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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 남성 정치를 바꿔라
여성할당제, 남성 정치를 바꿔라
  • 유정미
  • 승인 2012.03.13 14: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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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4·11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 공천을 진행 중이다. 공천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 전략공천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다. 민주통합당이 지역구에 15%를 공천하기로 하자 지난 2월 12일 민주통합당 남성 의원 46명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발표됐다. 성명서는 여성 의무공천이 공정한 경선 기회를 가로막는다고 지적하며, 여성 전략공천을 실행하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무소속 출마도 불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성 후보와 맞붙은 지역구의 남성 후보들은 여성 의무공천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으며, 공천 심사에 탈락한 경우 심사 결과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여성 의원들은 그들대로 공천심사위가 남성들의 반발이나 권위에 좌우되지 말고 공정하게 심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여성할당제는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나온 제도다. 무엇보다 기존 정치 구조에서 여성이 대의기구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취한 조처다. 하지만 논쟁 속에서 여성할당제는 정의를 실현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로 이야기된다. 또한 할당제는 '잘난' 여성들의 문제로 여기기도 한다. 공천 심사는 곧 마무리될 것이고, 총선이 지나면 할당제 논쟁은 다음 선거까지 다시 잊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쯤 같은 논쟁이 반복될 수도 있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반복된 비판과 대응을 넘어서 할당제의 정치성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

<반발>, 2012-강창광

'홀아비 국회', '외눈퉁이 국회'의 역사

여성들이 현실 대의제 정치의 남성중심성을 지적하며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947년 제헌의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뒤 조선이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보통선거법을 제정할 때, 과도입법의원으로 참여한 여성 4명은 266석의 제헌의회 의석 중 22석은 여성에게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부녀국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데, 이를 들여다보면 여권투표(1)를 추동하는 것이었다. 부녀국은 '여성 대의원 선출은 지상명령, 정권 야욕의 남성을 믿을 수 없다', '나라를 세우는 한 표, 여성은 여성에게' 등과 같은 구호를 만들어냈고, '여자 대의원 입후보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야 하고, '정당단체를 가리지 말고 여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사람에게 투표'하며, '축첩자에게는 절대로 투표하지 않는다' 등의 투표 지침을 퍼뜨렸다.

제헌의회 선거에는 총 951명이 입후보한 가운데 여성은 22명인 2.3%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입후보 여성 22명이 전원 낙선했다. 나중에 임영신이 보궐선거로 당선돼 1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단 1명이었다. 박순천은 여성이 1명도 당선되지 않은 제헌국회를 가리켜 "홀아비 국회"라고 비판했고, 고황경은 "한 눈을 잃어버린 외눈퉁이 국회"로 칭했다.(2)

홀아비·외눈퉁이 국회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됐다. 1대에서 15대 국회까지 지역구에서 선출된 여성 의원 수는 대부분 1명 또는 2명이었다. 2000년에 열린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의원 수가 5명으로 증가했는데, 1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1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선출직 여성 의원이 5명이 되기까지 50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2008년 치른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에 선출된 여성 의원 수가 14명이 되었지만 선출직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5.7%에 불과하고, 비례대표를 포함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3.7%다.

1명에서 5명으로 늘기까지 53년

18대 국회에서는 여성이 지역구에서 14명, 비례대표에서 27명 당선돼 여성 의원이 13.7%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성 의원은 86.3%로, 국회는 '남초' 영역이다. 하지만 여성 의원 수가 이 정도로라도 늘어난 데는 여성할당제의 공이 크다. 여성운동단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여성할당제를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에 반응해서 1992년 치른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정당은 여성 후보자를 겨냥한 여러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어떤 후보는 '여성 유권자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팸플릿을 제작했고, '어머니가 있기에 지역이 있다'며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지역구에서 선출된 여성은 단 1명에 불과했다. 2000년에 비례대표 30% 여성 할당이 법제화됐지만, 정당들이 여성 후보를 뒤쪽 번호에 배치해 30%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2002년에는 지퍼식 교호순번제로 50% 여성 할당이 비례대표에 반영되도록 법을 개정했고, 2004년에는 지역구 여성 후보 30% 추천 권고를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17대 국회부터는 비례대표에서 선출되는 여성 의원 수가 30명 가까이 되면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0%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권고 조항인 지역구 30% 할당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는데,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6.1%, 한나라당은 7.3%의 여성 후보를 공천했을 뿐이다. 그 결과, 18대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13.7%)은 17대 국회 때의 비율(13.0%)과 거의 비슷했다. 여성 의원 수가 늘어난 단계마다 할당제 도입과 제도 개선이 있었던 반면, 제도 개선이 없을 때는 여성 의원 수가 제자리에 머무는 현상이 나타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구 여성 후보 의무공천은 이런 답보 상태를 배경으로 한다.

