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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과 EU의 미래
프랑스 대선과 EU의 미래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2.04.13 17: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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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프랑스 대선

7명의 사망자를 낸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총격 사건으로 프랑스 대선전에 쏠린 눈길이 최대 이슈였던 경제정책에서 잠시 멀어졌다. 오는 5월 6일 대선 뒤 몇 주 지나지 않아 신임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무엇보다 독일 우파가 내놓은 더 강력한 긴축정책을 담은 유럽 협약을 수용할지, 아니면 재협상할지 결정해야 한다. 신임 대통령의 선택에 프랑스의 사회·경제 정책 방향이 달려 있고, '유럽 건설' 방향도 결정될 것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2007년부터 논의된 중대 사안들에 대한 해결 없이 정권만 바뀌는 것이 될까? 정권이 교체되면 프랑스 국민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두드러진 단점, 즉 넓은 오지랖, 사생활 노출증, 경솔한 언사, 부유층에 대한 숨김없는 애정만큼이나 눈에 잘 띄는 실업자, 이민자, 이슬람교도, 공무원들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 등을 차치하고라도 지난 5년은 국민주권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기였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국민투표 뒤, 의회에 선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자들은 '유럽 건설'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묵살했다. 오늘날 유럽 건설의 개념이 안고 있는 오류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당시 공론화된 논의는 현 대선 선거운동보다 훨씬 질적으로 월등했고, 곧 이은 국민투표 결과는 단호했다.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으로 당시 정치적 자유의지론 부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발표만 꼬리를 물었다. 좌파 후보 전체가 은행을 비난하는 가운데, 경제부 장관 프랑수아 바르왕은 "금융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마치 '나는 추위는 절대 반대야'라든지, '나는 비를 절대 반대해', '안개는 절대 안 돼'라는 말과 별다르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말이다"라고 우겨댔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 "스탠더드앤드푸어스사에 공약을 보내라"며 한술 더 떴다.(1)

오만하기 짝이 없는 독일 우파가 내세우는 '시장에 순응하는 민주주의' 앞에 프랑스 정치 지도층은 굴복해버렸고, 이는 곧 국민주권의 후퇴를 의미했다. 이를 뒤엎는 것이 이번 대선의 쟁점이며, 유럽 차원의 논의를 위한 문안을 수립하는 것이 주요 사안이다. 2년 전부터 혹독하게 실시된 긴축 조치는 늘어가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개선조차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좌파가 이런 재정적 압박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약에서 누락한다면 이는 단번에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의 정치적 여건은 이런 문제제기가 쉽사리 수용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발행기관들이 싼값에 통화를 쏟아붓고, 이를 민간은행들이 국가에 비싼 값에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간신히 제어되고 있다. 그나마 이런 유예도 유럽 협약이 경솔하게 결정해버린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등에 업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변덕에 따라 언제 바뀔지 모른다.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독일과 프랑스가 내놓은 요구에 순응해 긴축정책을 강화하고 비준 중에 있는 유로존 안정, 협력 및 거버넌스 관련 협약(TSCG)을 통해 이를 어기는 국가에 대한 엄격한 제재 메커니즘 수립에 합의했다.

정부예산 적자 3분의 1의 감축을 약속했지만, 실업률이 22.8%에 달하는 스페인은 그리스에 내려진 것 같은 징계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포르투갈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 부채 금리가 지난 3월 14%를 기록했고, 2011년 경제성장률 -3%라는 침체에 빠졌다. 대량 실업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긴축정책을 요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1930년대 프랑스의 경제·사회 정책이 그러했다. 당시 사회당은 "디플레이션은 경제위기를 악화하고 생산 감소를 유발함에 따라 세수입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2)

이런 정책의 우둔함에 실망하는 이들은 그 정책이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믿는 사람들뿐이다. 국가를 손에 쥐고 금리로 먹고사는 소수 지배 계층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만약 금융을 인간화한다면 바로 이들이 아닐까.(3)

