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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잘린 오리
목 잘린 오리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2.01.06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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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잇따른 유럽 회담은 실패로 돌아가고 백악관과 의회의 싸움은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파악한 금융시장은 이제 이들을 ‘목 잘린 오리’, 그들 자신이 만들어냈으나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한 권력의 노리개로 취급한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대선 관련 소식이 공론장과 미디어를 도배질하면서 말과 행동이 분리되는 비현실감을 조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후보자들에게 거의 기대할 것이 없다, 심지어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행보에- 거취, 결점, 연합세력, 주변 인물들, 인맥 등- 관심을 보인다. 여론은 투기펀드나 금융기관보다는 버락 오바마와 뉴트 깅리치, 니콜라 사르코지와 프랑수아 올랑 등의 대결에 더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BNP파리바 은행의 이익을 고려한 통화정책을 추진하는(1) 사르코지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영국을 유럽 내 ‘역외지역’(Offshore Zone)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역시 “2008년 이후부터 우리는 언제나 좀더 많은 이윤을 좇는 자본시장의 무한정한 탐욕에 직면해 있다. 이것이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나아가 나라 전체의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다”(2)라며 분노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위기로 황폐해지고 기진맥진해진 유럽 6개국을 그 ‘무한정한 탐욕’의 먹이로 제공한 당사자 아닌가? 독일 중앙은행(Bundesbank) 총재 옌스 바이트만은 “금리 인상의 규율적 효과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대출 비용이 올라가면 각국 정부들이 돈을 꾸려는 시도를 자제하게 될 것”(3)이기 때문이란다. 만약 각국이 대출 시도를 자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경기후퇴로 재정 균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더 많은 이윤’을 좇는 채권자들이 그들의 목을 조른다면, 유럽연합은 그 국가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제재 조처를 취할 것이다. 반면 민간은행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요구하는 신용을 거의 거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본에 선처를 베푸는 이들이 자본을 격렬히 비난하는 모순 속에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6일 캔자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이동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로비스트에게 돈을 지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중략) 세금 면제로 부자들이 이익을 보고 있다. 어떤 백만장자들은 자신이 번 것의 단 1%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그러고나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시장은 가능하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차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쓰러진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그가 정치를 장악한 돈의 힘을 무력화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지난 3년간 한 게 아무것도 없고, 재선에 성공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야말로 현재 우리가 어떤 체제에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유하자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표류하는 조각배 안에서 이미 자격을 상실한 선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형국이다.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최근 BNP파리바 은행장에서 물러난 미셸 페브로는 지난 몇 달 동안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경제위기에 심각하게 연루된 자신의 은행을 위해 프랑스 정부의 금융부문 지원과 국가 부채 관련 정책 결정에 개입했다. ‘미셸 페브로, 엘리제궁을 드나드는 은행가’, <르몽드>, 2011년 12월2일자 참조.
(2) <Les Echos>, 파리, 2011년 12월 16~17일.
(3) <The New York Times>, 2011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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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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