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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문화톡톡] <오자크>, 돌아갈 수 없는 길
[김경욱의 문화톡톡] <오자크>, 돌아갈 수 없는 길
  • 김경욱(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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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리스에서 제작한 드라마 <오자크>는 시즌3까지 방영되었고, 조만간 시즌4가 방영될 예정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마티 버드(제이슨 베이트먼)는 시카고의 유능한 재무 컨설턴트인데, 멕시코의 마약 조직 나바로 카르텔의 자금을 세탁하는 일을 하게 된다. 동료 브루스 리델이 카르텔의 돈을 몰래 횡령하다 들켜서 나바로 조직원에게 살해당하자, 마티 역시 죽을 위기에 놓인다. 마티는 살려만 주면 오자크(오자크 호수가 있는, 미주리주 중남부의 관광지)에 가서 조직의 돈세탁을 문제없이 다시 진행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마티가 오자크를 언급한 이유는 그곳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여행사의 홍보 전단지에서 봤던 지명을 다급하게 떠올린 것뿐이다. 그렇게 마티의 임기응변이 통하면서, 평온하게 살았던 마티 가족(아내 웬디(로라 리니), 딸 샬롯, 아들 조나)은 정신없이 시카고 생활을 청산하고 오자크로 떠난다. 오자크에 도착한 마티 가족은 산 위에서 각각 다른 감정 상태로 호수를 내려다본다. 마티와 웬디는 불안에 떨고, 샬롯은 느닷없는 시골 생활에 어처구니가 없다. 다만 13살 소년 조나만 괜찮다며 좋아한다. 이때 카메라는 점점 뒤로 물러나 마티 가족이 절벽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 절벽 아래 무성한 숲과 심연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이제 무슨 일이든 하게 된다.

 

마티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해내는 냉철한 인물이다. 브루스가 죽는 사건이 터지기 직전, 마티는 웬디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가족이 운명공동체가 되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웬디의 일탈을 불문에 부치고 동업자처럼 살아가기로 한다. 마티는 나바로 카르텔과 약속한 5억 달러의 돈을 세탁하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지만, 예상대로 굴러가는 일이 많지 않은 가운데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마티는 자신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거나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요인은 무엇이든 제거하는데, 웬디 또한 차츰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해간다. 그들은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손에 점점 더 많은 피를 묻히게 된다. 젊은 목사를 정당방위로 살해하고, 마티의 오른팔 격인 루스의 아버지를 나바로의 살인청부업자가 죽이도록 만든다. 마티 부부뿐만 아니라 그들과 관련된 인물들은 자신 또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모든 인물이 무시무시한 지옥도의 일부를 장식하는 가운데, 시즌3에서 웬디의 남동생 벤이 등장한다. 중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일하던 벤은 분노조절장애와 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사고를 치고 실직자가 되어 누나를 찾아온다. 벤은 약을 통해 어느 정도 증세를 통제해 왔지만, 루스와 연인관계가 되면서 약의 부작용으로 성관계를 하기 어렵게 되자 약을 끊어버린다.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벤은 누나 부부가 마약 카르텔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벤은 마티 가족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인 자선단체 파티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고 경찰서에 끌려간다. 나바로 카르텔의 변호사 헬렌은 벤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루스가 손을 써서 풀려나게 된다.

 

판단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에서, 벤은 점점 더 폭주하며 나바로 카르텔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려고 하고, 마티 가족의 위기는 점점 커진다. 웬디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그를 차에 태우고 도피처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결국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아마도 마티 부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것에 가족의 제거까지 있을 수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즌3의 9화, ‘돌아갈 수 없는 길’은 웬디가 벤의 죽음을 결정하는, 이 드라마의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이다.

밤중에 도착한 어느 마을의 레스토랑, 웬디는 벤과 마지막 식사를 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던 웬디는 곧 자신의 밀고로 카르텔의 살인청부업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벤에게 다소 교활하게 미래에 대해 묻는다. “5년 후에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니?” 자신의 운명을 눈치채지 못한 벤은 순진하게 대답한다. “정원 딸린 집에서 루스와 개를 키우고….” 웬디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뜨고 차를 몰고 떠나간다. 이때 카메라는 ‘버즈 아이뷰 쇼트’로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웬디의 차를 쫓아간다. 웬디는 식당 창문의 틀 안에, 자동차 안에 계속 갇힌 것처럼 보이는데, 반복되는 ‘버즈 아이뷰 쇼트’를 통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는 더욱 강화된다. 웬디가 마티에게 전화를 걸 때,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는 그는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웬디가 마티에게, “지금 우리 뭐 하는 거지?”라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1편(1972)과 2편(1974)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자신의 매형 카를로와 둘째 형 프레도를 차례로 살해하는 설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편에서, 마이클은 카를로가 큰형 소니의 암살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제거하게 된다. 2편에서. 마이클은 프레도가 능력이 모자라 마피아 사업에 문제를 일으키자 제거를 결심한다. 마이클의 명분은 모두 ‘가족을 지키고 패밀리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오자크>에서처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는 가족의 일부를 제거할 수도 있는 것이다. 1편과 2편에서, 카를로와 프레도는 마이클이 경쟁상대자들과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한꺼번에 처단하는 가운데 죽임을 당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가족까지 살해함으로써, 마피아의 대부로 등극하게 되지만 어두운 범죄의 수렁 속에 갇히면서 인간적으로는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프레도가 살해되는 장면 다음에 마이클은 거실 의자에 앉아 회상에 잠긴다. 아버지의 마피아 사업에 관여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마이클의 대학생 시절, 소니가 카를로를 집으로 데려와 가족들에게 소개한다. ‘대학생 샌님’, ‘아인슈타인 박사’로 불리던 마이클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진짜 미국인으로 살아가려고 희망했지만, 마피아 일에 개입하는 순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마티 역시 나바로 카르텔에 연루되는 순간, 다시는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오자크>와 <대부> 같은 드라마와 영화는 돈과 권력에는 인간의 목숨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돈과 권력은 가지면 좋지만, 무시무시한 대가가 따르게 된다는 교훈. 시즌3에서 웬디가 동생을 살해하는 지경까지 갔으니, 시즌4에서 마티 가족은 과연 어디까지 가게 될까? 궁금하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 ·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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