적이 누구인지 끄집어낸다면 적에 맞서기 위해 결집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누가 됐든 정권이 교체될 때 신임 대통령의 최대 선결 과제는 유로존 안정, TSCG와 기타 긴축 조치에 대한 재검토일 것이다. 이의 성패 여부에 따라 교육, 공공서비스, 조세정의, 고용과 같은 문제도 결정될 것이다. 올랑드는 자신이 옹호하는 유럽연대주의 메커니즘과 그가 거부하는 자유주의식 충격요법을 별도의 것으로 분리하려 한다. 그는 문제의 협약에 대한 '재협상'을 벌이고, 유럽 차원의 산업 프로젝트에 대해 '경제성장과 고용에 관련한 내용'을 추가하기를 바란다.

신임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이와 달리, 좌파전선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은 "이 협약의 테두리 내에서는 어떤 좌파 정책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멜랑숑이 유로존 안정, TSCG, 유럽 안정화 메커니즘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 안정화 메커니즘은 회원국이 재정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예산 균형회복을 위한 긴축정책을 사전에 수용한다는 조건으로 금융지원에 합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녹색당과 좌파 후보들도 '공공부채에 대한 유럽 감사'를 공약으로 거는 한편, 지난 20년간의 세금 인하와 채권자에게 지급한 이자를 현 상황까지 치닫게 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공공부채의 부당함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독일을 필두로 하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재협상에 반대하고 있어 이런 생각이 통할 리 없다. 또한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가 바람직한 예산 운영을 약속하지 않는 한, 이 국가들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 지원을 할리 만무하다. 여기서 '바람직한 운영'이란 추가로 민영화를 실시하고 노후연금·실업수당·최소임금 등 중요 복지제도의 축소 운영을 의미한다. 지난 2월 24일 ECB 총재 마리오 드라히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국민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긴축정책이란 정부 지출을 줄이되, 세금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세금 감면을 언급한 대선 후보는 아무도 없거니와, 심지어 사르코지조차 이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말인즉, 좌파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면 신임 대통령은 대다수가 보수파인 유럽 정부들의 반대뿐 아니라 ECB와 더불어 조제 마누엘 바호주가 이끄는 유럽집행위원회의 반대까지 직면할 것이다. 영국·폴란드·이탈리아·독일 총리는 프랑스 대선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한 후보가 현 대통령보다 훨씬 비협조적일 것이라 판단하고 면담마저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것이다.

EU 긴축재정에 좌파도 속수무책

얀 케이스 드 예거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재협상에 대한 그 어떤 긍정적 고려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랑드가 추가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면, 노동시장 개혁이든 서비스 부문 자유화든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즉 현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보다 한층 더 자유주의적 정책을 취하는 대통령이라면, 좌파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네덜란드의 지지는 변함없다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책 방향에는 일말의 모호함조차 없다. 메르켈 총리는 이미 프랑스 우파와의 회담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프랑스 사회당보다 덜 적극적인 모습이다. 독일 사회당 당수 지그마르 가브리엘은 프랑스 사회당에 연대감을 표명했으나, 당의 또 다른 지도자이자 18개월 뒤 총리직 당선을 노리는 피어 스타인브룩은 올랑드의 재협상 논의가 "어리석을 만큼 순진하다"고 봤다. 그는 "올랑드 후보도 일단 당선되면 말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4)

그의 이 말을 허투루 들을 수만은 없다. 이미 1997년 프랑스 사회당은 의회선거 공약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체결된 유럽 안정화 협약에 대한 재협상을 벌이겠다고 했다. 당시 리오넬 조스팽은 "독일 정부에 터무니없는 양보를 했다"는 말까지 했지만, 일단 선거에서 승리한 뒤 프랑스 사회당이 얻어낸 결과는 '안정화 협약'이라는 명칭에 '성장'이라는 용어 하나를 덧붙인 것 말고는 없다.

