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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마을'맛-눈 그리고 술
[최양국의 문화톡톡] '마을'맛-눈 그리고 술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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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Maddy Park’s earliest memories of street food was when vendors set up a  portable stove outside her elementary school in Seoul, South Korea, to sell a candy for about a dime. It was part sweet treat, part game.”

- Why Is Everyone Talking About Dalgona Candy? NY Times (Oct.19, 2021) -

초등학교 시절 집으로 가는 길. 돼지저금통을 슬그머니 빠져나온 100원짜리 동전 몇 개. 길거리 음식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휴대용 화로 위 달고나에 멈춘다. 세대를 떠나 우리 모두의 달콤한 간식이기도 하고 게임이기도 했던 그것. 달고나가 맛으로 다가온다. 하늘을 먹는 도시의 빛 아래에서 우리는 맛을 먹는다. 마을-눈 그리고 술을 만나 맛 게임을 한다.

 

나’와 ‘너’/ 마을들은 / 추억맛 / 버무리며

보이지 않은 마을의 맛과 게임을 한다. 마을의 맛을 찾아가는 길에 ‘나’는 샤갈의 ‘마을’에 들른다. 

 

*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년), Marc Chagall, Google
*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년), Marc Chagall, Google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년)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년~1985년)이 고향을 떠나 파리에 유학한 이듬해에 피카소 등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그린 초기작이다. 유대인인 샤갈이 태어난 비텝스크(현재는 벨라루스 비텝스크 주도)는 소박한 유대교 예배당과 러시아의 목가적인 시골 풍경이 어우러지며, 《초록빛 바이올리니스트》(Green Violinist, 1924년) 같은 유대인들이 환상적이며 따뜻한 꿈을 품고 모여 살던 마을이다. 샤갈이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정든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과 파리에서 받은 많은 예술적 영감이 어우러져 표현된 동화와 같은 작품이다. 당시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년~1918년) 등 많은 문인과 교유하면서, 색채를 선과 도형의 종속적인 요소로 떨어뜨리며 도외시하는 기존의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을 꺼리게 된다. 색채를 그림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로 생각하며, 그 역동적인 힘을 화면 구성의 기본으로 하여 자신의 서사적 정서를 표현하려 한다. 이는 형태인 공간적 요소와 리듬인 시간적 요소에 대한 동시성의 확대를 추구하게 하여, 그림 속 화면 사이에 다양한 음악적인 어울림이 생기도록 한다. 그림과 음악. 샤갈은 오묘한 이중주를 화면폭에 넘치도록 표현하며, 색채의 시인과 같은 시각적 은유의 수준으로 그림을 연주한다. 마치 동요를 불러 주는 듯하다.

‘나’의 어린 시절 살았던 그의 ‘마을’은 그 신화적 내용, 삶의 경험과 함께 추억으로 소환되며, 화면을 두 개의 대각선으로 구분하고 대조한다. 서로 대조되는 대상을 맞세워 강조하거나 선명한 인상을 주며 감정을 이입하도록 한다. 이어서 두 개의 대각선은 네 개의 영역으로 분할된 4 상한도를 나타내며 대유의 세계로 진입한다. 상하 상한에는 문명화된 마을과 은방울 같은 나무의 열매로 형상화된 자연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좌우 상한에는 동물인 암소와 샤갈 자신으로 표현된 인간이 종교를 상징적으로 안으며 바라보고 있다. 문명의 진화를 간극으로 둔 마을과 자연, 의인화된 감정이입의 공감을 통한 동물과 인간이 서로 공존하며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태인 공간적 요소로써, 동물인 암소는 번식과 힘~젖 짜는 여인의 산양은 재물~중앙의 낫 들고 가는 농부는 노동~거꾸로 서 있는 여인과 집들은 다양한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시적 몽상화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리듬인 시간적 요소는 고향 마을의 추억에 대해, 샤갈 이전의 전통적 회화에서 강조하던 원근법이나 정교한 비례를 따르지 않고 원, 삼각형 그리고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성과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과 초록의 대비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나와 마을'은 평면을 거부하고 고향 마을에 대한 환상적 추억의 해조곡으로 입체화되며 그 맛을 드러낸다.

마을은 공간과 시간의 어우러짐으로 각자의 신화와 역사를 써간다. 그 신화와 역사는 마을맛을 남기며 변화해 간다. 《나와 마을》 속엔 샤갈과 우리의 ‘마을’이 공존한다. 그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맛은 무엇일까?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의 오미(五味)가 버무려진 맛. 새콤달콤, 알근달근, 시큼씁쓸.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그림 같은 소리”. 추억맛.

