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내향적인 예술가의 서두르지 않는 삶 -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내향적인 예술가의 서두르지 않는 삶 -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울 레이터(1923~2013)는 1950년대 뉴욕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로 ‘컬러 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는 1952년부터 사망한 2013년까지 약 60년간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한 집에 살면서, 80대가 되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은둔의 사진가다. 감독 토마스 리치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Early Color」를 보고 이렇게 세련된 사진을 찍은 사울레이터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왜 유명해지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 놀라운 작품들이 또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울 레이터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뉴욕에 갔다고 한다.

2009년 토마스 리치는 사울 레이터를 만나, 다큐멘터리 ‘In No Great Hurry: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 촬영을 시작한다. 감독은 3년간 영화를 촬영하면서 사울의 삶에 대한 관점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2013년 완성되고, 사울은 그해 사망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뉴욕 링컨 센터 필름 소사이어티에서 상영되었다.1)

 

영화는 제목처럼 서두르지 않고 살아온 사울의 삶에 대한 관점을 13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그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와의 인터뷰를 담는다. 이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감독이 처음 사울의 사진집을 보았을 때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과 연결된다.


사울 레이터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릴 때(열세 살 즘),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받아서 촬영을 시작했고, 23살쯤, 추상 표현주의자 리차드 푸셋 다트를 만났고, 그를 통해 사진을 알게 됐다.1) 사울은 어떻게 먹고살지 대책이 없을 때, 혼자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에 대해 그런 희망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회고한다.

사울은 컬러 사진을 찍었는데, 컬러 사진을 시간 낭비라고, 버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울 자신이 컬러 사진을 재밌어했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사울, 그는 컬러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진을 좀 알면, 새로운 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사울에게 ‘컬러사진의 선구자’라는 칭송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울은 지나가는 사람과 대화하며 웃고, 이웃을 카메라에 담고, 계획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한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구경할 거리를 그는 주목한다. 그에게는 유명인보다 빗방울이 훨씬 흥미롭다. 세상에는 드러난 것도 있고 숨겨진 것도 있지만, 숨겨진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사울은 세상을 바라본다. 사진은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온갖 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는 믿음으로 사울은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며 살아왔다.

영화를 촬영하는 현재, 그는 유명해졌지만,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뒷짐을 지고 길을 걷는 그는, 80세를 넘기고,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한다.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늙은이가 따라오는데, 그게 자신이라고. 눈 쌓인 거리를 그는 따뜻한 시선과 미소로 바라본다.


왜 유명해지지 않았던 걸까?

“왜?” 사울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사울은 좋은 인화는 어떤 것인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 왜 그랬는지 질문받는 것을 싫어한다. 영화에서 감독이 사울에게 질문할 때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였을까. 사울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않으면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다. 사울은 지금도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추켜세운다고 혹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서는 그만의 자부심도 느껴진다. 그는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울은 1953년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언제나 젊은 이방인들(Always the Young Strangers)’에 소개되며 주목받았고, 그를 시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1958년 하퍼스 바자에서 패션 사진을 시작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울은 패션 사진을 찍는다고 자신을 우습게 여겼을 사람들의 속물근성을 오히려 꼬집는다. 자신은 생업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았고, 그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 작업과 의뢰 작업을 나눠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사울은 미루는 것을 좋아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성공은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자신이 아끼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진지하게 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울은 대부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리고 유명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자신이 지체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관심 없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많은 것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이렇게 놀라운 작품들이 또 있을까?

영화의 카메라는 사울의 작업실에서 인화하지 않은 슬라이드 필름들, 아무렇게나 쌓아둔 박스들, 네거티브 필름들, 사울 본인도 일일이 들춰봐야만 알 수 있는 지난 삶의 소품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쌓인 먼지와 커피향이 뒤섞인 공기도 느껴진다. 아마도 사울의 정돈되지 않은 이 작업실에는 놀라운 작품들이 누군가에게 발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사울은 그것을 ‘기분 좋은 혼란’이라고 말한다. 무질서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쾌적한 혼란 상태인 것이 만족스러울 때도 있다고.

 

사울은 화가였고, 사진가였다. 그러나 누군가 작품을 찾아주지 않으면, (카메라에 비치는 현재의 작업실처럼) 이렇게 많은 것이 쌓이게 된다고 그는 소탈하게 말한다. 정리하고 싶지만 버리거나 어딘가에 맡기기는 싫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잠 못 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물건을 정리하면 허전할까? 그것도 아니다. 새로운 것을 또 만들면 되니까. 그림을 그리고, 신기한 물건을 좋아하는 그는 금방 어지를 수 있는 능력자다. 그래서 그는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다. 죽어서 가져갈 수도 없고, 내 것이었지만 타인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 솜스의 흔적을 들춘다. 패션모델 솜스는 사울을 1960년 무렵 만났고, 2002년 사망했다.1) 사울은 인터뷰 사이사이 솜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물건을 팔아야 하면 아쉬워했던 솜스. 그녀는 사람들이 사울에게 관심 없을 때도 사울의 사진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훌륭하다고 믿고 인정했다. 그리고 솜스는 사울이 보낸 작은 봉투 하나마저도 과거의 물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울에게서 솜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우러난다.

 

내향적인 예술가를 향한  늦은 찬사

사울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처음부터 허락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 정도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자신의 예술이 이제 뒤늦게나마 합당한 찬사를 받게 된 것을 이 내향적인 예술가가 마다하지 않길 바란다'는 평론가의 말이 있을 만큼, 사울은 자기 홍보를 경멸하고, 본인에 대한 칭송을 꺼리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야박하다. 늙고, 추레하고, 갈팡질팡하고, 확신이 없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조금은 지적인 사람이라고 본인을 표현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숨겨진 것이 더 중요하다던 사울의 말이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내향적인 사울이 인정받고 싶어 했던 마음도 느껴진다. 귀찮아서 이사도 안 다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줬으면 좋겠고 자신이 별거 아니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가 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숨겨진 마음,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를 말할 때, 특히 사울을 대단하고 훌륭하게 생각했던 솜스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더 그렇다. 촬영본을 보는 사울의 마지막 미소가 마음에 남는다.

 

참조 : 1) Saul Leiter Foundation, https://www.saulleiterfoundation.org/chronology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