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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카상 인터뷰 "단일통화체제는 자유주의적 독재"
베르나르 카상 인터뷰 "단일통화체제는 자유주의적 독재"
  • 성일권
  • 승인 2012.10.12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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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해체와 권역별 공동통화 구축 바람직"

 

<르 디플로> 한국판의 성일권 발행인(왼쪽)과 베르나르 카상(오른쪽) .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집권은 사회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세계 금융위기 및 사르코지에 대한 반대표가 집결된 것일 뿐이다. 유로존의 위기 상황에서 올랑드가 내세운 공약은 우파와 별반 다름없는 긴축재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결국 위기 상황이 악화돼 올랑드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꼴이 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역시) 현재의 집권 대통령에 대한 단순한 거부로 투표한다는 것은 사실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다. 그런 단순한 투표가 아니라, 내용이 있는 진정한 투표를 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의 전 편집장이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선구자인 베르나르 카상(75)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는 “경기침체기의 재정긴축은 위기를 심화시킨다”며 “자유주의적 독재체제나 다름없는 유로화 단일통화체제가 국가 간 경제적 불균형을 가져왔고, 종국에는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범지구적 반세계화 운동을 주도하는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아탁)의 초대 의장과 세계사회포럼(WSF)의 지도위원장을 지낸 카상 교수는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를 비롯한 6개 국내 진보단체가 지난 9월17∼21일 서울 서교호텔과 연세대학교에서 ‘민중주권’을 주제로 연 제4회 코리아국제포럼의 초청연사로 방한했다. <르 디플로> 한국판 성일권 발행인과 박지현 편집위원이 카상 교수를 만나 유럽 경제위기와 프랑스 대선,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방문은 몇 번째이고,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면.

처음 한국에 온 것이 1982년이었다. 가장 최근의 방문은 지난해 3차 한국사회포럼 참석차였다. 그간 총 4번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기껏 5∼6일을 머무르기 때문에 한국이나 한국인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에 대해 놀라운 점은 ‘역동성’이다. 내·외부적으로 한국은 역동적이다. 한국 인구는 5천만 명 정도고 프랑스 인구는 6천만 명인데, 비교해보면 프랑스인들은 항상 불평불만이 많고 정체돼 있지만 한국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혼자서 잘해내고 있다.

잘해내고 있는 것이 한국이라는 국가인가, 아니면 한국인인가.

둘 다 그렇다. 유럽에서는 비관주의가 지배하는데 한국인들은 잘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와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유럽은 이런 낙관주의를 잃어버린 것 같다. 한국 주변으로 미국·일본·중국·북한 같은 국가들이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지정학적 상황이 복잡하고 불안한 측면이 있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어 급박한 위험은 없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한국인들이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고 조직적인 것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위기가 심화되면서 유럽의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간략하게 현재 유로존 국가들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의 발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년 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시작된 금융위기의 파장이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미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동돼 있는 유럽은 각국 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어 금융 부실을 해결했으나, 경기침체로 이를 만회하지 못한 일부 재정 취약국 중심으로 재정위기가 초래됐다.

위기의 더 근본적인 요인은 유럽 안에 있지 않은가.

유로화 단일통화 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다. 경제·사회 구조 등 여러 면에서 상이한 나라들에 단일통화 유로를 통용시켰다는 점이 중대한 정책 실수였다. 역사와 경제발전 단계가 각기 다른 나라들이 단일통화 체제로 묶이면 국가 간 경제적 불균형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 유로화 체제에 편입되면서 자국의 경제력에 비춰 통화가치가 과도하게 평가절상된 나라들은 담보대출이 일상화하면서 개인부채와 공공부채가 급증했다. 이렇듯 빚지고 살도록 국가가 방조해놓고 이제 와서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은 완전히 그와 반대되는 긴축재정이다. 그 부채를 갚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게다가 유로가 경제위기를 더욱 가중하고 있다.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현재 천문학적 빚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

