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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국가, 자본주의
올림픽, 국가, 자본주의
  • 이인우
  • 승인 2012.08.1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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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르 디플로’ 읽기

한국은 왜 올림픽에 강할까? 올림픽이 국가 경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높은 국가주의적 경향은 한국이란 분단국의 역사적 특징이다. 이제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다시 '스포츠국가주의'로 회귀하고 있지만, 40년 가까이 갈고닦은 한국의 올림픽 메달 따기 시스템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 종목의 독보적인 금메달리스트일 것이다. 선발주자들은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이 크고, 후발 국가들은 아직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국가주의에서 한국의 강점은, 먼저 국가와 민간(기업) 간 상호 협력의 역사성이다. 사회주의권이 사라진 지금 한국만큼 오랫동안 이런 노하우를 축적하고 유지해온 나라는 거의 없다. 두 번째는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동기부여 방식이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순차적으로 달성한 유일한 신생 독립국가다. 이런 조건은 한국인에게 강한 평등주의적 계층의식과 보상주의를 심어줬다. '하면 된다'는 식의 성공에 대한 자기암시, '땀의 대가는 정직하다'는 식의 주입된 보상 심리, 이를 향한 선수 자신과 가족의 계층 향상과 안정된 삶에 대한 열망이 합쳐져 더 이상 강력할 수 없는 동기유발 요인을 발생시켰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연금제도를 비롯한 각종 포상책과 그들의 '그 후 삶'을 생각해보라. 특히 남자 프로(및 예정) 선수의 경우 2년간 병역의무 면제는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다. 세 번째는 사회 전반에 일상화된 경쟁 문화와 결과지상주의 문화가 아닌가 한다. 대체로 고도성장기가 끝나면 스포츠에서 '헝그리 정신'도 어느 정도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만큼은 아직도 무언가 강력한 동기가 작동하는 듯하다. 아마 그것은 일상화된 경쟁과 일등주의에 매몰된 사회 분위기가 스포츠계의 국가주의적 목표지상주의를 정당화하고, 그에 따른 보상 체계를 유지하는 기제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런 3박자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동아시아의 인구 5천만 국가가 유수한 스포츠 선진국들과 중국 같은 거대 국가를 상대로 수십 년 동안 징그러울 정도로 억척스러운 승부를 엮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최근 몇 차례의 올림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국처럼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스포츠의 국가주의화·자본주의화 경향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촌에 번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육상선수,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격투기 선수들은 어딘지 1980~90년대 한국 선수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추세라면 메달 획득 국가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는 올림픽위원회의 방향이며, 글로벌 경제주의자들의 방향일 것이다. 올림픽 메달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호재이자 그 자체로 시장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에 메달을 향한 열기는 뜨거웠지만 경기장 밖의 세계는 우울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전세계 주식시장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세계가 올림픽처럼 룰의 지배 아래 정당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8월호에는 이런 의문을 던지는 기사가 많다. '경제사상의 전쟁'에서 '글로벌 계급이란 신화'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분석한 '가라앉지 않는 자유주의 군함'이 가장 진보적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라는 사실부터 흥미롭다. 세계적인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스페인 경제위기의 역사적 뿌리를 통렬하게 파헤치고 있다. 도대체 스페인 지배층들은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약탈해먹었는가? 여기에 폭발 직전 같은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다룬 기사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합치면 바로 한국이란 나라의 얼굴이 떠오른다. 10여 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주렁주렁 목에 건 '대한국민씨'의 기묘한 표정의 긍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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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 편집장 editor@ilemonde.com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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