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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우리와 그는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 - <왕십리 김종분>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우리와 그는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 - <왕십리 김종분>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20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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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역의 11번 출구 앞, 이른 아침 김종분 할머니의 좌판이 펼쳐진다. 각종 나물과 찐옥수수, 구운 가래떡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며 온기를 내뿜기 시작하면 김종분 할머니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 좌판을 지키는 이는 한 명일 수도 두 명일 수도 있고, 물건을 사는 이는 말 몇 마디로 조금 더 싸게 혹은 다음에 돈을 갖다 준다는 약속만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이는 팔순의 김종분 할머니가 이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천천히 만들어간 느슨한 약속이다. 50여 년의 세월은 왕십리 앞을 몰라볼 정도로 바꾸어 놓았지만, 할머니는 이 작은 공간을 바꾸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집은 당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딸에 대한 마음을 대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왕십리 김종분>은 왕십리역 앞에서 작은 좌판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일상을 천천히 따르면서 그가 이곳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 간다. 생계를 위한 것이라기엔 가격 흥정에 날이 서지 않고, 무료해서 나온다기엔 준비의 과정이 번거롭고 길다. 이 의아함 사이에서 추측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의 상호로 불리는 친구들과의 식사와 커피, 그리고 수다일 것이다. 노년의 편안한 상호관계가 쉽게 이어지기 힘들기에 아마 이것만으로도 좌판의 의미는 거대할 것이다. 그러나 김종분 할머니가 약 30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살아간 하루 하루가 무엇을 의미했을지 조금 더 짐작할 수 있게 된다.

 

1991년 5월 충무로역의 대한극장 앞에서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학우를 위한 시위에 참가했던 한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이 변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이를 본 학생들은 분노하여 점점 모여들었었다. 그날, 적어도 원천 봉쇄까지는 하지 않았던 백골단은 퇴로까지 막아버렸고 이를 피해 나가려던 학생들은 거칠게 넘어지면서 몇 겹으로 쌓였다. 그 아래에서 압박으로 질식사했던 김귀정 열사는 김종분 할머니의 둘째 딸이었다. 26살의 대학생은, 그리고 누군가의 딸은 그렇게 숨이 멎었다. 이후 시신을 탈취하려던 경찰 등에 의해 기막힌 일을 겪으며 유족들은 황망할 새도 없었고, 대응하기 위해 미처 슬플 겨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는 김귀정 열사의 죽음 이후 김종분 할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김귀정 열사의 죽음 이후 터져 나왔던 성균관대 학생들의 목소리와 그 사이에서 함께하길 외치던 할머니의 모습, 얼토당토 않는 일을 겪어야 했던 귀정의 언니의 눈물 섞인 말 등은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왕십리 김종분>은 그 죽음이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이냐를 보여주는 것에 그리 오래 집중하지 않았다. 귀정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회고보다 영화가 주목한 것은 그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하루 하루였다. 그 중심에는 김종분 할머니가 있었고, 종종 할머니를 찾는 귀정의 친구가 있었고, 당시를 기억하며 종분 할머니를 반기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백기완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들이 김종분 할머니는 반기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처럼 영화가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먼저 간 이들의 삶이 비단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환기시킨다. 마치 박제가 된 것처럼,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설명되는 비장한 삶이 아닌 그를 그리워하는 누군가,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보내는 평범한 날들은 과거와 현재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유인 선수의 등장은 많은 뜻을 함의할 수 있다. 귀정을 ‘이모’라 부르는 귀정의 조카는 우리가 몇몇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수영 선수로 귀정의 삶이 먼 옛날, 폭력적이었다던 그때를 딱딱하게 설명해 놓은 책 속에서가 아닌 평범하게 살았던 누군가의 자매였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모의 무덤가에 뭐를 넣었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다며 할머니와 찬찬히 대화하는 장면은 그가 고정된 누군가로 기억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김종분 할머니가 소리 내어 우는 장면은 단 한 번, 딸의 무덤 앞에서 그것도 원경 속에서 뿐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모여 김치를 만들고 담소를 나눌 때, 종종 주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먹으러 갈 때, 또 여러 가족들을 만날 때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김종분 할머니가 무엇을 견디고 있었는지는 이 한 장면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도 금방 터져나올 눈물을 참으며 할머니는 민주화 운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당시를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나며 누구보다 열심히 현재를 살아간다. 김종분 할머니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에 놓인 것, 기억 자체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에 과거를 살게 하는 투사에게 적합한 결정일 것이다.

 

 

<왕십리 김종분>(2021)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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