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은행을 국유화하라
은행을 국유화하라
  • 세르주 알리미 | 프랑스판 발행인
  • 승인 2009.04.04 0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의 창(窓)

은행을 국유화하라

 세르주 알리미  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금융을 갉아먹고 있는 해악이 이제 세계 경제를 집어삼키고 있다. 사실 세계 경제는 금융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은행이 파산하면 다른 은행이 그 은행을 인수한다. 망한 은행을 인수한 은행은 몸집을 키워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대마’가 됐기 때문에 위기가 닥쳐도 정부가 구해줄 것이니 걱정 없다. 절체절명의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각국의 납세자들이 초대형 금융기관들을 구제하려고 수조 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 금융기관들이 쌓아놓은 ‘유동성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점점 불어나는 부실 채권들을 인수하려면 얼마나 더 지급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예전에 은행가의 업무는 단순해 보였다. 미국식 ‘3-6-3’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됐다. 즉, 예금 금리는 3%로, 대출 금리는 6%로 고정하고 오후 3시에 골프장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량경제학 모델로 무장한 수학자 군단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라는 전환점을 돌면서 ‘다변화’ ‘위험 감수’ ‘금융시장 통합’ 등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은행의 증시 진출을 원천 봉쇄했던 미국의 1933년 법은 신경제의 환희 속에서 뉴딜의 낡은 유산으로 인식되었고 결국 폐지되었다. 은행 현대화라는 화두에 맞게 은행들은 더 이상 예금주들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1)
은행들은 곧바로 새로운 상품 투자에 뛰어들었다. 특히 은행이 ‘자산 유동화’를 통해 유통시킨 채권들을 기초로 탄생한 파생상품 투자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런 금융 혁신을 찬양하는 은행가들조차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때로 파생상품 거래 한 건을 하려면 150쪽에 달하는 지침서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자기 자본을 잠식해가며 채권 총액을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버블, 증시 호황, 금융 피라미드, 초고액 연봉의 시대에 살았고, 이는 또 다른 불도저식 위기 탈출을 조장했다.2) 2007년 말 은행들의 채권 총액은 자기 자본의 30배에 달했고, AIG생명 같은 보험회사들은 은행들의 위험한 줄타기를 보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줄이 끊어졌다. 채무자들은 더 이상 빚을 질 수 없었고 은행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은행 역시 보유 채권의 극히 일부가 부실 채권이 되는 것만으로도 파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취약했다. 여파는 보험회사들에까지 미친다. 동시에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며 실업이 급증한다. 그럼 이제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손실 만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정부가 보살펴줄 것이다. 어차피 이 은행에서 저 은행으로 이동하기 전 잠깐 경제팀에 승차한 소수 천재들이 자주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지 않았던가?
정부가 명실상부하게 금융 거래를 주도할 때가 되었다. 어쨌든 금융의 안녕은 더 이상 민간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이들은 정부가 새로운 자금 투입을 발표할 때만 안심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심지어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금융 탈규제화를 추진했을 때조차도 비주류 해법으로 간주됐던 은행 국유화는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이 주창하고 <이코노미스트> 같은 보수 언론도 동의할 정도로 명백한 해법이며, 그만큼 막아야 할 재난이 너무도 위협적이다.3)
그러나 납세자들의 돈으로 은행이 기사회생하면 곧바로 은행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게 될 것 같다. 요컨대 아파트를 난장판으로 만든 이들에게 아파트를 청소해서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가? 국영 은행 시스템은 수십 년 동안의 호황을 견인했다. 이에 반해 민간은행들은 도대체 어떤 업적을 쌓았단 말인가?   
번역•박수현

1) 이브라힘 와르드, ‘탈규제화로 파괴되는 은행 시스템의 근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1년 1월.
 2) 2008년,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는 26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정부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황에서도 경영진에게 200억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골드만삭스의 직원들은 1인당 평균 36만2천 달러를 받았다.(<월스트리트저널>, 뉴욕, 2009년 3월 20~22일).
 3) ‘국유화에 매듭짓기’, <이코노미스트>, 2009년 2월 28일 .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