국가 단위의 어떤 정책도 유럽 단일통화 체제와 부합하기 어렵다. 예컨대 유로로는 평가절하가 불가능하다. 단일통화는 한 국가의 경제가 나빠져도 평가절하를 할 수 없다. 만일 모든 나라가 경제 상황이나 인구·사회 구조 면에서 유사하다면 유로가 의미 있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두 나라에 단일통화를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따라서 유로존이 해체되고 각국의 통화주권을 인정하면서 보완 수단으로 새로운 공동화폐제를 도입하거나 상대적으로 민족적 뿌리가 같은 몇 개의 나라들끼리 공동통화권을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부채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과도한 부채를 진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을 말하는데, 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

개인파산제도는 이미 있다. 정부가 가계의 과도한 부채를 제한하기 위해 각종 제도들이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하는 부채 탕감은 가계가 아닌 공공부채의 탕감이다.

유로가 경제위기를 심화시킨다고 했는데, 영국은 유로존 바깥에 있음에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왜 그런가.

유로는 유럽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 이를 가속화했다. 이처럼 모든 유로존 회원국에 경기침체가 가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과 교역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 교역의 약 75%가 영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 내에서 이뤄진다. 영국은 이번 위기로 자국 통화를 약 40%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나 스페인 꼴이 되었을 것이다.

왜 EU의 경제위기 해법을 자유주의적 독재와 다름없다고 보는가.

EU 회원국들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그리스 같은 나라들의 채권을 사들이기로 결정했지만, 고리대금업을 연상케 한다. ECB는 1% 금리로 유럽 은행들에 돈을 빌려주고, 이들이 2차 금융시장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국채를 5~6%의 금리로 사게 하고 있다. 결국 부채를 진 국가들은 빚을 갚기 위해 5∼6%의 고금리로 돈을 빌리고 있다. 긴급 구제금융은 대신 긴축정책을 조건부로 돈을 빌려준다. 그 결과 돈을 빌리는 국가들은 자국의 주권을 포기하게 된다. EU 집행위원회와 ECB,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트로이카 체제가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같은 나라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기구들은 유럽 시민이 직접 선출한 자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유럽인들의 민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독재정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엄청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 국가에서 현재 채택하고 있는 정책은 이전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멈춘다 해도 이런 정책은 계속 남을 것이고 결국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사회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들에게 큰 기회이자 성공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런 정책을 '범죄 정책'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현 유럽 경제위기에 독일의 책임이 크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에서 유럽 국가들이 양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에 대한 악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인가.

그런 감정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 독일의 경제정책과 유럽의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EU 내에서 단일통화 유로 체제 덕분에 흑자를 내는 등 가장 덕을 많이 본 것이 독일이다. 그러나 독일의 고객인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무너지면 독일도 더 이상 흑자 국가로 견고한 성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현재의 위치에서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핀란드와 네덜란드도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이다.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를 주류 경제학적 시각(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상식적인 시각이라고 주장한다)에서 보면, 금융자본뿐 아니라 일하지 않고 소득 없이 방만하게 소비를 한 정부나 가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유로화 출범 이후 가계가 갚을 능력도 없이 은행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어 거품경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개인의 책임이 완전히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은행이라고 하는 채권자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분명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 각 나라의 상황이 다르다. 스페인의 경우 부동산 거품을 맹신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해 부동산을 사들였다. 거품이 꺼지고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떠난 뒤 150만 채가 빈집으로 남겨졌다. 과도한 주택 건설에 돈을 댄 정부가 실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임은 함께 나누지만 결국 빚을 갚는 것은 빚지게 만든 책임자가 아니라 국민이다. 스페인 국민들이 과도한 투기를 행한 점에서 정부는 이런 위험을 사전에 예방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미국 역시 은행들이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면서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국도 스페인과 비슷한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 거품이 꺼지면서 현재 많은 가계가 빚에 허덕이고 있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 어떤 해결 방안이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상황이 야기된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스페인과 비슷한 경우라고 하지만 한국도 나름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 세세한 상황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어떤 해결 방안을 충고할 입장이 안 된다. 다만, 유럽 문제와 관련해 그리스처럼 현재 빚을 상환할 수 없는 국가가 많다. 이 나라들의 빚은 탕감해줘야 한다.

프랑스의 올랑드 사회당 정부가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정부와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가.

