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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과세’와 마르크스의 ‘혁명’은 무엇이 다른가?
피케티의 ‘과세’와 마르크스의 ‘혁명’은 무엇이 다른가?
  • 편집부
  • 승인 2014.07.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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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과세’와 마르크스의 ‘혁명’은 무엇이 다른가?

 

불평등 문제가 지구촌 사회의 가장 불안요소 중 하나로 지적되면서, 각국이 저마다 고육지책을 고심하고 있으나 뚜렷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부유세를 걷어야 할까, 아니면 노동자들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켜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사회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하는 걸까?

불평등 문제가 지구촌적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의 최근 저서 <21세기 자본론>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제목을 따와 서구 국가들에서의 불평등 심화현상을 분석했지만, 두 사람은 인식은 다르다고 캘리포니아대 역사학과 러셀 자코비 교수는 분석해 눈길을 끈다. 자코비 교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피케티가 자신의 책 제목을 <21세기의 자본론>이 아니라 <21세기의 불평등>이라고 했어야 했다”며 “피케트와 마르크스의 인식에서는 일종의 대립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두 사람은 둘 다 경제적 격차를 거부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 피케티는 임금과 소득, 부의 분야에서 논의를 개진한다. 즉, 극단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며 -비통했던 ‘프라하의 봄’ 당시의 슬로건을 모방해보자면- 우리에게 ‘인간적 얼굴의 자본주의’를 가져다주고자 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상품과 노동, 소외의 분야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 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가차 없이 비난하는데, <21세기의 자본> 서문에서 “이제는 더더욱 경제 분석의 중심에 불평등의 문제를 가져올 때”라고 썼다. 그는 자신의 책 첫머리에 1789년 <인권선언문>의 두 번째 문장, “사회적 차별은 공동의 유용성에 기반을 두어야만 성립될 수 있다”를 인용했다. 피케티는 사회 전체, 특히 미국 사회를 왜곡시키는 불평등의 심화를 다루며 강력하고도 정확하게 공격한다. 예를 들자면, 교육은 모두에게 접근 가능해야 할 뿐 아니라 사회 계층 이동을 장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평등주의는 일종의 체념을 전제로 한다. 사회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부와 특권의 분배에 있어 다시금 균형을 이루게 하려 할 뿐이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평등에 관해서는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노동자 임금이 상당히 오를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설령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마르크스는 문제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본은 노동과 이득이 되는 것과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의 특징, 속도, 심지어는 정의조차 강요한다. 노동자가 임금을 더 많이 받아 더 잘 살고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형태를 띤 자본주의 체제에서조차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가 더 많은 소득을 얻고 말고는 노동자의 의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식주와 처우의 개선도, 그리고 ‘그들의’ 재산 증가도 의존 관계와 노예적 착취를 철폐하지 못했다.” 소득 증가는 기껏해야 “노동자 자신이 이미 단련된 ‘황금 사슬’의 범위와 무게가 줄어들어 예전보다 목을 좀 덜 조른다”(5)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지적이 19세기의 것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가 노동의 구조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반면, 마르크스는 적어도 그에 집중한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 둘 중 자본주의의 기능에 관해 누가 더 옳은지를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분석에 존재하는 매개체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피케티에게 그것이 분배라면, 마르크스에게는 생산인 셈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열매를 최고소득자와 최저소득자 간의 격차를 줄이는 식으로 분배하고자 하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변혁하여 그 영향력을 없애고자 한다.

이렇듯, 피케티의 이상주의는 세금과 규제라는 친숙한 언어로 얘기한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차원을 띠는 반면에 마르크스의 논고는 더 깊고 방대하지만, 아무런 실용적인 해법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자세한 내용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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