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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왜 투표를 하는가
개인은 왜 투표를 하는가
  • 이인우
  • 승인 2012.04.1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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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르디플로 읽기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출근해 이 글을 씁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가 독자 여러분의 손에 들어갈 즈음엔 언론들의 선거 결과 분석도 끝나 있을 테지요? 여야의 득표 정도에 따라 대선의 향배를 점쳐볼 수 있고, 진보세력의 의석수에 따라 이번 총선이 지닌 역사적 무게는 달라질 것입니다.

저에겐 이번 선거가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그 이유가 좀 싱겁습니다. 돌이켜봤더니 이번이 9번째 총선 투표인데, 2008년을 빼고는 내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수십 년을 언론에 종사한 자로서 한심스럽다는 자탄도 일고, 한편으론 개인적 이해보다는 역사의 발전과 변화를 갈구한 데 따른 '의도된 망각'이라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지만,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굳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역사·진보·애국 따위에 투표 행위의 목적을 둔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는 개인에 대한 염원, 그로 인해 투사되는 나의 이해… 그런 것이 없었을 테니까요. 아무튼 50살을 넘겨 맞이한 선거에서야 비로소 저는 '나는 왜 투표를 하는 걸까?'라는 질문에 봉착합니다. 이제는 역사나 이념에 기대지 않고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답은 지난 50여 년의 제 삶 속에 있을까요, 아니면 남은 인생의 시간 속에 예비돼 있을까요?

이런 상념이 비롯된 건 이번호에 실린 프랑스 시골마을의 선거 풍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르포에선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 정치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도대체 인간에게 정치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갖게 합니다. 요즘 프랑스인들의 관심사도 선거인가 봅니다. 독일 우파에 밀려 우왕좌왕하는 프랑스 정치판(2, 6∼7면), 전후 좌파들의 전성시대에 대한 향수에 빠져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획득하지 못하는 진보 진영에 담대한 비전을 요구하는 목소리(1, 3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4월호에는 읽을거리, 생각할 거리를 많이 배치했습니다. 일본 언론인이 본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의 전략적 측면은 우리의 시야를 동아시아 전체로 넓혀줍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한-미 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 군사전략상 제주도가 세계적 전략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제주도가 주변 국가의 타격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주강현 제주대 교수의 글 '이어도를 내버려둬라'도 꼭 일독을 권합니다(25면). 최근 일부 보수언론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강변하기 위해 이어도 영유권 주장을 제기하지만, 주 교수의 이어도에 관한 역사·문화적 보고는 '평화의 섬', '이상향의 섬' 이어도가 어떻게 애국이나 국익의 이름으로 배제와 대결의 상징으로 전화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집 '공부란 무엇인가'도 주목해주기 바랍니다(1, 28∼31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고, 또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유수한 학자들이 에세이를 썼습니다. 필자들의 진심 어린 고백과 성찰을 읽고 있노라면 공부란 자기를 수양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평생을 바쳐서 하는 수행이자 세계와의 대화란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4월호도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질정을 부탁드리며 새 편집장으로서 첫인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수준 높은 진보 담론을 펼치는 <르 디플로>의 편집 책임을 맡게 돼 영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르 디플로>가 진보 담론을 주축으로 좌우 양면에서 좀더 넓은 지평을 아우르는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많은 지도와 조언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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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인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editor@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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