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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둥글고 둥글게>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둥글고 둥글게>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12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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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아직도 진상규명되지 않은 사건들이 너무 많다.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부재한 그런 사건들, 영화는 이 사건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잊지 말라고 일깨우는 역할을 자임하곤 한다. 518의 광주민주항쟁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비록 공식적 기념행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광주민주항쟁을 기리기 위해 여러 영화와 영상들이 제작되고 상영되곤 한다. 각 영화와 이들의 상영 방식은 그날의 5월과 접속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들 영화들은 시대에 따라 은폐한 사건을 제대로 알리는 것에서 부터  분노와 고발, 일깨움, 진상규명, 상실과 애도 그리고 기억을 단계별로 담는다.

광주민주항쟁 40주년 이후 가장 최근 제작된 <둥글고 둥글게>는 사건을 관통하는 감정을 총망라하는 감각 체험의 영화이다. 영화는 사건 자체를 재현하기 보다는 사건을 시대 속에서 재배치하여, 시대와 사건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과 감정을 모아, 그날을 오늘의 자리에서 애도하고 위무하고자 한다. 공연과 함께 기획 상영되기도 한 영화는 전작 <오버데어>에서 이미 시도한, 장민승-정재일 콜라보 작업으로 역사적 사건을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의 협업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청각적인 공간적 감각 체험을 시도한다. 이 글은 <둥글고 둥글게>가 자아내는 감각과 체험을 애써 글로 풀어내기 보다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세 가지 요소를 짚어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작품 관람을 반드시 권하고자 한다.

 

불과 빛

영화는 강렬한 촛불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짙고 깊은 어둠 속에서 5분여간 마주하는 촛불과 성가는 마치 사원과 같은 종교적 공간에서 마주하는 엄숙함과 고독함을 자아낸다. 촛불이 꺼지고 하얀 연기가 흩날리면서 영화는 80년대로 들어선다. 보다 정확하게는 80년대 시대의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 모습에서 탄광에서 노동하는 광부들, 제철소에서 철을 벼루는 장면을 담은 영화는 이어 88올림픽의 장소인 잠실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한다. 각 장면들에는 불과 빛이 함께한다. 미싱을 비추는 조명이 그렇고, 제철소 용광로가 그렇고, 올림픽 성화가 그렇다. 이어 영화는 마치 제사 지방을 태우듯 스크린을 덮고 있는 종이막을 태워 영화 자체가 시대의 흔적이자 시대를 위무하는 제의의 장으로 자리매김한다.

 

불과 빛은 어둠과 대치하기 보다 공존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어둠 속 빛으로 영사되는 것처럼, 80년대 역사-이미지 역시 시대의 어둠 속 불빛으로 발화한다. 불은 화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빛을 발해 주변을 밝히고 때론 정화의 아이콘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양가성을 갖는다. 80년대 노동의 불, 노동 운동의 불, 노동운동을 저지하는 불이 모두 불이다. 불은 또한 사건의 장소인 빛고을 광주(光州)에도 있고, <둥글고 둥글게>가 선택한 LED 스크린에도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빛이 자체 발광하는 LED 화면은 영화 <둥글고 둥글게>를 관통하는 불.빛.의 메타포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영화는 촛불로 시작해 노동과 현장을 아우르는 불.빛을 통해 애도의 경건함과 차분함, 나아가 촛불 시대로 일컫는 이 시대의 역동성까지 아우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한 세계 근원 원소로서 불일 수 있겠다.

 

미시적 사물성

영화는 88년 올림픽에서 출발해 80년대를 거슬러 광주민주항쟁을 담고 부마항쟁에서 끝맺는다. 사건으로서 광주민주항쟁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면서 광주를 담은 영화는 아카이브 영상과 음악으로 시대감각을 생성한다. 영화는 시대의 이미지로 아카이브 영상을 적극적으로 불러오되 가공한다. 섬유공장, 탄광, 제철소, 홍수, 집회, 대통령 연설 등 이미지들은 80년대를 가로지르는 집단 기억을 불러온다. 동시에 영화가 불러오는 아카이브 영상들은 구체적인 정보나 증거 혹은 지시성도 갖기보다 시대의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로서 등장한다. 때론 파편적이고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미시적인 사물성을 강조하는 촛불, 미싱, 경기장, 비눗방울, 복도, 나무,신발과 같은 사물성과 공간성에 주목한다. 이들 이미지는 시대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지만, 맥락과 시공간을 탈각하는 사물 그 자체로 존재한다. 사물은 심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의미 작용을 넘어서 사물 존재자체로 구성되는 견고한 묘사 세계를 구축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총체성을 상실한 지금 이 시대가 세상과 접속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런 시대와 내밀하게 접촉하는 촉각성을 강조한 방식이기도 하다. 멀리서 전체를 두고 관망하는 시선의 거리두기 대신 가깝게 다가가 물성을 체험하는 방식이랄까.

영화가 물성에 기반한 아카이브 이미지로 과거를 불러온다면, 현재는 사건의 실제 공간의 지금을 담는다. 영화는 과거 시간을 품고 있는 지금의 현재 공간에 들어가서 마치 그 시절 그들의 흔적을 찾듯이 혹은 그들이 된 듯 빈 공간을 부유하며 찬찬히 훓어간다. 영화는 사건의 경험자의 인간적 기억 대신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의 기억 즉 ‘기억 공간’에 주목한다. 잠실 올림픽 경기장, 광주 교도소, 광주 국군병원을 기억의 형상이자 흔적으로서 다가가 탐색한다. 그리고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텅 빈 공간을 어루만지듯이 공간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을 소환해 위무하는 제의적 역할을 수행한다.

 

광주 국군병원 복도
광주 국군병원 복도

메모라레

영화는 과거 ‘사물적 기억’과 현재 ‘공간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만큼, 강렬한 청각적 체험을 아우른다. 영화의 세 번째 파트이자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은 구약의 시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편의 구절들은 텍스트와 메모라레를 외는 합창이 하모니를 이룬다. 고대 이전부터 존재하는 코러스 형식의 집단적 합창은 성경의 시편 구절들과 만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복합적 감정을 자아낸다. 고통과 원망, 절규와 탄원, 비탄과 애원, 궁극적으로 체념과 자조의 구절들은 사건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 보다는 통증을 그 자체로 전이한다. 사건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체험으로 스며들게 함과 동시에 사건을 전시대를 아우르는 종교적 체험으로 확장한다. 역사적 사건을 시편과 음악으로 재해석한 영화는 한편의 “통감의 레퀴엠”이기도 하다.

 

메모라레 악보
메모라레 악보

영화 제목 ‘둥글고 둥글게’는 소재, 표현, 주제 측면에서 모두 의미심장하게 내재되어 있다. 영화의 대표 이미지 전라도 도청 로터리에 가득 모인 사람들의 군집 이미지가 그렇고, 80년대 숫자 8과 0의 이미지도 모두 ‘둥글게’ 형상이다. 이는 영화 도처에 조형적으로 둥근 곡선과 둥근 이미지를 배치하는 것에도 등장한다. 용광로, 미싱 돌아가는 선, 올림픽 경기장을 담는 구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둥글게는 당시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살자는 말을 연상케 하지만, 참지 못하고 분출했던 그러나 열심히 투쟁했으나 제자리에 있는 그런 공허함도 반영한다. <둥글고 둥글게>는 올해의 가장 강렬한 체험의 영화가 아닐까. 

 

전라도 도청 이미지
전라도 도청 이미지

 

사진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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