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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규칙, 약속 그리고 변화 - <괴짜들의 로맨스>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규칙, 약속 그리고 변화 - <괴짜들의 로맨스>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11.15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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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는 ‘I WeirDo’, 한국에서는 ‘괴짜들의 로맨스’로 개봉한다. ‘괴짜의 이야기’가 아니라 ‘괴짜 두 사람이 어떤 로맨스를 그려 가는지’ 를 강조한 제목이다.

로맨스 영화에서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인물 자신이 지켜온 규칙을 사랑을 위해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 그중 하나다.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 있고, 그의 일상 속에서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만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는 자기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고민하거나 혹은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그는 상대와의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규칙을 깬다. 규칙을 깨는 인물의 행동에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 수 있는데, 인물의 욕망 성취를 위해 필요한 규칙일수록, 인물이 절박하게 지켜왔던 규칙일수록, 목숨까지 걸린 규칙이라면 더더욱, 그들이 선택한 사랑은 위대해 보인다.

 

<괴짜들의 로맨스>는 강박증에 걸려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괴짜의 로맨스를 그린다. 강박증이나 결벽증을 가진 인물들의 로맨스가 신선한 콘셉트는 아니다. 보통은 강박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를 만나 강박의 원인과 전사를 공유하고 사랑으로 치유되는 결과를 보여준다면, <괴짜들의 로맨스>는 강박증의 원인을 들추지 않는다. 두 인물의 현재와 그 이후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서 차별적이다. 거기에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대칭 구도, 1:1 화면 비율, 다채로운 색감의 미장센을 활용하며 보는 즐거움도 주고, 시점에 변화를 주고 반전도 있어서 진부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한다.

강박증에는 여러 증세가 있지만, 천바이칭(임백굉)은 심한 결벽증을 동반한 신경성 강박증을 앓고 있다. 만족이 될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서 자기 스스로 강박증 스위치를 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바이칭은 아직 자신의 스위치를 찾지도 못한 상황이다. 영화는 천바이칭의 강박적 일상을 공들여 설명한다. 그 안에는 천바이칭이 강박증으로 지키고 있는 규칙들이 존재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천바이칭의 욕망도 공존한다. 천바이칭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강박증적 규칙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이 규칙에서 벗어난 삶이 어떤 것인지 기대하고 있다.

 

천바이칭의 규칙 중 하나는 매달 15일에만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 나가서 쇼핑, 세금계산 등 일상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15일, 천바이칭은 지하철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세균으로부터 무장한 천징(사흔영)을 알아본다. 천징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득한 프레임 안에서 이질적이고 눈에 띈다. 천바이칭은 쇼핑몰에서 천징의 도벽을 목격하고, 눈감아 주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신경 쓰이게 된다. 그리고 천바이칭은 다음날 다시 슈퍼로 나가면서 매달 15일에만 집 밖으로 나가는 규칙을 깬다. 천징을 다시 보기 위해서다.

천바이칭은 세균성 알레르기와 강박증을 앓는 천징과 친해지면서 집 밖을 나가는 일이 잦아진다. 비대면 대화와 대면 데이트도 하고, 천징의 집에도 가보는 천바이칭. 설렘과 썸이 오가고, 괴짜 같은 천징의 제안으로 세균을 견뎌내는 게임까지 한다. 그리고 서로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나 밖에서의 잦은 만남에 천징이 세균성 알레르기로 아프게 되고, 천바이칭은 자신의 집에서 천징과 함께 살기로 한다. 동거하면 바깥출입을 줄이고, 세균으로부터 안전할 것이기에. 천징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제 둘은 모든 것을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벽증 때문에 키스조차 할 수가 없다. 그래도 행복한 두 사람인데.

 

자신의 강박증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를 몰랐던 천바이칭, 동시에 평범한 삶을 꿈꿨던 천바이칭. 그는 천징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규칙을 깨 왔다. 규칙을 깨는 만큼 천바이칭의 강박도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천징은 그런 느낌을 먼저 알아차린 걸까. 천징이 바라는 것은 천바이칭과 동거하는 이대로의 삶이 유지되는 것인데 이것이 변할까 봐 불안해하고, 천징은 천바이칭에게 생의 마지막과 운명을 말한다. 천바이칭과 천징은 서로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하는데, 그러나 다음날, 운명처럼 천바이칭은 강박증에서 벗어나게 된다.

 

천바이칭이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순간, 1:1 정사각형 화면 비율은 가로가 넓어지면서 직사각형 화면 비율로 바뀐다. 강박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프레임 사이즈 변화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한다. 강박에서 벗어난 천바이칭의 삶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이제 영화는 천징의 시점을 중심으로 후반부를 끌어간다.

사실 사랑을 위해서 규칙을 깬 것은 천징도 마찬가지였다. 세균성 알레르기를 앓고 있지만, 천바이칭을 만나 바깥 생활을 늘렸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그런 천징은 이제 강박증이 사라지고 평범해진 천바이칭을 받아들이기까지 해야 한다. 천징은 천바이칭이 다시 강박증의 상태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그를 세상에 내보낸다. 천징은 몸이 상하는 것을 견디면서까지 천바이칭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이 지켜오고 약속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다가온다.

 

천바오칭과 천징은 타인의 시선에 이상한 괴짜로 보이지만, 두 사람은 괴짜라는 이유로 서로를 공감할 수 있었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규칙을 깨뜨렸고,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괴짜에서 벗어나면서 둘은 공감하거나 행복할 수 없게 된다. 영화는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며 함께였던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자신의 규칙까지 깨며 사랑했지만, 삶의 변화 앞에서 마음이 변하고 약속을 어기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지켜온 규칙이 절박한 문제인 만큼, 그것을 깨고 사랑으로 나아간 인물에게 배신의 아픔은 더욱 크다. 이는 괴짜가 아닌 연인들의 흔한 연애 과정과도 닮아있다. 괴짜라는 옷을 입었지만, 괴짜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끔 영화는 반전 구성으로 마지막 메시지까지 힘 있게 전달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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