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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선거, 시위
군대, 선거, 시위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3.08.14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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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형제단은 대통령 자리를 탐내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그 첫 번째 맹세를 깬 뒤에는 ‘빵, 자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들이 정권을 잡은 뒤 사회는 더 불안해지고 그만큼 더 비참해졌다. 다시 거리로 쏟아져나온 대중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어떤 혁명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단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그것이 얼마나 자발적이었는지 어떤 법적 토대 위에서 발발했는지 따위를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고도 수세기 동안 혁명을 기념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법학 세미나가 아니다.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체제가 무너졌을 때, 정치적 삶과 논쟁적 토론에 대한 억압이 첫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모두 사라지리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는 대부분 사회·제도적으로 가장 잘 조직화된 세력(대가문, 군대, 기존의 유일 당)이나 탄압을 피해 지하조직 체계를 구축한 세력(무슬림형제단)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선거 한 번으로 민주주의를 배울 수는 없는 법이다.(1)

가까스로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자들이 공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 민심은 금세 등을 돌리고 분노가 폭발한다. 그리고 다양한 세력이 동맹해 대규모 거리시위를 주동한다. 최근 수년간 몇몇 국가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지만, 이집트처럼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재판 없이 국가원수를 구속하고, 그 지지자들을 살해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쿠데타’라고 부른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은 쿠데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외교적 품위의 기준을 제멋대로 정하는 그들은 어떤 쿠데타- 말리, 온두라스, 이집트- 는 다른 쿠데타에 비해 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미국은 처음에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지만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된 뒤에도 이집트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의 보수 연합이야말로 미국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였을 테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구체제를 그리워하는 세력, 나세르 민족주의자, 이집트 신자유주의자, 살라피스트, 종교중립적 좌파,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주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집트가 거의 파산 위기에 처한 지금 군부와 이슬람주의자 사이의 대립은 경제·사회적 선택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무바라크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이 점은 큰 변화가 없다. 혁명의 결과가 선거이든 쿠데타이든 그것이 진정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집트의 새 지도자들은 걸프만 국가,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2)의 재정 지원(120억 달러)에 국운을 내맡기려 한다. 이 계획이 확정되면 법학자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이 이집트 인민은 다시금 거리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1) 알렉시 드 토크빌, ‘각자는 제자리에 Chacun à son rang’,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8년 4월호 참조.

(2) 세르주 알리미, ‘사우디에 대한 면죄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3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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