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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12, 2013~?
1987~2012, 2013~?
  • 이인우
  • 승인 2013.01.1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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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르 디플로’ 읽기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 진영이 이기기를 바랐으나 결과는 범새누리당파의 승리였다. 한 표라도 더 지지를 받은 박근혜씨가 부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012년 대선은 6월항쟁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1987년 대선 이후 제기된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들이 대부분 조건화된 바탕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지도자를 결정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선거 전부터 보수 진영은 민주화와 산업화가 변증법적으로 만나는 경제민주화와 국민 통합을 선제적으로 제기했다. 진보 쪽은 1987년 체제라는 민주화의 결과물을 2013년 체제로 확대 이행하는 주도권을 민주 진영이 쥐어야 한다는 점을 호소했다. 누가 주도하느냐만 빼곤 거의 비슷한 이 관점이 이번 선거의 핵심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이 '세기의 맞대결'에서 박근혜씨가 승리하면서 박정희 시대 이래 범보수 세력이 2013년 이후 체제를 주도해갈 정치적 헤게모니를 틀어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군사문화 청산과 문민화, 지역주의 극복, 권위주의 타파, 경제적 평등 실현 등 지난 25년간의 주요 시대적 과제들을 통합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기하고 실천해가야 할 첫 정부이다. 용광로 속으로 흘러 들어간 다양한 쇳물이 뒤섞이고 합쳐져 과연 어떤 쇠를 만들어낼 것인가?

개인적으로 볼 때, 이번 정권은 그 정치력 여하에 따라 향후 통일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공고히 하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 같다. 둘째, 시민사회에 대한 보수 정당의 우위를 과시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보수 세력에게 안겨주었다. 총자본에는 세련된 자본가 윤리를 요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노동의 파편화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노릴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 우위 속에서 자본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그것은 다시 보수 정권을 보위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과제들이 큰 잡음 없이 추진돼 일정한 정도의 '민생 안정' 효과를 거둔다면, 이번 대선의 승리는 보수 장기 집권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 정통성과 인간주의적 관점을 지닌 정치 세력이 이런 중대한 이니셔티브를 쥐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이번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신적 퇴행에 대한 우려이다. MB 시대를 능가하는 일부 정치 지향 지식인들의 몰가치와 몰염치가 너무 심하다. 공동체의 가치도 자신의 부와 출세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언제든,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헌신짝처럼 내다버릴 수 있는 '담대한' 지식인이 넘쳐난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 2012년의 사자성어로 꼽힌 것은 그래서 탁월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목적이 수단을,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다 못해 아예 그 자체가 하나의 능력으로 숭배되는 지식인 사회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지식인의 퇴영을 거론하며 언론의 예만 들 수밖에 없는 부족한 능력과 지면의 한계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시대의 사상적 척후이자 전도사였던 김지하의 좌충우돌 또는 횡설수설은 그것이 오랜 수난과 고문의 후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분노보다는 연민을 느낀다. 풍문을 들으니 그가 종종 자기분열적 증상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가 아프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 이인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editor@ilemonde.com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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