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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공화국 재건의 불씨 …
세월호 참사, 공화국 재건의 불씨 …
  •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발행인
  • 승인 2014.04.29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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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이후, 많은 이들의 머릿속을 내내 맴돈 의문은 아마도 ‘도대체, 국가가 뭐냐’일까 싶습니다. 지금, ‘국민 없는 국가, 국가 없는 국민’의 현장을 생생히 지켜보는 심정은 참으로 착잡하기만 합니다. 과연 이런 국가를 진정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SNS에선 이런 국가에서 살아가기가 정말 두렵고 화가 나서 저 멀리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고를 낸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뺑소니 치고, 선박회사 책임자는 꽁꽁 숨고, 사고수습에 나선 정부는 허둥대기만 했고, 그러는 사이에 어린 생명들은 차디찬 어둠에서 죽어갔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멀쩡한 사람도 간첩으로 둔갑시킬 정도로 막강했던 이 정권의 국가안전망은 허술했고, 심지어 관련 부처들끼리 책임전가에 급급했습니다. 누구나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나, 이런 엄중한 시기에 종북 타령이나 하는 일부 위정자들이나 유가족들을 능멸하는 철없는 이들을 보면서, 어찌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도, 공감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라지는지 의아합니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이 전체국민에게 있는 공화국으로, 즉 국체는 공화제, 정체는 민주제인 국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공화국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국가를 통치합니다. 현실적으로 민주공화국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에서였고, 이어 1789년의 프랑스혁명, 1793년과 1848년의 프랑스헌법 등에 의해 공식 제도화됐고, 그 후 현대 국가의 보편적 정치체제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공화국’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능욕을 당했습니다. 일부 친정권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에 ‘자유’를 덧댄 ‘자유민주’ 공화국을 주장하더니, 친기업적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의 자유화가 이어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참사도 이명박정부에서 진행된 선령(船齡) 규제 완화로 인해 일본에서 18년간 운항 후 퇴역한 노령 선박이 국내에 도입되었던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살길을 찾아 어린 생명을 버리고 도망한 선장과 선원들을 추호도 변호할 뜻은 없지만, 그들의 대다수가 배터리 부품처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계약직이고, 이를 정부가 용인한 것은 승객 안전보다는 노동유연성을 더 중시한 지극히 친기업적인 처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박 정권 들어 이 같은 규제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권을 지닌 소수자들이 쥐락펴락할 경우, 플라톤이 극도의 혐오감과 적개심을 드러낸 참주제(tyrannia)에 빠질 위험마저 있는데, 마치 우리 사회가 그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전제 봉건주의에 맞서 싸운 앞선 세대의 피와 눈물로 딛고 일궈낸 ‘공화국’ 대한민국은 과연 진정한 공화국일까요? 이는 ‘공화국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의문에 부치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원하는 공화국은 근대 민주주의론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사유주체로서의 국민, 법적 주체로서의 국민, 유기체로서의 국민, 말하는 주체,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국민, 즉 오롯한 ‘국민’을 담아내는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국민’의 범주에 들지 못하고, 그래서 국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 ‘국민’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 ‘우리도 국민이다’고 부르짖을 때 그 외침에 답하여, ‘도대체 국민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어주는 공화국이어야 합니다. 플라톤은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국가가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즉 국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국가가 만들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참사에 한없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생업을 제쳐두고 팽목항에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각종 구호품과 모금, 격려의 메시지들에서 그나마 공화국 재건의 불씨를 찾아봅니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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