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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한국드라마와 계급적 상상력 -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D.P.>를 중심으로
[김민정의 문화톡톡] 한국드라마와 계급적 상상력 -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D.P.>를 중심으로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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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세계관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5가지 공식이 있다. 첫째, 세계는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토대로 형성된다. 둘째, 그 세계는 영원불변의 시스템이다. 셋째, 갑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자 악의 축으로서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다. 넷째, 을은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는 슬프고 굴곡진 사연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다. 다섯째, 드라마 주인공은 반드시 을이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갑이 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을이 현실의 을로서 드라마의 갑이 된다.

2021년 최고의 화제작 <오징어 게임>은 K-드라마가 구축한 한국적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는 것, 그리고 이 극악무도한 데스 게임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부자 노인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진 자가 분노유발자로 맹활약한다는 것. 이러한 설정은 그동안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K-드라마 속 현실 세계와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 이주노동자, 탈북자, 신용불량자, 성 노동자, 여자, 노인 등 가진 자에 의해 하찮게 죽임을 당하는 다양한 유형의 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 유일한 생존자 ‘성기훈’(이정재 분)이 다시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복수를 꿈꾸는 결말까지 <오징어 게임>은 가장 전형적인 한국적 세계관과 한국적 캐릭터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중예술로서 <오징어 게임>의 차별점은 한국적 세계관 구축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K-드라마의 자가복제란 측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징어 게임>의 가치는 K-세계관 재현이 아닌 그것의 근원을 되짚을 수 있는 성찰의 지점을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세계관의 근원

<오징어 게임>에서 사용되는 게임은 모두 어린 시절 누구나 해봤을 법한 놀이다. 즉, 게임 참여자들이 하는 모든 데스 게임은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즉 그것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옛날 교과서에서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영희’라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영희. 바로 그 영희가 한때는 모든 ‘국민학생’들의 다정한 ‘깐부’였단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극 중 456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게임 세트장 또한 우리가 다니거나 다녔던 학교를 연상시킨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치열한 생존 게임. 그렇게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연대보다는 경쟁을 학습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내면화한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기훈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참가자이면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죽음을 딛고 혁명가의 삶을 선언한 ‘성기훈’은 성기훈이면서 성기훈이 아니다. 성기훈이란 이름의 ‘강새벽’이며 ‘알리’이며 ‘조상우’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우리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엄중한 진실을 <오징어 게임>은 시즌 2 제작 가능성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드라마 D.P. 포스터
드라마 D.P. 포스터

 

세계관의 절정

또 하나의 2021년 화제작이자 문제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배경이 되는 군대는 <오징어 게임>의 데스 게임장의 모태가 되는 학교와 상당히 유사하다. 군대와 학교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자기만의 논리와 시스템이 별도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공식적인 룰로서 강제성을 가진다. 가르침을 주고받고, 지시를 내리고 받는, 수직적인 관계 위에 형성된 폐쇄적인 사회. 구조적 서열화를 주요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 <D.P> 또한 한국적 세계관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또 한 편의 K-드라마다.

<오징어 게임>에서 ‘교육 현장’ 학교를 배경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던 세계의 순환적 생산력은 <D.P.>에서 군대 안 폭력의 대물림으로 재현된다. 하지만 <D.P.>에서 중요한 것은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안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병이 일병이 되고 일병이 상병이 되고, 상병이 병장이 되고… 이전 게임의 유일한 생존자 한 명이 게임 진행의 역할을 맡아 체제 유지하는 데 일조했던 <오징어 게임>과 달리, <D.P.>는 극 중 모든 등장인물이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면서 그 체제의 수호자가 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D.P.>는 데스 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현실 인식을 토양 삼아 무한 확장하는 K-세계관을 완성해낸다. 그렇게 약육강식의 생태계는 뿌리 깊은 자생력에 의해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D.P.>에는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처럼 피의 복수를 계획하는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견고한 세계의 빈틈을 노려 탈영하는 사람들이 가끔 존재할 뿐이다.

 

세계관의 균열

<D.P.>는 탈영병을 잡는 군무이탈 체포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과정은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기보단 애틋함과 공감, 그리고 연대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추적하는 것은 탈영병이 아니라 그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세계의 민낯이다. 군무이탈 체포조로 활동하는 두 주인공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견고한 세계에 균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큰 댐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안준호 일병’(정해인 분)은 선임병이 되고 나서 후임병들을 구타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시 강력하게 저항하며 물리적인 충돌도 불사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는 걸 보고 자란 그는 강자가 약자를 유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본래적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그의 작은 움직임은 번번이 제지당하고 때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 하지만 시스템의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기에 충분하다.

안준호 일병이 직접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또 한 명의 디피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은 한발 물러나 에두르는 방식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와해하고 당사자들 간의 긴장을 완화한다. 정면 돌파에 따른 피해 상황을 최소화하는 나름의 전략인 것인데,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방식은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중재자로서 상황이 악화하고 세계가 경직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무엇보다 한호열 상병은 K-세계관에서 보기 드물게 주체성을 승인받은 ‘갑’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한호열은 군대 안에서 상병이면서 군대 밖에서는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힘의 피라미드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한다. 그는 ‘사회적 을’ 출신 안준호 일병과 탈영병을 잡는 과정에서 갑과 을의 상호연대를 형성함으로써 위에서 시작되는 세계관 전복의 꿈을 꾸게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정서적 파문을 일으킨다.

군대를 다녀왔든 아니든 갑이든 을이든 드라마를 본 사람은 모두 함께 분노하지 않았던가. 한호열은 그동안 방관자로 머물러 있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책임감 넘치는 ‘시민’의 이름으로 소환하고, 갑과 을이기 전에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란 걸 뜨겁게 일깨워준다.

“호랑이 열정” 한호열.

 

 

글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2020) 드라마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논픽션<한현민의 블랙스웨그>(2018), 소설집 <홍보용 소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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