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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돌 맞은 <르 디플로> 한국판
6돌 맞은 <르 디플로> 한국판
  • 성일권
  • 승인 2014.09.3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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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르 디플로> 창간호의 글에서 저는 “우리의 지성과 통찰력과 보편적 가치를 일깨우는 매체가 되어, 독자 여러분께 세계와 호흡하는 참된 지성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드릴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척박한 지적환경 탓에 과연 <르 디플로>가 제대로 착근할 수 있을지, 많은 독자 분들과 언론 전문가들이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이젠 <르 디플로>의 지적 영향력과 그 가치를 의심하는 분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르 디플로>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감히 자신해봅니다. 학자들의 학술 논문이나 언론인들의 기사에서 <르 디플로>는 중요한 참고문헌이 되었으며,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엔 손 떼 묻은 <르 디플로>가 상비되어 있고, 일반 대학생뿐 아니라 로스쿨 및 국립외교원, 언론사 등 각종 시험 준비생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르 디플로 스터디’ 모임이 결성되고 있습니다. 영업상 비밀이지만, 판매부수도 놀라울 정도(?)로 증가해, 대형신문사의 월간지 부수를 넘어설 날도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6돌을 맞아 과연 애초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곰곰 반성해봅니다. 혹시 ‘파워’ 있는 광고주나 권력기관의 압력을 받아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았는지, 특정 정파의 잣대나 논리에 빠져 균형감각을 잃지는 않았는지, 또 치기(稚氣) 어린 영웅심에 빠져 <르 디플로>의 명성에 금을 내지는 않았는지…. 솔직히 그동안 수많은 유혹이 도사렸고, 그때마다 일말의 번뇌가 스쳐 지나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출판 잡지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상황입니다. <르 디플로>가 이렇게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많은 분들의 격려와 사랑 덕택입니다. 넉넉지 못한 고료에도 선뜻 원고를 써주신 많은 필자분들, 밤새워 번역해주신 번역위원들, 그리고 매달 발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빠른 마감을 채근하시는 열성 독자분들이야말로 저희가 꼭 기억해야 할 고마운 분들입니다. 여기에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준 저희 편집위원들과 편집제작진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배신과 적대감, 상처와 분노, 혼란과 불안이 넘쳐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릴없는 숙명과 복종을 강요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르 디플로>가 이번 호부터 1년 동안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와 공동으로, 우리사회의 깊이 팬 증상들을 낱낱이 독해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의 질주에 빼앗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르 디플로>의 궁극적 목적은 석학들의 글과 사상으로 치장된 지적 허영심을 고양시키는 게 아니라,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주체적 삶’을 되살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종이매체가 처한 위기상황을 감안할 때, <르 디플로>의 갈 길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초심을 잃지 않고, 언론의 기본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르 디플로>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독자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르 디플로> 6돌을 독자님과 더불어 자축하며, 앞으로도 독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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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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