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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결국 나는 나였을까?_<월요일이 사라졌다>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결국 나는 나였을까?_<월요일이 사라졌다>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06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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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포스터
오리지널 포스터

*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 매혹된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이후, SF 장르에 철학적 사유를 녹여 넣은 영화들이 흔해졌다.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감탄하게 하거나 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에 신선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색을 입힌다. 하나의 이름 뒤에 가려진 채 매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주인공이 일곱 쌍둥이라는 설정이 신선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승부수, 1인 7역을 소화하는 누미 라파스이다. 이 배우, 매혹된다.

토미 위르콜라 감독은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 인류라는 다소 흔한 소재 속에, 1가구 1자녀 법으로 엄격히 출산이 통제되는 세계에 일곱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상상력을 녹여 넣었다. 테렌스 셋맨(윌렘 데포)은 일곱 명에게 월요일(Monday)부터 일요일(Sunday)까지 요일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요일에만 외출을 하는 규칙을 만든다. 일곱 명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생존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카렌 셋맨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생활한다. 저녁에는 한자리에 모여 자신이 겪은 일을 공유하기에 분절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먼데이’가 갑자기 사라진다.

월요일의 규칙이 무너진 후, ‘튜즈데이’도 사라진다. 남은 다섯 쌍둥이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들이 지켜오던 규칙, 지긋지긋해서 탈출하고 싶었던 생활이 이젠 생존의 문제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을 아주 오랫동안 괴롭혀 오던, 정체성의 질문이 뒤이어 온다. 과연 나는 카렌 셋맨이 맞는가?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모르는 그 시간 동안 일곱 명의 쌍둥이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시간을 공유했는가, 하는 질문은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이끄는 팽팽한 긴장감이 된다. 그리고 묻는다. 일곱 명의 인격체가 과연 서로에게 정말 진실했는가?

 

스틸 컷
스틸 컷

영화는 줄곧 일곱 개의 다른 인격처럼 보이는 일곱 명의 카렌 셋맨을 통해 존재론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회의와 의심의 영화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서로 믿고 싶지만, 끝내 의심하면서 관계의 긴장감을 이뤄내고, 누가 과연 배신자인가의 여부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질문하면서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위르콜라 감독이 집중하는 것은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미래 사회의 감시와 통제, 그 사이에 사육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지만 사회 비판적 시선에 앞서, 생존 앞에 선 여인의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 그리고 사실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7명의 다른 인물을 정말 다른 인물처럼 믿게 만드는 누미 라파스의 연기다. 각각의 인물은 분절되어 있고, 개성도 조각조각 펼쳐져 있지만, 누미 라파스는 7명의 자아가 모두 다른 인물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흩어져 있는 인물들을 절묘하게 하나의 서사로 꿰매는 역할을 한다. 건재한 윌렘 데포는 초반부의 이야기를 충분히 있을 법하게 만들고 관객들을 설득하지만, 대부분 영화 속에서 옳은 선택지였던 글렌 클로즈는 여전히 단단하지만, 캐릭터 자체에 입체감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를 보실 분을 위해 너무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배신 혹은 진심이 합리화될 만큼, 혹은 이해될만한 층위가 있었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쾌하고 심도 깊은 답을 영화 자체가 주지는 못하는 점은 아쉽다.

 

스틸 컷
스틸 컷

가까운 미래, 아주 강력한 법으로 출산을 억제하는 정부. 서양에서는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소재,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하다.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산아 제한 캠페인이나,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에 아파트 당첨권을 줬다는 이야기는 불과 수십 년 전에 실제로 여기, 이 땅에서 벌어졌다. 아주 강력하게 1가구 1자녀를 강제했던 독재의 시절, 미래 영화에서나 상상할 법한 일을 앞서 겪었던 우리 사회의 장르는 SF라기 보다는 호러 스릴러였던 듯.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_<월요일이 사라졌다>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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