올랑드 후보의 선거운동을 책임지고 있는 피에르 모스코비치 의원은 사회당의 이런 은근슬쩍 얼버무리는 태도에 대해 2003년 핑계를 덧붙였다. 그의 말을 되새기면, 당장 5월부터 벌어질 상황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 협약은 협상 자체가 잘못됐지만, 이미 우리가 정권을 잡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무수한 오류를 담고 있을뿐더러, 사회정책 측면이 취약하다. (중략) 새 정부는 협약 승인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었고, (중략) 최소한 협상을 다시 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의 최후 선택은 아니었다(당시 모스코비치는 유럽현안담당 장관이었다). 당시는 시라크 대통령이 집권했고, 우리는 세 가지 위협에 봉착해 있었다. 첫째, 프랑스가 독일과 거리를 두려 할 때 프랑스에는 없어서는 안 될 우방국인 독일과의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었다. 둘째, 금융시장 위기 속에 시장은 해당 협약 체결을 희망했다. 마지막으로 동거 정부로 인한 위기였다. 리오넬 조스팽은 융통성 있는 일보 후퇴를 통해 이보 전진을 꾀하려고 관점을 바꿨는데, 이는 합당한 선택이었다. 암스테르담 협약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경제성장과 고용안정 분야에 대한 EU 각료 이사회의 첫 결의를 얻어냈으니까."(5)

좌파가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가정 아래, 앞서 묘사된 상황과 비교할 때 고려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프랑스 정치제도 내 행정부의 권력이 15년 전처럼 (좌우에 의해) 공유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며, 1997년 당시 중도좌파 쪽에 살짝 기울어 있던 유럽의 정치적 균형이 현재는 우파 쪽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정부 같은 보수파 정부조차 독일 정치인들이 그에게 제안하는 장기적인 긴축 조치에 우려를 표시할 정도다. 지난 3월 2일 그는 유럽 긴축예산 정책이라는 구속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주권에 따른 결정'을 내렸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영국·폴란드를 위시한 10여 개국이 프랑스와 독일 커플이 공조해 고안해낸 경제정책 방향 수정을 요구했다. 올랑드 후보는 이를 보며 흡족해할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유럽 내 역학관계를 뒤바꿀 수 있기를 바라지만 유럽집행위원회와 ECB,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다툼이나 힘겨루기는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만인가

단지 자유주의 노선 국가들이 바라는 정책 수정이란 그가 희망하는 방향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제성장'이란 용어를 일각에서는 세금 인하, 사회적·환경적 규제 완화를 통한 대처리즘식 공급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교육·연구·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를 늘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모호함이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만간 멜랑숑 후보와 다른 좌파 후보들이 주장하는 '유럽의 반항'을 고려하거나, 아니면 희망을 버리고 시류에 편승해야 할 것이다.

조세정의같이 두 후보가 판이한 노선을 띠는 사안을 넘어, 사르코지 대통령과 올랑드 후보는 마스트리흐트에서 리스본 협약에 이르는 유럽 협약들을 똑같이 지지해왔다. 두 후보 모두 201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2016·2017년 0%라는 엄격한 공공부채 감소 목표를 지지했다. 둘은 앞다퉈 보호주의를 배척하며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지휘권을 프랑스가 재인수하는 것을 두고 프랑스 사회당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두 후보가 지지하는 외교·안보 정책도 유사하다.

지금이야말로 앞서 말한 모든 상황과 결별해야 할 때다.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좌파 정권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 선거운동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단순히 대통령 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듯하다.

*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각각 RTL, 2012년 1월 22일, <르 주르날 뒤 디망슈>(Le Journal du dimanche), 파리, 2012년 1월 15일.
(2) 1933년 사회당 그룹의 예산 관련 법률안 서문.
(3) ‘은행들의 정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
(4) <AFP>, 2012년 2월 15일.
(5) Pierre Moscovici, <1년 후>, 플라마리옹, 파리, pp.90∼9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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