할당제가 아니면 여성의 정치 참여가 답보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여러 번에 걸쳐서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다시 강제적 조처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해법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런 해법은 할당제가 추진되는 동안 남성중심적 정치문화, 정당구조, 선거제도 등에 대한 개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할당제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지적하지만, 심각한 것은 할당제가 추진되는 동안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정치구조의 개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남성 정치인들이 정작 책임은 나누지 않은 채, 성찰도 없이 스스로를 평가자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의무 적용, 그 이상에 대한 응시

할당제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후보로 선출할 만한 여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여성 15% 의무공천을 약속해서 37명의 여성을 공천하기로 한 민주통합당은, 공천을 신청한 여성이 49명이어서 신청자 대다수가 공천을 받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은 할당제를 취약하고 무리한 전략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가 1990년대 이후 주요 쟁점이었는데도 정당들이 여성 정치인 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성 정치인을 양성하려는 노력과 성과가 없는 상태라면 할당제는 무리한 전략으로 비치게 되고, 이런 전략은 할당제의 정당성을 취약하게 만든다.

할당제 논의가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현실의 반복이다. 이제는 이름난 여성 정치인이 있고, 각 당의 대표도 모두 여성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중앙의 계파 정치나 지역 조직, 인맥 중심 정치에 쉽게 끼어들지 못한다. 지금 할당제 논의에서 문제는 할당제 의무 적용의 확대를 넘어서, 강제적 적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구조의 지체 현상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답보 상태에 있는 지금, 지역구 후보 공천에서 여성을 의무공천하기로 한 것은 전향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지체돼 있는 것은 정치구조인데 오히려 할당제가 낡은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정당이 약속했던 여성 공천 확대를 실행시키는 것만큼이나, 할당제의 논리 구조와 할당제가 담아내는 개혁의 외연을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할당제에서 항상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것은 '여성'이다. 여성의 과소대표, 여성의 차이, 여성의 자격, 여성 할당제의 정당성 등 여성이 쟁점의 대상이 된다. 반면 '남성'이나 '정치문화', '정당구조' 등은 논의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즉, 할당제의 논리 구도는 여성을 괄호 안에 넣고 여성이 어떻게 기존 정치 제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모아왔다. 이런 논리 구도는 여성을 둘러싼 조건이 어떻게 불공정한지를 문제 삼기보다는, 여성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또 남성중심적 정치문화에서 남성의 역사적 무임승차는 논외로 하고 여성 정치인의 무임승차를 쟁점으로 만든다.

괄호를 열고 문제화하기

할당제가 문제가 되면서 프랑스의 남녀동수법이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 헌법 개정을 통해, 정당이 대표자 선출을 위한 후보 공천을 할 때 남녀동수로 공천하도록 명문화했다. 15% 의무공천도 말이 많은 한국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50% 여성 공천은 유용하게 참조할 만하다. 하지만 조앤 스콧에 따르면, 프랑스의 남녀동수운동이 보여주는 것은 50%라는 숫자를 넘어 보편주의의 위기와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도전이다.(3) 공정함과 합리성이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된 현실에서 여성은 불공정한 공정함을 수용하거나 예외와 편법으로 존재하게 된다. 프랑스의 남녀동수운동은 여성들이 공화주의가 전제하는 추상적 개인이 되기 위해 오랜 시도와 좌절을 거쳐온 역설적 과정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남녀동수운동이 공화주의의 '추상적 개인'을 성차를 지닌 존재로 재개념화했다는 것이다.

지금 할당제가 직면한 과제는 선출직에서 여성 의무공천 확대 이상의 것이다. 여성을 예외와 편법으로 두는 괄호를 열고, 정치문화·정당구조·선거제도 등을 개혁하는 방향을 할당제가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에 대한 궁리가 요청된다. 이는 여성에게 향하던 질문이 남성과 정치구조를 향해 어떻게 열리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글•유정미
‘적극적 조치 정책 제도화 과정 담론 분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와 젠더>(2010), <국가, 젠더, 예산>(2011)을 공동 집필했고, <Parité!: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2009)를 공동 번역했다.

(1) 여권투표(Feminist Vote)는 여성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투표를 하고, 공약을 평가하는 투표 행위를 지칭한다.
(2) 제헌의회 국회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한 여성 대의원 제도 요구, 선거 캠페인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현주,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여성정책>(한국학술정보·2009)를 참조할 것.
(3) 프랑스의 남녀동수운동과 법 제정 과정에 대한 조앤 스콧의 평가와 해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Parité!: 성적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2009)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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