 

두 번째 / '마을'맛은 / 여인의 옷 / 벗는 소리

 샤갈의 마을에 눈이 온다. 3월에도 눈을 만난다. 김춘수(1922년~2004년)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Chagall's Village, 1969년)은 그의 7번째 시집인『타령조․기타』에 수록되어 있다. '무의미시'(대상에 대해 관념을 배제한 객관적 어조로 보기 위해, 언어 자체의 순수한 이미지 표현에만 몰두하는 시)를 추구한 그의 1960년대 작품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Chagall's Village, 1969년), 김춘수, Google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Chagall's Village, 1969년), 김춘수, Google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1969년), 김춘수 -

3월에 내리는 눈은 샤갈의 마을 사람들에게 시련일까 축복일까? 김옥순(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5년 3월)의 눈은 시련의 눈이다. “사나이가 눈을 맞으며 서 있는 수직적 이미지인 데 반하여 아낙은 부엌 아궁이에 앉아 불을 피우고, 사나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반면에 아낙은 땅의 열매를 거두고 조용히 집 안에서 불을 피운다. 사나이와 아낙의 호응이 느껴지는 영상이다. 아낙은 그해의 마지막이 될 3월에 내리는 눈에 대응하여 전혀 신경질적이지 않게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사나이가 눈을 맞고 아낙이 불을 지피는 상호 호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시는 자연에 대한 정면 대결 또는 아름다운 지혜로 대항하는 부부의 모습이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영상을 그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눈은 “3월에 내리는 눈은 겨울과 봄의 교점에서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나이의 정맥과 같이 생명의 활동을 자극하고 봄을 재촉한다. 흰색(눈), 정맥(파란색), 올리브 빛(녹색), 그리고 아궁이 불(붉은색)의 색채 대조를 통해 봄의 아름다움과 맑고 순수한 생명력을 강조한다.”라고 하며 축복으로 내린다. 3월에 내리는 눈은 현실이 아닌 시공간을 초월한 상징 속 눈이라 하더라도, 무의미시의 언어 의미를 향한 딜레마는 피할 수 없다. 3월의 눈은 가뭇없는 시련에 대한 처연한 헌사. 물오름달의 눈은 가없는 생명력에 대한 아름다운 찬사.

마을은 자연과 인간의 눈맞춤으로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 공동체는 또 다른 마을 맛을 남기며 순환해 간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속에서 우리의 ‘마을’이 살아난다.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맛은 무엇일까?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의 오미(五味)와 버무려진 추억맛과 어우러진 맛. 살포시 뽀드득 살금살금 뿌드득.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눈맛.

 

저녁놀 / 마을 술맛은 / 어머니의 / 손맛으로

샤갈의 마을에 눈이 그치며 나그네를 만난다. 박목월(1916년~1978년)의 《나그네》(1946년)는 그의 초기작으로, 1946년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낸 시집 『청록집』에 수록되어 있다.

 

* 나그네(1946년), 박목월, Google
* 나그네(1946년), 박목월, Google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나그네>(1946년), 박목월 -

박목월은 그의 자작시 해설(청록집, 을유문화사, 1975년)에서 “<나그네>의 주가 되는 이미지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이다. 나그네나, 구름이나, 달이나, 우리의 핏줄에 젖어 있는 친숙한 것들이다.~(중략)~. 구름에 달 가듯이 –의, 구름이 갈라진 틈서리로 건너가는 달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한시에서 흔히 달을 명경-맑은 거울에 비유하지만, 구름이 갈라진 틈서리의 짙푸른 밤하늘로 건너가는 달은 씻은 듯이 맑고 아름다운 것이다. 바람이라도 불어 흘러가는 구름발이 빨라지게 되면, 달은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가는 것이다. 그 황홀한 정경.”이라고 말한다.

강나루~구름 달~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저녁놀을 따라 걷는 나그네. 우리 전통의 서정인 처연한 아름다움에 대해 점(강나루~구름 달)으로 시작하여, 서러운 현실과 꿈에 대해 감정의 선(외줄기~남도 삼백리)으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는 침묵과 여백의 미를 통해 감정의 선에 대한 극복의 모습을 면(술 익는 마을~저녁놀)으로 보여 주며 점층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나그네는 또래 지식인인 윤동주(1917년~1945년)와 백석(1912년~1996년)과 같이, 현실과 괴리된 감정의 거리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나타낸 자괴감의 또 다른 표현은 아닌지?

마을은 현실과 감정의 거리를 도형으로 채우며 그들의 조형물을 색칠해 간다. 그 조형물은 삼원색의 보색으로 인해 아름다운 마을맛으로 진화해 간다. 《나그네》 속에서 우리의 ‘마을’이 성장한다. 마을이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맛은 무엇일까?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의 오미(五味)와 눈맛, 이어서 눈웃음치는 맛. 알근달근 떨떠름.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 술맛.

우리들 ‘마을’은 추억맛, 눈맛, 그리고 술맛으로 익어간다. 마을 들판 너머로 타는 해오름달의 저녁놀을 밟으며 잡은 손. 어머니의 손. '마을'맛중 으뜸은 '어머니의 손맛'. 추억맛, 눈맛, 그리고 술맛은 단어이지만 손맛은 문장으로 흘러온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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