서의 마을’이라는 모토로 서울의 5개구를 투어하는 ‘폴 어쿠스틱’의 공연을 담은 영상물이다. 이 영상에는 아직 ‘연극인’이 아니었던 목소의 고민이 리드미컬하게 흐르고 있다. 그의 랩은 시가 아닐 수 없게끔 비트를 유영했다. 살아가는 터전으로서 마을을 탐색하고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향한다. 십 년 전의 노랫말은 어쩌면 지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세상의 변방에서 변화를 외쳐라/소수의 역사로 다음 페이지를 써라”

“그런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것들을 같이 고민하면서 그 실천들을 고민하는 사회. 자치에 대한 고민들.”

청소년을 ‘계속해서 연결되는 다음 세대’로 보고 그들에게서 우리를 찾는 일과, 이제는 몸에 붙어서 일이자 일 바깥까지 스며들어버린 연극 작업과, 시와 음악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품는 일은 그에게 다른 범주가 아니다. 사회학과 철학과 여성학을 공부했던 기억들을 놓지 않고 책장 가득 문학과 철학 서적에 자리를 내주면서 아직 비어 있는 가장 좋은 무언가를 향해 혼자 작업하는 시간의 고요를 그리워하는 그의 일상이 가까이 느껴졌다. 텍스트-오디오 작업인 <습기, 사랑의 일>(2016)은 그가 언어를 벼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보여준다. 여름의 소리와 함께 재생되는 그의 시적인 글에서, 사운드가 어떻게 읽는다는 행위를 두텁게 만들어 경험하지 않은 기억 속으로 데려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언어에 의존적인 사람 같아요. 많은 언어를 가지고 언어를 섬세하게 다루게 되면 많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섬세하게 자기감정을 파악하는데 언어가 필요하고 또 그 언어로 뭔가를 표현하고 싶죠.”

극 전개에 필요한 소리를 기능적으로 만드는 테크니션의 일이든, 행간을 읽어내고 새로운 소리 언어를 번역하는 아티스트의 일이든, 연극은 결국 이해하고 이해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2019)에서는 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는 바람 소리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환기해서 관객이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앰비언스를 만들 때도 맥락과 결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는 농담이(아니)야>(2020)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대본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구현하는 작업도 하지만,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대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번역하기도 하면서 목소는 그의 연극 언어를 개발하는 중이다.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작업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는 하지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에 관한 이야기도 물어보고 싶었다.

“2021년 연극의 감각이, 지금 현실을 목도하고 소화하는 방식에 몰두하고 있어서 무대 위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일이 무책임하게 생각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작업도 하고 싶지만, 그건 현실과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고. 지금은 이 현실이랑 어떻게 몸을 부딪칠 건지 젊은 창작자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작업을 같이 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더 발랄하게 같이 꿈꿀 수 있도록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연극도 많아지면 좋겠어요.”

긴 인터뷰 사이에 깃드는 침묵이 간간이 터져나오는 웃음 만큼이나 안온하게 느껴졌다. 고요도 소란도 삶을 지탱하는 부분으로 존재할 뿐, 의미는 사후에 발생한다. 울창한 숲을 헤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각주 없이 읽히는 마음이 되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했다. 연극이 달라진 세계에서 제 자리를 찾는 동안 우리는 사실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가슴께가 묵직하다. 다만 함께 아파하면서 더 나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아직’의 세계 앞에서 삶이 유예되어 다행이라는, 그 시간을 연극과 함께 견뎌보자는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으나 그에게도 충분히 닿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극장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게 될 것 같다.

 

* 이 글은 [공연과 이론] 2021년 봄호에 실린 동명의 글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 

 

글 · 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 기억/역사의 빗금과 경계를 파열하는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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