올랑드 대통령은 연봉 100만 유로(약 15억 원)가 넘는 고소득자 소득의 75%에 대해 증세하겠다고 했는데, 이 결정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올랑드는 향후 2년간 긴축재정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올랑드가 주장한 것은 외환거래에 대한 세금인 토빈세가 아닌 주식 등의 금융거래세다. 세금을 제대로 매겨야 할 곳은 외환시장이다. 금융거래가 10억 유로라면 외환거래 시장은 1천억 유로로 그 규모가 훨씬 크다. 만일 국제 외환시장에 세금을 매긴다면, 수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당신은 올랑드의 연립정부에 새로운 자본주의의 대안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올랑드 연립정부는 사회당과 녹색당의 연합일 뿐 좌파 진영은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솔직히 좌파 진영은 올랑드의 일부 정책에 적대적이다. 특히 유럽의 신재정협약(TSCG·Traité sur la Stablilit?, la Coordination, et la Gouvernance) 비준과 관련해서 더욱 그렇다. 니콜라 사르코지와 앙겔라 메르켈이 체결한 신재정협약은, EU 회원국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반할 때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협약 내용에 올랑드도 동의했다. 이제 남은 일은 의회를 통해 비준하느냐, 아니면 국민투표로 비준하느냐다. 올랑드는 의회 비준을 원하지만 프랑스 국민의 75%는 이런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직접 국민투표로 결정하길 원하고 있다. 그런데 올랑드는 선거를 통해 자신이 국민의 대의자가 되었으니 이 사안에 대해 직접 국민투표를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프랑스가 아직 비준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올랑드 연립정부의 좌파 세력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 탐욕스런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어찌 보면 당신이 창립한 세계사회포럼 운동이 꽃피는 셈인데, 점거시위와 세계사회포럼이 이끈 반세계화 운동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보는가.

점거시위와 세계사회포럼은 관련 없다. 점거시위는 스페인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 거센 분노의 물결이 여러 나라에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당시 선거가 걸려 있어 사람들의 분노는 길거리가 아닌 투표로 희석됐다.

저항운동은, 젊은이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지만 어떤 정치적 결과로 완성되지는 않았다. 운동에 참여한 이들 스스로 조직화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과 사상적인 면에서 유사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포럼은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유의 저항운동과 포럼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 점거시위 같은 저항운동은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조직화되지 않은 순수한 저항이라는 면에서 의미 있다. 이들의 시위 방식은 미국에서 기존 금융지배 체제에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금융지배 세력은 이들의 시위로 인해 사회가 붕괴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런 생각이 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고, 결국 사회의 기존 질서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 곧 대선인데, 프랑스가 사르코지에 대한 반대로 투표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격변기를 맞고 있다. 선거제도라는 틀 안에서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할 일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현재 집권 대통령에 대한 거부라는 단순한 이유로 투표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다. 내용이 있는 진정한 투표를 해야 한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조언할 수는 없으니, 프랑스에 대해 얘기해보자. 프랑스에서 올랑드 연립정부의 정책은 현재 상황을 극복할 만한 충분한 콘텐츠가 없다. 올랑드 정부가 성공하려면 지금 정책보다 더 '좌'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파판드레우와 같은 꼴이 날 가능성이 높다. 올랑드 연립정부가 실패하면 그 반사이익은 마린 르펜 같은 극우 세력에게 돌아간다. 현재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보면 좌파와 극우파 사이의 지지표 차이가 매우 결정적이다. 한국도 극우보수 세력에 반사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현명한 진보 세력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베르나르 카상은 프랑스 좌파 이론의 본산 격인 파리8대학 유럽학 교수 출신이다. 1998∼2002년 아탁의 초대 의장과 세계사회포럼의 지도위원장을 맡아 두 단체를 강력한 반세계화 국제조직으로 발전시켜왔다. 1973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해 2008년 1월까지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이냐시오 라모네 전 발행인, 자크 사피르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등과 함께 반세계화 담론 조직 '메무아르 드 뤼트'(www.medelu.org)를 이끌고 있다. 이번 대담에는 박지현 <르 디플로> 한국판 편집위원이 동석해 진행과 정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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