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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당신의 대출금은 얼마입니까
[장윤미의 문화톡톡] 당신의 대출금은 얼마입니까
  • 장윤미 (문화평론가)
  • 승인 2021.12.06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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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픽사베이

소비공간을 놀이터로 이용하는 세대, 자본의 흐름이 곧 일상의 흐름인 세대, 저축보다 투자가, 아끼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세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MZ세대는 그렇다. 생산의 가치보다 소비의 미덕을 먼저 체화한 이들에게 자본, 즉 돈은 자기를 증명하는 가장 분명한 수단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장기 경제 불황, 불안정한 고용 시장, 무한경쟁 구조 한복판에 그야말로 내던져지면서, MZ세대는 소비로 자신을 증명하는 건 고사하고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다. 든든한 부모나 황금 인맥과 같은 레버리지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은 아는 사람의 친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언이랍시고 젊을 때일수록 아껴 쓰고 남은 돈으로 저축하라는 말이야말로 세상 꼰대 같은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쓸 돈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고, 저축할 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게 그다음 큰 문제이므로.

 

자본주의를 먹고 자란 MZ 세대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MZ세대가 맞이(?)하는 최초 공식 대출은 대부분 대학 등록금 대출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등록금이 성인이 되자마자 자기명의로 얻은 공식적인 자산이자 빚인 것이다. 저축이나 투자가 아닌 대출과 이자로 예비 경제활동자 시작을 하게 된 것이 유감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학업기간 동안엔 원금에 대한 이자만 갚으면 된다는 말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적은 이자에 안도하는 동안 원금은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목돈이 되어 돌아올 때 밀려오는 걱정과 한숨은 또다른 대출루트에 기웃거리도록 만든다.

운이 좋아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에 하나도 ‘마통’(마이너스 통장)이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먼저 ‘땡겨’쓰는 건 취업에 성공한 후 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자산증식 과정 중에 하나인데 ‘마통’은 연봉과 직장의 규모, 그리고 나의 신용 상태에 따라 한도와 이율이 달라지는 탓에 가능한 ‘마통’의 한도는 신용이 좋을 때 최대한 늘려 놓는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목적이 축적이 아니라 대출금 상환이라면,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 저축 금리가 아니라 대출 금리라면 웬만히 경제적 사정이 좋은 경우가 아니고는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축 만기일은 기다려질지 몰라도 대출금 상환일은 최대한 미루었으면 좋겠고, 집값이 오르는 건 즐겁지만 대출 금리가 오르는 건 두려운 건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시련이나 고난은 아니다.

쉬지 않고 경제활동을 지속한다고 해도 나의 재정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조급함을 부추기는 것 중에 하나다. 내 소득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에 노오력을 하지만 출발부터 다른 운이 좋은 사람과 경쟁한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감과 독기를 장착은 필수다. 하지만 이것도 열정이 넘쳐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담보될 때나 참을 수 있다. 노력의 보상도 희생의 대가도 따르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면, 다 필요 없고 딱 한방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웃지 못할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매주 로또에 돈을 쓰는 사람을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며 부족한 씨드를 탓하고 있진 않은지.

 

나는 얼마큼 대출받을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MZ세대들이 진입할 수 있는 노동시장은 좁고, 가질 수 있는 자본은 적다. 장기적 경제 침체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노동은 이미 기득권이 다 채가고 남은 곳이라곤 열정은 인정해주지 않으면서도 열정을 요구하는 열악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MZ세대는 생존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득권과 경쟁해야 하고 ‘좋은 부모를 만나 운이 좋은’ 또 다른 MZ들과 경쟁해야 한다. 사방이 경쟁자이니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느낄 정도다. 단군이래, 유례없이 똑똑하고 자기 계발 잘하는 세대가 MZ 세대란 수식어와 단군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말은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진심으로 이해되는 이유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제발 ‘젊음과 패기로 뼈를 갈아 일해라,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실을 이룰 것이니 참고 견뎌라’와 같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그 시절에도 통하지 않는 조언은 그만두길. 좋은 부모, 좋은 조부모라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갖지 않은 대부분의 MZ세대가 가진 고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는 얼마큼 대출을 ‘땡길’ 수 있을 것인가, 이므로.

 

 

*이 글은 <우리 문화>8월호에 게재한 글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글 · 장윤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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