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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 '의료괴담'인가?
무엇이 진짜 '의료괴담'인가?
  • 이상구
  • 승인 2014.06.03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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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침몰이 노후 선박의 도입과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 기업 규제 완화의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남태현 교수 등 재미 교수들과 외국인 학자 등 1,074명이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문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후 선박의 사용 기간 연장만으로도 연간 300억 원 정도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볼 것이라 선전했던 선박 관련 규제 완화가 300여 명의 꽃다운 우리 아들딸들의 생명을 빼앗아간 것이다.

연간 수조 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며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의료민영화 관련 규제 완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사망으로 몰아갈지 상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모든 어르신들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이 예산의 이유로 대상자를 줄이거나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 지급 액수를 축소하는 것은 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활비에도 미달하는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을 더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약 이행을 명분으로 이미 받기로 법에 명기되어 있는 40대와 50대의 연금 수령액을 깎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되고 있다면 국민들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한 공약 왜곡의 사례가 있다. 바로 영리병원 정책의 추진이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에는 민간보험이나 영리병원 도입은 결코 없을 것이며, 간병비와 선택 진료비 그리고 차액 병실료를 포함하여 적어도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선거 이후, 약속한 공약의 실천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과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등 의료의 보장성을 해치고 공공성을 훼손하는 데 주력한다고 한다면 의료 부분의 공약 파기로 인해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감과 위기감은 기초연금에 못지않을 것이다.

지난 2000년의 의약 분업 반대 파업 이후 의사들의 집단 휴진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외면을 받아 왔는데, 최근에 있던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오히려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의사협회뿐 아니라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등 대부분의 의료 단체들도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도 의료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직능단체뿐 아니라 국민 다수가 특정 사안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것은 그로 인해 미칠 파장과 피해가 적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 영향이 미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를 통한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에 이렇게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치과의사 김철신이 지은 <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 이야기, 의료괴담>을 보면 명백해진다.

  의사 집단행동 지지받는 이유

  어떻게 보면 네트워크형 치과에 대한 싸움은 치과의사협회가 다수의 개원 치과의사의 이익을 대변하여 경영을 합리화하려는 전문치과 병원과 싸우는 업계 내의 밥그릇 다툼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전문가 단체들의 영리병원 반대도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기득권 집단이 이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국민들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실(fact)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파악이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치과대학 졸업 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회원으로 일하였고,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돈벌이를 위해서는 별로 살지 않았던 필자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술하였기에 일단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또한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정책 이사로 재직할 때도 노인보철의 대상을 75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급여의 내용도 전체틀니만 해주던 것을 부분틀니로까지 확대하는 등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책위원의 입장에서 공익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해왔기에 단순히 치과의 문제를 넘어 전체 의료계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온 필자가 기업형 사무장병원으로 운영되던 네트워크 치과병원과 싸우면서 알게 된 영리병원에 대한 사실들을 중심으로 쓴 것이므로 책의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다. 또한 이 책은 자신의 환자이기도 한 공동 저자 홍기표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환자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대신 물어주고 있고, 이에 대해 왜 그렇게까지 영리병원을 반대해야 하는지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영리병원에 대한 해설서이고 자료집과 같은 책이지만 매우 쉽게 읽히는 책이다.

   영리병원 의료질 하락 초래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뽑아버리게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임플란트를 여러 개나 하도록 하여 수천만 원의 불필요한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 미끼 상품을 통한 환자 유인, 저질 재료와 위험 재료를 사용하는 원가 절감, 상상을 초월하는 과잉진료, 업무의 세분화와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비자격자까지 동원하여 시술을 하고, 이에 대해 환자가 모르도록 하는 내부 매뉴얼 운영을 영리형 병원에서는 “경영 합리화 방안”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네트워크형 치과병원 체인이 100여 개의 사무장형 치과를 개설하고,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적인 진료가 아니라 투자를 통한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영리형으로 운영되면, 결국 환자들의 부담과 의료사고로 이어진다는 사례를 통해 우리는 영리병원의 문제를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네트워크형 치과병원인 “쿨 스마일”의 폐해를 취재한 데이비드 허스 기자의 증언이나, 보수의 원조인 텍사스 주의 그래슬리 상원의원의 발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모 네트워크형 치과의 사례는 원장 개인의 비리나 과도한 영리 추구의 문제가 아니라, 치과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면 어디서나 생길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미국의 투자 자본가들이 ‘아스펜 덴탈’이라는 치과체인을 200억 원에 인수하여 5년 뒤에 6,600억 원에 매각하고 차액을 챙기는 사례를 통해 왜 기획재정부나 금융권, 그리고 재벌들이 영리병원이나 의료산업화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는지, 심지어는 정당이나 정권이 바뀌어도 그렇게 끊임없이 추진하려고 하는지의 이유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의료의 질이 높은 대부분의 병원들은 비영리 병원이라는 것과, 영리형 병원이 결국 의료의 질을 낮게 만들고, 환자의 부담은 높게 하며, 심지어는 약탈적 대출을 통해 환자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평생의 건강에 피해를 미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된다. 또한 영리병원들이 되어도 실질적으로 의료 전문직들의 고용이 더 늘어나지 않거나 의료 관련 산업이 발달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하게 해 준다.

역으로 GM이나 포드와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경영이 어려워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의료민영화의 한 부분인 민간의료보험으로 인한 과도한 의료비 지출과 이로 인한 미국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 및 기술 경쟁력의 하락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현 정부의 의료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 정책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를 이 책은 명확하게 증언해준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이러한 사태들이 미국이 아니라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무엇이 진짜 의료괴담인가?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피해를 당한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을 단순히 “괴담”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료민영화를 괴담으로 치부하고자 한다면 <추적 60분>이나 <PD 수첩> 등 공중파에서 방영된 네트워크형 영리치과 보도에 등장한 많은 영상 자료와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전부 허구로 이루어진 드라마이거나 작가와 제작자의 조작이라고 밝혀야 할 것이다. 기업형 네트워크 치과의 사례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은 이미 영리병원의 문제를 충분히 경험했다.

이미 하나의 사례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그리고 이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의원과 병원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불안을 느끼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방위이고 생존 본능의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리법인이나 원격의료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의료 민영화와 상업화를 추진한 결과, 전체 GDP의 17% 넘게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9%대의 유럽 국가들이나 7% 수준의 대한민국보다 왜 미국의 각종 보건과 건강지표들이 더 낮은지에 대해 분명히 해명을 해야 한다. 아무런 해명 없이 영리병원을 도입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는 정부의 말이 오히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지 묻고 싶다.

과연 무엇이 진짜 의료괴담(醫療怪談)인지 이 책을 읽어 본 후 결정하기를 권해드린다.

  글·이상구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보건복지부 장관실 자문관과 정책보좌관,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국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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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ilemond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