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테러 1년
2011년 7월 22일의 학살극은 노르웨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정치·사회적 조화를 이뤘다고 자부하던 나라인 만큼 충격은 더 컸다.노르웨이는 투명성과 공존, 공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합의를 통해 운영되는 사회였다.추리소설 작가 요 네스뵈의 말을 빌리면, 노르웨이 사회의 논쟁은 "좌파와 우파가 합의할 수 있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데" 집중됐다.(1) 이처럼 분쟁 조정 능력을 갖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콤플렉스에 가득 찬 극우파들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이들을 단순히 민족주의자 비드쿤 크비슬링- 나치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 기간 친나치 정부 수반- 의 후예로 정의할 수는 없다.이런 현상은 비단 노르웨이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치적 영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대중은 내면적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이나 대중문화를 통해 이런 경향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1991~93년 노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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