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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일의 해법은 상식!
불가사의한 일의 해법은 상식!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4.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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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문명시대에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일은 한국 사회에도 가득하다.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유권자의 61,3%가 윤석열 후보를 뽑았고, 월 소득 600~700만원 유권자의 61.7%가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으며, 블루칼라의 53.9%가 엘리트계급 출신의 윤 후보, 화이트칼라의 54.5%가 소년공출신의 이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이번 대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한국리서치, 3월 10~15일. 1,104명 조사). 

전문가들은 20대 저소득층, 중년 고소득층, 이대남, 이대녀, ‘귀족 노동자’, 하청 노동자, 전업주부 등 여러 계층을 들먹이며 이번 선거의 특징을 해석해보지만, 그것만으로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비록 0.73%p 차이의 미세한 승리지만, 승자독식에 따라 승자는 그 권한을 100% 부여받는다. 기쁨의 향유는 승자의 권리이며, 회한의 반성은 패자의 의무다. 입만 열면, 서민과 공정과 정의를 강조해온 민주·진보·좌파세력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뒤흔든 기이한 투표현상에 통렬히 반성하기는커녕, 당권 경쟁에 몰두하는 건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저소득층과 블루칼라, 20대 청년들이 독재와 부패로 점철된 수구우파세력의 과거사를 모른 채, 단순히 정치적으로 보수화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당선인 윤석열의 말처럼, “인문학이 필요 없을”만큼 단순한 그들이 달콤한 혀 놀림에 넘어갔다고 여긴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의 말처럼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만든 것”도, 저소득층과 블루칼라, 20대 청년들에게서 등을 돌린 것도 집권세력이었다. 촛불혁명의 도도한 기세에 기대어 집권하고서도 구세력 청산에만 몰두한 채 자신들의 내로남불식 측근 인사, 독직, 부패, 추행 등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던 것이 윤석열의 ‘정치본능’과 수구야당의 ‘복수혈전’ 의식을 자극했고, 집권세력에 실망한 이들의 계급배반적인 투표에 뒤집히고 말았다고 봐야 한다. 

유감스럽지만, 오래전부터 서민 정당으로서의 기준을 헷갈린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존립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걸로 보인다. 민주당 정권의 최대 실책인 부동산 정책을 보면, 서민들에겐 온갖 대출규제를 통해 부동산 취득과 거래를 가로막은 청와대와 여당의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부동산법을 비웃듯 은밀하게 투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이제 국민의힘이 독재와 부패의 부끄러운 과거를 딛고 저소득층과 블루칼라, 20대 청년들이 기대고 싶은 정당이 돼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좌파 진보지식인들이 그동안 ‘부자당’이니, ‘강남당’이니, ‘수구꼴통당’이라며 조롱했던 국민의힘이 저소득층과 블루칼라, 20대 청년들의 정당이 된 반면, 이들을 주 타깃으로 삼아온 민주당이 중산층의 정당으로 바뀐 것은 집권 민주당의 불가사의한, 배반의 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

해방이후 도도히 흐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수구우파정권을 강력 지지해온 수구세력과 그 지지층이 자신들이 떠받들었던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욱이 윤석열이 자신을 키워주고 검찰수장까지 시켜준 대통령에 대들며 자신이 초토화시킨 수구우파세력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것도 불가사의하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지인만을 싹 뺀 채, 공정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온 ‘지엄한’ 검사출신의 대통령 당선인이 5년 내내 자신이 반기를 들며 대들었던 현 대통령을 ‘제왕적’이라고 운운하며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라며 청와대 이전을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선거 공약을 실행하려는 단호한 결단도 좋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과반수가 반대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성급히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제왕적’인 모습일 텐데, 제왕의 의미가 왜 이리 변질됐는지도 참 불가사의하다. 일부 언론의 믿거나 말거나 식의 보도이겠지만, 혹시라도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풍수설에 따른 것이라면 대단히 착오적이며, 주술이 어떻게 공공의 영역까지 파고들 수 있는 건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상식에 기반해야 한다. 승자와 패자는 모두 상식에 근거해 왜 승리했는지, 왜 패했는지를 살펴보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게 곧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해법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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